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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윤성호 작가가 영감을 메모하는 독특한 방식
박다해 사진 백종헌 2023-03-14

윤성호의 영감, ‘Funny’

주로 관찰하면서 영감을 얻는다. “사방에서 다 영감을 얻어요.” 보고 들은 건 메모로 남긴다. 구글 드라이브를 적극 활용하는데, 메모를 차곡차곡 쌓아두고 분류한다. “다종다기하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습벽처럼 정리해두는 메모 폴더들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메모 목록을 슬쩍 들여다보면 작품별로 회의록과 리서치 자료가 꼼꼼하게 정리돼 있다. 이런 자료는 함께 작업하는 이들과 공유해둔다. 평소 얻은 영감을 쌓아두는 일종의 ‘곳간’도 있다. 이 곳간은 “서랍으로 다 구분해놓는 방식”으로 정리한다. 서랍에는 ‘Funny’ (재밌는)란 단어가 공통으로 들어가는데 ‘Funny Character’ ‘Funny Idea’ ‘Funny Item’ ‘Funny Scene’ 이런 식으로 분류가 꽤 세심하다. 심지어 아무런 내용이 없어도 재밌는 제목 아이디어만 적은 폴더 ‘Funny Title’도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거기서부터 어떤 타래를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뭐가 생각날 때마다, 뜬금없는 얘기라도 써놔요. 오늘도 (인터뷰하면서) 몇 가지 뜬금없는 얘기를 했잖아요. 그러면 집에 가는 길에 버스나 지하철에서 한번 정리해서 쓴 다음 폴더에다 분류해놓는 거죠. 예를 들어 ‘이거는 어쩌면 <이상청> 시즌2에 써먹을 수 있겠다’ ‘이 말은 지금 쓰는 <제4차사랑혁명>(가제)에 써먹을 수 있겠다’ 판단하고 각각에 해당하는 폴더에 넣어놓는 거죠. 길가의 돌멩이도 어쩌면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식으로 정리해두는 그런 강박이 좀 생겼달까요. (웃음)”

처음부터 이렇게 꼼꼼하게 정리하는 습관을 들인 건 아니다. “30대 중반까지는 전혀 정리를 안 하고 그때그때 충동적으로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더 많은 걸 하고 싶어지다보니 정리하게 되더라고요. 또 이렇게 분류하지 않고 메모장 하나에 모든 걸 다 넣어서 200쪽을 넘어간 적도 있었어요. 근데 모아두기만 하니 그냥 ‘쓰레기장’이더라고요. 쓰레기장을 정리한 뒤에야 이게 굉장한 ‘곳간’이다 싶었죠.”

에필로그

그는 쉼 없이 말했다. (스스로 “뇌가 입에 달렸나봐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냥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다. 말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나타나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유려한 답변 도중에 말을 끊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예시를 하나 들면 그 예시가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흘렀다. “기자님 이거 재밌어요? 어떨 것 같아요?” 종종 의견을 묻기도 했다. 인터뷰이와 짐짓 거리두기를 해야 하건만, 고백하자면 그의 모든 아이디어에 낄낄거렸다. “이건 구상 중인 아이디어인데 절대 기사에 쓰시면 안돼요!”라고 신신당부한 아이디어를 말해줄 땐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지면에 밝히지 못해 애석할 따름이다. 반드시 언젠가 작품으로 탄생하길!)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깨달았다. 사실 그의 진짜 강점은 유머러스함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윤성호 감독은 농구, 특히 여자 농구를 좋아하는데 ‘언더도그’(이길 확률이 적은 팀)인 하나원큐를 자꾸 응원하게 된다고 했다. 이기는 팀보다 열세인 팀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 이런 것에 어릴 때부터 왠지 끌렸다고. “강자보다 약자 편에 선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건 아니고요. 주변에서 아이돌이 인기 있으면 인디음악 좋아하고, 인디음악이 인기 있으면 아이돌을 좋아하는? 약간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대단한 신념이 아니라고 거듭 말했지만, 너도나도 ‘힘 있는 쪽이 우리 편’ ‘이기는 것이 곧 정의’라 생각하고 남과 다른 목소리를 내길 주저하는 나라에서 구태여 번번이 지는 쪽에 눈길을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우리 모두 안다. 그 다른 시선이 녹아든 작품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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