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씨네21 추천도서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진영인 사진 백종헌 2023-06-20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 장성주 옮김 / 비채 펴냄

SF계의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가 그려낸 디스토피아 ‘우화’ 시리즈의 완결편이다. 기후 위기와 경제 위기가 겹쳐 ‘말세’ 혹은 ‘역병기’로 불리는 2015년에서 2030년이 소설의 배경이다.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내던 소녀 로런은 혼란의 시대에 느닷없이 공격당해 집과 가족을 잃고 고생하다 남편 반콜레를 만나고, 산속에 에이콘이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었다. 갈 곳 없는 약한 사람들을 하나둘 받아들인 것이다.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속에서, 로런은 새로운 종교 지구종을 창시한다.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라는 믿음으로, 지구뿐만 아니라 바깥의 우주 세상으로도 생명의 씨를 뿌리고자 하는 종교다. 공동체 모두가 지구종을 믿지는 않지만, 다들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 작물을 내다 팔면서 위험한 세계 속에서 한 조각의 평온을 찾는다. 로런이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흡수하는 ‘초공감자’라는 설정은, 등장인물이 어떤 고통과 기쁨을 느끼며 삶을 꾸려나가는지 생생하게 전하는 효과를 낸다.

종교가 인류에게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면, 디스토피아적 세상일수록 믿음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면, 타인을 억압하는 종교 대신 사랑과 포용으로 인간을 감싸는 새로운 종교가 나타나면 어떨까. 로런의 ‘지구종’은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마음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탐구한다. 소설 속 미국은 하나의 믿음만을 강조하는 재럿 대통령의 당선 이후 이교도 정화를 자처하며 길거리 부랑자나 노숙인, 소수자를 노예로 만드는 이들이 판을 친다. 말 그대로 목에 전기가 통하는 목줄을 걸고, 말을 듣지 않으면 목줄을 통해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폭력을 냉소와 도피로 이길 수는 없으리라.

이 책은 1999년 네뷸러상 수상작으로, 정치적 극단주의가 세를 불리고, 기후변화로 고온이나 홍수 같은 재난을 겪는 지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지역 분쟁이나 전쟁도 빈도가 잦아지는 21세기를 내다본 예언서라는 인상을 준다. 특히 교회를 등에 업고 국외에서는 전쟁을 일으키고 국내에서는 소수자를 탄압하여 인기를 얻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기시감이 든다.

82쪽

“힘든 시절을 버텨내려면 누구나 꿈이, 환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