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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육왕>

이케이도 준 지음 / 송태욱 옮김 / 비채 펴냄

믿을 수 없는 사건을 흔히 ‘소설 같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드라마틱하다’고 할까. 사전을 찾아보니 ‘사건이나 상황이 매우 극적인 데가 있다’를 ‘드라마틱하다’고 설명한다. 일본에서 시청률 50%을 기록한 드라마의 원작 <한자와 나오키>의 작가 이케이도 준의 소설 <육왕>에는 ‘드라마틱’이라는 표현이 걸맞는다. 작가의 전작이 영상화되어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온 데에는 그의 소설 속 서사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동적인 전개 방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주인공이 업계의 편견과 기득권의 방해를 뚫고 나가 정석대로 노력해 정의(혹은 성공)를 획득하는 서사다. 물론 이는 그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일본 전통 버선 ‘다비’를 만드는 작은 제조회사 고하제야는 기업의 역사가 100년이 넘었지만 시대의 변화로 사양길을 걷고 있다. 4대째 대표인 미야자와는 자기 세대까지는 전통 다비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다음 세대에선 어려울 것이라는 예감을 일찌감치 하고 아들 다이치에게는 가업을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오래 관계를 맺어온 은행의 담당 직원 사카모토는 “고하제야의 강점을 살린 신규 사업을 해보시라”는 조언을 건넨다. 미야자와와 직원들은 맨발 같은 느낌의 러닝슈즈 ‘육왕’을 개발하기 위해 분투한다. <육왕>이 영상 드라마를 연상시킨다고 한 것은 한고비 넘었다 싶으면 새 과제가 나타나고, 그때마다 주인공에게 귀인이 나타나 도움을 주어 난관을 헤쳐나가는 에피소드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다. 무모한 도전을 하려는 대표와 실무진의 갈등, 영세 업체를 방해하는 대기업과 은행 지점장 등 악재는 다음 골목마다 연이어 튀어나온다. 재미를 위해 소설을 읽는다면 <육왕>은 그 목적에 충실한 선택지다. 부상을 딛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육상 선수 모기의 부활과 영세 기업의 성장을 새끼줄처럼 연결해 독자는 양쪽 모두를 응원하며 관전할 수 있다.

<육왕>의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공허한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냉소적인 성공보다는 상식적인 과정을 그린 이야기가 지금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

408쪽

“여기 재봉틀하고 같네요.”

이야마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하지만 착각하지 마. 대체할 게 없다고 해도 부품은 결국 부품이야.”

“중요한 건 노하우인가요?”

다이치가 물었다.

“아니, 아니야.”

이야마는 어디가 아픈지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사람이야.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