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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D.P.’ 김보통 작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이제 앞으로 할 거예요”
류석우 사진 류우종 2023-03-13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만화도, 수필도, 드라마도 결국엔 이야기

“그냥 틈나면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가만히 있다가도 이런 얘기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면 줄거리를 짜고 주인공을 만들고 하면서 혼자 망상의 여행을 떠나는 거죠.” 만화가가 되겠다는, 감독이나 소설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꿈도 없었다. 그저 상상하고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만들어볼 뿐이었다.

그래서 수필도 썼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외에 유년 시절을 담은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과 <온 마음을 다해 디저트> 등이다. 드라마 각본을 처음 <D.P.>로 쓴 이후 다른 원작자의 웹툰(<유쾌한 왕따>)을 드라마 각본으로 만들기도 했고, 웹드라마 <사막의 왕>에선 총 6화 중 한편이긴 하지만 연출도 경험했다.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섭렵한 셈이다.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이야기예요. 잡담을 나누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기사도 이야기죠. 근데 독자가 서로 다를 뿐이에요. 건드리고 싶은 독자의 감정이 다를 뿐이지 결국 이야기라는 건 동일하죠.”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전달할까, 이게 김보통의 고민이었다. 이를테면 웹툰 <아만자>는 암 환자도, 환자가 아닌 사람도 암 환자를 다룬 만화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건 어두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었다. 파스텔 톤으로 그림을 그렸다. 대사는 짧고 여운이 남게 썼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최적의 형태가 뭘지 나름 판단했던 것 같아요.”

기대 없이, 비교 없이 꾸준하게

그가 놀이에서 시작해 만화와 수필, 칼럼, 드라마, 연출까지 나아갔던 배경엔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쓰는 습관’이 있다. 부담감을 갖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쓰는 것이다.

“강의를 나가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읽고 단편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작품에 비견될 만한 단편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쓰면 실망밖에 할 수 없어요. 제가 처음 글을 쓸 때 반드시 넷플릭스에 가서 우리나라 1위가 될 거라는 마음이었다면 부담감에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김보통은 인터뷰 내내 소질과 꿈을 작가의 성공 조건으로 연결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경로와 방법으로 작가가 될 수 있는데, 재능이 있고 어려서부터 꿈을 갖고 키워온 사람만이 훌륭한 작가가 되는 거로 비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김보통 자신이 그랬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 이걸로 돈을 벌어야겠다는 거창한 꿈이 있던 게 아니었어요. 전공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그려본 적도 없었어요. 그냥 재밌으니까. 사람들의 반응이 재밌으니까, 라는 마음으로 그렸던 거예요. 글도 똑같은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아주 짧은 이야기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그 사람이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주는 것 자체가 기쁨인 사람이라면, 작가의 자질은 충분하다고 김보통은 말한다. 나머지는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쓰는 습관’이면 충분하다.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7줄 곱하기 7줄 곱하기 7줄

김보통의 하루 일과는 ‘일’이다.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 일어나 바로 일을 한다. 정신이 제일 맑을 때다. 밥을 먹고 다시 일한다. 점심 먹고 산책한 뒤 다시 일한다. 저녁 먹고 달리기를 한 뒤엔 집중력이 덜 필요한 일을 한다.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잔다.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 첫 단계는 “아우트라인”(개요)을 잡는 일이다. 아우트라인은 간략한 한 문단이다. 7~8줄이다. 핵심 요약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D.P.>에는 이런 아우트라인이 나온다.

‘안준호가 군대에 입대했다. 디피로 선발돼 탈영병을 쫓는다. 탈영병을 쫓으면서 군대 부조리에 대해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 결국 어찌어찌해서 어떻게 된다.’

이 작업이 출발점이다. “처음에 그게 매끄럽게 정리되지 않으면 사실 시작을 안 해요. 정리돼서 한두줄만 봤을 때도 ‘이거 재밌겠다’거나 ‘이 이야기는 궁금한데’, ‘이런 결말을 맞이한다고 하면 신박한데’라는 느낌이 들면 다음 단계에서 더 구체화해요.”

그전에 한 단계를 더 거친다.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이다. 가족, 친구, 지인, 심지어 기자들에게도 얘기한다. 핵심은 완성되지 않아도 이야기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반응이 좋으면 다음 단계로 간다. 재미를 느낀 부분은 더 발전시키고 반응이 좋지 않으면 보류하기도 한다.

반응이 좋았던 부분은 발전시키고, 좋지 않았던 부분은 빼는 방식으로 아우트라인 각각의 문장에 7~8줄을 더 붙인다. 그게 각각 드라마의 1화가 된다. 거기서 다시 ‘문단 늘리기’를 한다. “그럼 1화가 다시 49줄이 돼요. 영화로 치면 ‘신 넘버’(장면 번호)거든요. 보통 드라마 신이 1화에 40개 정도 되니까 신 넘버까지 다 나온 거예요. 거기서 더 쓰기 시작하죠.”

인터뷰 말미에 반전이 있었다.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는지 물었을 때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 안 했어요. 그러니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앞으로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