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물은 포지션이 곧 중요한 캐릭터 설정이 된다. <리바운드>에서<슬램덩크>의 송태섭처럼 경기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며 득점도 가능한 가드를 맡은 캐릭터는 천기범(이신영)이고, 스몰 포워드(비교적 신장이 작은 공격수) 배규혁(정진운)이 하는 역할은 서태웅과 윤대협에 비유할 수 있겠다. 미래가 촉망되는 천재였지만 키 성장이 멈춘 후 슬럼프에 빠진 기범과 발목 부상으로 농구를 접은 규혁이 각각 갖고 있는 개인사도 있다. 2012년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최약체 부산 중앙고 농구부의 반전 드라마를 영화화한 <리바운드>에서 감정과 신체 연기의 균형을 신중히 고민하며 접근한 두 배우와의 만남을 전한다.

이신영, 정진운(왼쪽부터).

이신영 배우는 의외로 구기 종목에 관심이 없고, 정진운 배우는 원래 농구를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신영 학창 시절에도 남들이 축구나 농구를 할 때 친구랑 운동장을 한 바퀴 걸었다. (웃음) 장항준 감독님이 농구가 중요한 영화라며 일주일 동안 시간을 줄 테니 실력이 어느 정도 느는지 보고 싶다고 하셨다. 농구 연습 과정을 영상 일지로 찍어서 일주일 동안 성장하는 모습을 편집해 감독님에게 직접 보여드렸다. 그때 앞으로 계속 연습하면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다. 촬영 두달 전부터 매일 아침과 저녁 운동을 하며 영상을 찍었다. 실제 농구 선수들의 영상을 보면서 드리블 자세, 농구 선수 특유의 습관, 상대방을 제칠 때 표정, 손을 쓰는 법 등을 공부했다. 합숙에 들어간 후에는 동료 배우들에게도 많이 배웠고 현장에서 자문도 많이 구했다.

정진운 조감독님의 추천으로 감독님을 만났다. 이미 시나리오를 읽고 역할에 욕심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작품의 디테일한 점에 대해 질문도 많이 드렸다. 사실 농구에 자신이 있고 연기도 계속 해왔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도전했는데, 내가 좋아서 하는 농구와 실존 인물이 되어 하는 농구는 굉장히 달랐다. 실제 배규혁 선수의 습관, 태도, 생각을 잘 만들어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원래 내 모습이 나오고, 그건 대중이 TV에서 봤던 정진운의 농구가 된다. 그래서 농구 훈련보다는 실제 인물에 가까운 느낌을 줄 수 있는 스타일링과 아이템쪽을 더 연구했다.

실제 농구를 잘하는 것과 실제 선수처럼 보이게끔 연기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것 같은데.

정진운 액션영화는 어떻게 주먹을 날려야 카메라에 잘 담기는지를 배우고 시작하지만, 농구는 실제로 농구를 잘하면 앵글에도 잘 담긴다. 그래서 모든 합을 잘 맞춰야 한다. 리허설 땐 30에서 70 정도만 힘을 쓰면서 상대와 연습하다가 실전에서 100을 썼다. 실제로 발목 수술을 네번 했기 때문에 규혁이 운동을 할 때 어떻게 아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그 부분은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었다.

이신영 실제 선수 출신과 연기를 했기 때문에 피지컬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합을 맞추다보면 내가 튕겨져 나갈 때도 있다. (웃음) 그래서 슬럼프에 대한 이입은 자연스럽게 됐다. 팀워크가 잘 맞아야 개인 기량도 발휘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진두지휘를 잘해줘야 한다.

기범과 규혁은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 서로 감정이 좋지 않다. 그들의 관계 회복은 두 캐릭터의 중요한 서사 중 하나인데 어떻게 접근했나.

이신영 후배 배우가 먼저 싹싹하게 다가가야 하는데 내가 낯가림이 심해서 그러지 못했다. 기범과 규혁이 오랜만에 다시 만난 신을 앞두고 형과 대화를 많이 나눴는데 그때까지도 계속 서먹서먹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서먹서먹함 때문에 장면을 더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신을 찍은 이후 형과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촬영 현장에서 이렇게 동네 형처럼 편한 사람은 처음 본 것 같다. (웃음)

정진운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 들으며 대사를 해야 했는데, 연기를 의식하기보다는 실제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감정이 들지를 상상하며 진심으로 연기했다. 촬영을 끝내고 정말 후련했는데, 그 뒤로 신영이가 오히려 날 많이 챙겨줬다. 다른 배우들과 나이 차가 많이 나기 때문에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허물을 없애고 팀워크를 다지려고 노력했다.

평소 배우들이 모여 있을 때도 운동부처럼 행동하게 되지 않나.

이신영 우리끼리 고깃집에서 회식을 한 적이 있는데 다들 우적우적 고기를 먹는 모습이 진짜 운동부 선수들 같았다. 행색이 그래서인가, 사람이 많은 동네였는데도 우리가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웃음)

정진운 그때 5명이서 10인분씩 다섯번, 총 50인분은 먹었을 거다. 단체로 워머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으니까 실제로 어르신들이 지나가다 어느 학교 운동선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웃음)

이신영 배우는 모델 에이전시를 다니며 모델 준비를 했는데 키의 성장이 멈춰서 슬럼프가 왔다는 사연을 들었다. 기범 캐릭터와 유사한 지점이 있다. 2008년 2AM으로 데뷔한 정진운 배우는 연예계 생활 15년이 흘렀는데, 규혁의 어려움과 자신의 과거 고민이 겹쳐 보인 적은 없었나.

이신영 기범 캐릭터에 공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모델 하나만 바라보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꿈을 포기하니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러다 고3 때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연기 동아리에 들어갔고, 연기의 재미를 느끼면서 배우가 됐다.

정진운 비슷하기 때문에 오히려 다르게 접근했다. 내가 그 과정을 겪어봤기 때문에 규혁을 이해한다고 나서면 자칫 그의 감정을 뻔하다고 단정 짓고 예상 가능한 연기를 할 수 있다. 내 생각을 덧붙이지 않고 시나리오만 생각하며 캐릭터에 접근했다. 어릴 때 발목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뒀기 때문에 가끔 계속 농구를 했다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을까 상상할 때가 있다. 사실 예전에 실제 선수를 만난 적이 있다. 2013년 부산 중앙고에서 열린 연예인 농구대회 초청을 받아 함께 경기를 뛰고 기념사진도 찍은 적이 있는데, 그때 배규혁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리바운드> 영화화를 준비할 때 자신의 캐릭터는 내가 연기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굉장히 신기한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