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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글로리’ 임지연, “나만의 빌런을 그리고 싶었다”
이자연 2023-03-31

사진제공 넷플릭스

교실에서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친구를 귀신같이 찾아내 무자비하게 괴롭히고도, 정작 자신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딸에게 “강아지!”라 부르는 박연진의 이중성은 순수악에 가깝다. 이 순수성의 농도가 짙을수록 악을 향한 복수와 단죄의 힘은 무한대로 커지고 카타르시스는 최절정에 이른다. 이 클라이맥스의 힘을 증명하듯 지난 3월10일 파트2 공개 이후, <더 글로리>는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글로벌 1위를 차지하고 1억2359만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아마도 연진이는 영원히 자신의 잘못을 모를 것”이라는 배우 임지연을 만나 박연진만이 추동할 수 있었던 복수극의 이면을 살펴보았다.

- <더 글로리> 속 박연진은 상황과 감정에 따라 표정을 역동적으로 바꾼다. 얼굴의 잔근육을 많이 활용했을 것 같은데 이러한 미세한 표정 변화는 어떻게 구축했나.

= 연기할 때는 잘 체감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영상으로 보니 정말 다양한 표정을 썼더라. 그런데 사실 모든 표정을 하나하나 계산한 건 아니다. 내 평소 습관이 많이 드러났는데 예를 들어 입술 한쪽 끝을 올려 웃거나 미간의 주름을 쓰는 게 그렇다. 문동은(송혜교)의 등장과 함께 연진이에게 몰려드는 짜증과 열받음을 표정으로 표현해보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절제하는 동은이가 있어서 많이 표출하고 발산하는 연진이가 더 눈에 잘 띄었던 것 같다. 둘의 대조가 디테일을 살렸다.

- 연진은 예상치 못한 동은의 등장에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나약함이나 두려움을 조금도 내비치려 하지 않는다. 만만치 않은 악역을 그리기 위해 어떤 점을 신경 썼나.

= 촬영 초반부터 안길호 감독님께서 다섯명의 가해자 중 연진이에게 가장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에너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디렉션을 주셨다. 그게 연진이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좀 불안해하고 떨어야 시청자들도 시원하지 않겠나. (웃음) 그래서 동은이가 담임 교사로 왔다는 것을 안 순간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고 말하고 난 뒤 뒤돌자마자 표정을 구겼다. 초조한 감정을 담고자 했다. 처음에는 아예 반응하지 말자고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연진이 입장에서 흔들리는 지점을 드러내야 더 다채로울 것 같았다.

-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악역으로 대표되는 인물들이 있다. 참고한 악역도 있는지.

= 오히려 생각하지 않았다. 국내외 작품에 무서운 빌런들이 있지만 일부러 참고하지 않으려 했다. 나만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고, 이미 대본이 너무 탄탄했기 때문에 이것만 잘 살리면 충분히 매력적인 악역을 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 글로리> 공개 이후 ‘누구 같다’는 말보다 임지연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평가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방향을 잡은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연진이에게도 의외성이 돋보이는 구석이 있다. 특히 직업인으로서의 자아가 크다. 동은이 말마따나 “적당히 고급진 직업”을 가지려 한 줄 알았는데 친구들에게 “중계차 나갈 땐 부르지 말라”고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이혼 기사가 나고서도 성실하게 꼬박꼬박 출근을 한다.

= 새벽 2시에 일어나 줄넘기하고 출근을 하기도 하고. (웃음) 주변에서 연진의 직장 생활에 대해 많은 분들이 반응해주신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놓고 그만둘 땐 또 쿨하게 나가버린다. 뒷일을 생각 안 한달까. 그렇지만 연진이는 기상 캐스터로서 성공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기상 캐스터가 된 현재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다. 보여지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고 자기만족의 기준점이 뚜렷한 편이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 화려한 이미지를 즐기는 반면 자신을 헌신하면서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원한다고 이해했다.

- 동은오적 멤버의 결말에 대한 각 배우의 반응은 어땠나.

= 우리끼리도 대본 나오기 전부터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8부까지 시나리오가 나온 상태에서 촬영 중 다음 대본이 순차적으로 나왔는데 마지막 16부 대본이 나오기 직전 감독님에게 “저 죽죠? 저 죽이지 마세요!” 했다. (웃음) 근데 다른 배우들도 그렇게 애걸복걸했다. 죽이지 말라고. 각자의 개성에 맞춰 가장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든다.

- <더 글로리>를 통해 배우 임지연은 어떤 변화를 느꼈나.

= 작품과 캐릭터를 선택하는 단계에 용기가 많아졌다는 걸 느낀다. ‘박연진’이라는 역할을 맡게 된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더 글로리>는 내가 마음껏 도전하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이 아닌 나를 믿을 수 있게 해준 작품이다. 아직까지도 현장에 나가면 연기를 잘 못할까봐 두렵다. 항상 무섭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걱정하지 않을까. (웃음) 그래서 더 대본을 분석하고 탐구하는 마음으로 본다. 이렇게 작품을 두고 스스로 퀘스트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내 모습이 조금 대견하고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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