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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광진 작가, “‘이태원 클라쓰’ 에서 가장 애착하는 대사는...”
박기용 사진 김진수 2023-03-15

사진제공 JTBC

“술맛이 어떠냐?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다는 거다. 쓰린 밤이… 내 삶이… 달달했으면 했어.”(<이태원 클라쓰>)

-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장 애착을 느끼는, 스스로 생각해도 잘 썼다 싶은 대사가 있다면 어떤 걸까요.

= 추억이 있는 대사가 “(술)맛이 어떠냐?”입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 생일날 타지에서 산 위에 울타리를 짓는 막노동을 했어요. 한데 산에서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거예요. 일은 조금 고됐고. 마치고 트럭 뒤에 타고 내려오는데 노을이 지고 휴대전화가 터지면서 생일 축하 문자가 한번에 오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습니다. 친구들이랑 빨리 놀러 가고 싶은데 짠돌이 소장님이 고기랑 술을 사주시는 거예요. 전 술을 안 좋아하는데 그래도 첫잔은 웬만하면 받자는 게 제 ‘룰’이거든요. 근데 항상 쓰기만 했던 소주가 그날 엄청나게 단 거예요. 제겐 그날 하루가 전체적으로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술)맛이 어떠냐’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다는 거다’ 이렇게 (대사로 만들었습니다).”

- 그 대사로 드라마가 끝나잖아요.

= 그래서 (제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 뒤에 박새로이(박서준)가 미소로 답하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답니다’라고 대답할까도 생각했는데 미소로 하길 잘한 거 같아요.

- “소신에 대가가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 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단어를 좀 궁리한 거 아닌가요.

= 보통은 (소신에) 후폭풍이 있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눈치 보며 말을 못하니까. 실은 문맥이 조금 이상해서 아쉬웠는데 축약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한데 이게 박새로이가 평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거니까 문맥이 자연스럽거나 딱 맞을 필요는 없다고 합리화했습니다. (웃음)

사진 김진수 <한겨레21> 선임기자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어. 근데 책임은 아무나 질 수 없는 거다?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야.”(<이태원 클라쓰>)

<이태원 클라쓰>의 주인공 박새로이는 이런 느낌이다. 바닥을 치고 세상의 끝에서 다시 돌아온다. 복귀는 물론 화려하게. 아무것도 없이 전과자라는 낙인까지 극복하고 10년에 걸쳐 거대 권력을 상대로 한 복수를 끝내 성공한다. 지켜본 이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대리 만족한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나를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 부모가 자식에게 ‘이렇게 살아라’라며 시청을 권하기도 한단다. 박새로이란 인물을 창조한 조 작가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한계를 시험한.

- 20대 때 여러 일을 전전하며 공모전에 응모하는 생활을 6~7년가량 하다 빚더미에 몰렸던데, 어떻게 데뷔하게 됐나요.

= 작업실 구할 비용을 모으려고 간 공장에서 돈을 많이 주는 거예요. 월 300만원가량. 6개월 정도 일했어요. 그때 차를 샀는데 다들 “축하한다” “한번 태워줘” 그러는데 한 형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광진아, 근데 난 좀 그렇다.” “예? 뭐가요?” 그랬더니 형님이 “네가 처음 작업실 구하러 왔다고 했을 때 (꿈이 있어서) 좋아 보였는데, 형이야 너 오래 보면 좋지만 차 할부 내고 그러면 네가 원래 계획했던 거 못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하고 말았는데 공장 일이란 게 반복 작업이잖아요. 혼자 생각을 엄청나게 많이 하게 돼요. 형님 말씀이 계속 맴도는 거예요. 내가 이 일 계속하면서 할부 다 갚으면 서른이 넘을 텐데 그때도 내가 만화를 잘 그릴까, 그때도 공모전에 될까,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된 거죠. “내가 실수를 크게 했구나.” 거기가 진짜 바쁜 곳이었어요. 사람이 귀해서 잘 쉬지도 못하게 하는데 그 형님한테 “저 일 그만둬야 할 거 같아요” 말씀드리니 다른 사람들은 안된다고 하는데 그 형님은 “알았어, 너 지금 바로 나가” 하면서 그만두게 해주고 응원해주고.

- 귀인을 만난 거네요.

= 네. 이름도 아직 기억해요. 이정길이라고. 아무튼 그렇게 작업을 시작했는데, (일을 그만둔 것도) 너무 충동적이었던 거죠. 차를 할부로 샀으니 갚을 생각도 해야 했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고. 그때 공모전이 하나 떴어요. 석달 남았고 상금이 1천만원이었는데 이걸 미친놈처럼 준비해서 따내자, 그렇게 생각했죠. 카드랑 각종 대출받고 차도 담보 잡혀서 준비했는데 떨어졌어요. 그때부터 빚 독촉이 시작됐어요. 사람이 궁지에 몰리니까 어딘가 이상해졌어요. 복권도 막 긁고. 원래는 떨어지면 다 포기하고 뭐든 해서 돈 벌 생각이었는데. 한데 제가 그때 아무것도 안 하고 석달 동안 그림만 그린 건 처음이었거든요. 감이 조금 왔어요. 만화를 어떻게 그릴지 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6개월만 더 하자고 시골로 내려갔어요. 하루에도 몇번씩 오던 빚 독촉도 (전화 요금을 못 내서) 끊어지고. 그렇게 거기서 데뷔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