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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연선 작가, "‘청춘시대’의 처음 시작은 술자리 심리테스트에서 부터"
손고운 사진 류우종 2023-03-14

책으로 출간된 <청춘시대> 대본집.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모두의 고민을 청춘의 얼굴과 언어로 말할 뿐

- 20대 여성의 고민과 현실을 잘 반영해서 <청춘시대>는 젊은 여성 작가가 쓴 작품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 굳이 청춘에 대해, 20대 여자에 대해 공부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내가 하는, 모두가 하는 고민이나 생각을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얼굴로’ 말했을 뿐이에요. 그들이 특별한 고민을 하고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예를 들면 등장인물 중 정예은(한승연)의 서사를 보면 데이트폭력이 나오는데, 성폭력은 대학생도 겪지만 50대 아줌마도 겪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거잖아요. 반응이 남다르지도 않을 것 같고, 물론 그 언어에서 조금 차이는 있겠지만요.

- 그런 인물 구상을 미리 끝내고 각본을 쓰시나요, 아니면 쓰면서 자연스럽게 구상하나요.

= 왔다 갔다 해요. 어제 <방구석 1열>을 보는데 거기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느 한 장면을 스케치하면서 이야기를 벌여간다’는 내용을 봤어요. 예를 들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첫 스케치가 치히로가 아빠 차 뒤에서 되게 불만스러운 얼굴로 꽃다발을 안고 누워 있는 거잖아요. 그걸 스케치하다가 ‘왜 이 소녀는 꽃다발을 안고 이렇게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벌여간대요. 저도 약간 그런 것 같아요. <청춘시대>도 첫 시작이 뭐였냐면, 그때 한창 술자리 심리테스트 같은 게 유행이었어요. 사이코패스 테스트 뭐 이런. 그런데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누군가 하나가 만점이 나왔다면 그다음 이 친구들은 얘를 어떻게 볼까’란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점점 생각하다가 그게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귀신을 본다고 그랬다면’으로 확장된 거예요. 각자의 트라우마가 있어야 볼 거잖아요. 여러 상황에 맞는 캐릭터를 모으고, 그 캐릭터들이 그럼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거기에 작가가 가진 주제의식이 들어가지 않나 싶어요.

- 한명의 작가가 여러 등장인물을 그릴 때 어떻게 목소리가 겹치지 않도록 작업하나요.

= 그런 게 약간 있지 않나요. 친한 사람과 있을 때의 나, 남자친구와 있을 때의 나, 직장인과 있을 때의 나, 모두 다르잖아요. 극중 유은재(박혜수)는 제가 20대 초반 서울에 갓 와서 ‘서울역이 어디냐’고 묻던 시절,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소심하던 모습을 닮은 거 같아요. 기분 나쁠 때는 강이나 같고, 술 한잔 들어가면 송지원(박은빈) 같고. 그런 나를 다 찾아내서 극대화하는 거죠. ‘이렇다면 어떻게 할까’라고요.

17년이 지나도 회자되는 <연애시대> 명대사

일본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 <연애시대>는 유산의 아픔을 겪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다 이혼한 부부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이혼 뒤 시작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신인 작가일 때 의뢰받아 쓴 작품인데 ‘원작보다 훌륭한 각색’이란 평가를 받았다. 신예 모델이 대거 출연한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명문고 학생들이 눈으로 고립된 학교에 들어온 연쇄살인마와 싸우면서 변해가는 모습을 그렸다.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상업주의 드라마 흐름에서 벗어난 길을 모색했다.

-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쓸 때 <파리대왕> 같은 소설을 읽었다고 하셨는데요.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가 있을까요.

= 아다치 미쓰루의 만화 <H2>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그리고 <슬램덩크>. 그 둘은 열번은 본 것 같아요. 대사를 티키타카 쓰는 법, 캐릭터를 만드는 방법, 어떻게 하면 이게 유머가 되는지를 배웠어요. 소설가로는 박경리, 이문구 작가를 좋아해요. <토지>에서 이 긴 시간과 많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쓸 수 있었을까. <관촌수필>에는 충청도의 아련하고 슬픈 정서가 있어요.

- <연애시대> 명대사가 인터넷에 돕니다. 은호(손예진)의 “사진을 보면 슬퍼진다.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고 있어서, 이때의 나는 행복했구나 착각하게 된다”란 대사가 인상적이었어요. 대사의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나요.

= 초창기에는 기본적으로 다 스스로 생각한 것을 대사로 썼어요. 어려서부터 우울증은 아닌데 미래에 대해 어떤 낙관적이지 않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링크(연결)를 건다고 할까요. 주인공과 링크를 걸어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거예요.

-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은 정서는 어디서 출발했을까요.

= 집이 충청도 서산 아주 산속에 있었어요. 겨울에 고라니가 앞마당을 지나가요. 그래서 밤이 되면, 정말 불을 켜지 않으면 자기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였어요. 뭔가 자연의 흐름을 거부하지 못하는 게 있었어요. 사계절을 사계절로 느끼고, 낮과 밤을 내가 지배할 수 없는 느낌. 인간이 죽음을 거부하게 된 게 전구가 발명되고부터래요. 밤도 낮같이 밝히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고, 죽음도 거부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졌다는 거예요. 그와 정반대로 저는 어릴 때 제가 지배할 수 없는 자연의 속성이 굉장히 무서웠어요. ‘세상의 전부인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하지’란 유아적인 공포로 시작해서 시간의 흐름을 깨달으면서 기본적인 허무함, 우울함을 알았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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