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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글로리’ 김히어라, “파트2가 더 재미있다는 확신이 강했기에 더 자신 있었다”
이자연 사진 최성열 2023-03-23

뮤지컬 <팬레터>로 연극·뮤지컬 팬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시작한 김히어라는 2021년 <괴물>을 시작으로 매체 연기를 선보였다. <배드 앤 크레이지>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용사장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사랑하는 딸을 뒤로하고 자수를 결심한 탈북민 계향심을 그린 그는 본능적으로 인물의 한끗을 올려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해낼 줄 알았다. 무수한 질문에도 공백 없이 답하는 김히어라의 모습 속에서 오랫동안 고민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태도를 보았다. <더 글로리> 속 이사라를 완성하기까지 그가 남긴 궤적을 함께 되짚었다.

- 파트1과 파트2에서 사라의 미묘한 태도 차이가 드러난다. 파트1에서는 연진이(임지연)를 주축으로 친구들의 위계가 확실했던 반면 파트2에서는 “사실 다들 얘기 안 해서 그렇지 윤소희는 너가 어떻게 한 거 아니야?” 하며 스스럼없이 공격하기도 한다.

= 연진이와 혜정이(차주영)가 본인이 열망하는 것을 얻으려는 의지가 강하다면 사라는 상대적으로 그런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 존재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편에 가깝달까. 워낙 다른 사람보다 충동적이고 절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순간적인 생각이나 불쾌감을 필터링 없이 드러낸다. 파트1까지만 해도 사라에겐 기댈 것들이 많았다. 마약도 있고 심부름을 대신 해주는 명오(김건우)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제거되면서 자기 상태 외엔 눈에 보이는 게 없어졌다. 그래서 더 거친 말을 쉽게 쏟아낸다. 이건 연진을 공격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고 본인에게만 치중하다 보니 그렇게 행동한 것인데 아무래도 연진에겐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 파트2에서는 사라에게 마약 공급이 끊긴 이후의 상황이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금단증상에 관해 대본에 지시됐던 묘사와 스스로 조사하고 체득한 묘사는 어떻게 달랐나.

= 대본에 담긴 지문들이 사라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마구 먹거나 너무 추워서 한여름에도 패딩을 입거나 수면양말을 껴입는 등 금단증상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치들이 충분했다. 하지만 약을 끊은 이후에 사람마다 보이는 증상이 각기 다르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라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더 충동적이고 예민해진 사라가 뇌가 굳어지고 눈앞이 하얘지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서 말과 말 사이에 버퍼링을 주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손명오 본 사람!” 했다면 금단증상을 겪은 뒤엔 “며… 명오 본… 사람”으로 발음했다. 그러다 교회에서 마약을 다시 손에 쥐고 뱀과 손명오의 환영을 보고 나서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여주려 했다. 뱀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싸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 지난 두달간 <더 글로리>의 결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예측을 쏟아냈다.

= 너무 감사하고 즐거웠다. 내부적으로는 팀원 모두가 파트2가 더 재미있다는 확신이 강했기에 더 자신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기대감이 커져가는 게 두려웠을 것 같다. (웃음) 가장 기억에 남은 반응은 ‘오은영 선생님도 포기한 금쪽이’ 밈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보내주길래 제목만 보고 ‘누굴까~’ 하고 봤는데 나더라. (웃음)

- 그 밈 정말 유명하다. (웃음) 부모에게 마약이 합법인 네덜란드로 보내달라고 떼쓰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어떻게 촬영했나.

= 대본에는 한줄로 쓰여 있었다. ‘마치 엑소시스트처럼.’ 그래서 몸을 배배 꼬고 누운 채로 등을 붕 띄웠다. 사실 성인이 떼를 쓴다는 게 일면 기괴해 보이고 또 사탄처럼 내내 소리를 질렀는데 이 장면을 그렇게 봐줄 줄은 몰랐다. 숨길 수 없는 나의 귀여움 때문일까. (웃음)

- 사라의 몰락이 시작된 예배당 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어떤 점에서 사라는 동은이(송혜교)와 계속 맞붙어가면서 카타르시스를 발전시키기보다 마약과 섹스의 대상으로만 전락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 파트2를 몰아보다가 다소 충격받았던 장면이 있다. 연진이가 하도영(정성일)에게 “왜 하필 최혜정을 만나”냐고 물을 때 하도영이 “그럼 누구한테 물어? 이사라 약 하지, 그건 논외야” 하고 답하는데 ‘나는 왜 논외지? 사라가 이 정도인가?’ 싶었다. 김은숙 작가님은 <더 글로리>를 통해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가정 폭력과 성희롱 등 다양한 소외 계층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라도 어떤 사회적 시선을 담아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중독 물질에 중독되어 아무도 그의 존재를 위협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의 존엄성을 누구도 존중해주지 않는 외로운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왜 사라는 격렬한 대결 구도에 개입되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그런 부분을 반영한 듯하다.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사라들을 위한 경고이기도 하다. 너의 선택은 결국 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만들 것이고 아무도 너를 구제해주지 않는다고. 또 한편으로 서사적으로 필요한 장치였다는 생각도 든다. 사라가 연진이의 학창 시절 모습을 폭로하기 위한 기폭제로서의 장면이지 않았을까. 잃을 게 없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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