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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어른동화’ 감독 겸 작가, “잘못된 관행은 고쳐져야 한다”
정재현 2023-06-23

2023년 6월11일, ‘제 영화를 허락없이 촬영하고 있는 갑질 영화사를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웹툰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재되었다. 한 영화사가 웹툰을 업로드한 감독 겸 작가 윤씨의 작품 <어른동화>와 관련해 부당한 계약을 맺었고, 이 계약마저 이행하지 않은 채 감독 윤씨를 배제하고 무단으로 지난 5월 영화 촬영에 돌입했다는 내용이었다. 윤씨는 영화사 수작과 맺은 각본 및 감독 계약이 해지조차 불가능한 불공정 계약이며, 현재 수작은 이 불공정한 계약마저 이행하지 않고 다른 감독을 고용해 허가 없는 영화 촬영에 돌입했다고 주장한다. 한편 수작은 해당 계약은 불공정한 계약이 아니며 원작자인 윤씨가 연출권을 거부해 수작측이 보유한 영화화 권리를 근거로 다른 감독을 고용해 촬영에 들어간 것이라 주장한다. <씨네21>은 윤씨와 만나 웹툰 내용에 관한 당사자의 입장을 들었다. 분쟁 건에 관한 수작측의 입장 역시 후속 보도할 예정이다.

- <어른동화>의 영화화 논의 당시 수작과 맺은 계약이 어떤 면에서 불공정했다고 보나.

= 2020년 10월15일, 수작과 표준계약서가 아닌 ‘각본 및 감독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 제2조에 “이 계약은 본건 영화에 필요한 각본 및 감독으로서의 모든 역할을 완료할 때 종료된다”고 적시돼 있다. 계약서의 4조부터 6조 또한 감독의 권한과 의무 조항이다. 즉 이 계약서에 감독의 역할은 분명히 설정된 반면, 각본가 혹은 각본료에 관한 조항이 없다. 각본 계약과 감독 계약은 따로 체결하는 것이 관례다. 각본의 단독 계약을 체결할 경우 몇몇 고의 수정을 거쳐 최종 시나리오가 나오면 양자가 계약 시 정한 금액이 정산되지 않나. 그런데 감독 계약과 각본 계약을 같이 묶으면 감독으로서의 모든 역할이 종료돼야 계약이 끝난다. 제작사 입장에선 각본료를 지급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계약서인 것이다. 계약서의 다른 부분도 불공정하다. 5조에는 “갑(수작)의 의무로 계약에 의해 지급해야 할 각본 및 보수 총액은 본 영화의 메인 투자가 결정된 시점에 갑과 을(윤 감독)이 협의하여 결정한다”는 조항, “메인 투자가 결정된 후 각본 및 감독 보수 총액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건 투자 결정이 되지 않으면 돈을 받지 못하는 노예 계약이 아닌가.

- 계약서에 각본 및 감독 보수 총액의 1차 지급액인 500만원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안다.

= 하지만 이건 각본료가 아니다. 말 그대로 '각본 및 감독' 계약금의 일부일 뿐 수작 측의 주장처럼 각본료가 아니다. 그리고 계약서에는 보수의 총액조차 없다. 수작 측은 크랭크인을 한 뒤에야 비로소 내게 각본료와 위로금을 제시했다.

- 위 계약이 부당했다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도 있지 않나.

= 수작과 맺은 각본 및 감독 계약서엔 계약 해지 조항이 빠져 있어 해지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2021년 12월, 영화인 신문고(이하 신문고)의 문을 두드렸다. 신문고는 중재 결정을 내려도 한쪽이 거절하면 더이상 중재를 강제할 수 없다. 하지만 수작이 계약을 해지하라는 신문고의 결정을 거절했다.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한 건 분명 입봉에 대한 간절함이 부른 내 실수다. 하지만 해지하지 못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면, 나를 감독으로 쓴다는 계약은 이행해야 하는 거 아닌가. 수작이 이 불공정한 계약조차 준수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분쟁의 핵심이다.

- <어른동화>는 이미 윤 감독의 실명으로 2013년 저작권 등록을 마친 작품이다. 수작측은 영화화 권리가 본인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 2021년 1월, 수작과 영화화를 논의하던 당시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예술영화 지원사업에 <어른동화>의 제작지원을 신청했다. 영화화 권리 확인서는 이 사업에 응모 시 제출해야 하는 필수 서류다. 수작측은 이 서류의 신청인이 본인이란 이유로 영화화 권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위 사업은 수령했던 제작지원금을 전액 반환하며 종료됐기 때문에 수작에겐 영화화 권리가 없다.

- 제작지원금을 반환한 까닭엔 제작이 지연된 이유도 포함되나.

= 수작과 나의 계약엔 제작사의 의무가 명시돼 있다. “본건 영화의 제작을 위하여 한국영화계에서 관례적으로 제공하는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하여야 한다”고. 제작사가 내게 제공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 중 하나가 각색 작가다. 시나리오가 좋으면 투자와 캐스팅이 성사돼 제작에 쉽게 착수할 수 있으니까. <어른동화>는 여성 서사다. 끊임없이 작품을 고쳐 썼지만 시대상도, 젠더 감수성도 많이 변했다. 또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견지하지 못하는 여성 캐릭터에 관한 이해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시나리오를 위해 제작사에서 각색 작가를 지원했어야 하는데 수작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 수작은 윤 감독 본인이 <어른동화>의 연출을 거부 했다고 하던데.

= 최초 분쟁일(2021년 10월8일) 이후 수작이 무응답으로 일관하자 계약을 종결하자는 의미로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수작은 내가 연출권을 포기했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설령 내가 연출권을 포기했다 하더라도, 연출권에 관한 기존 계약은 정리하고 각본에 관한 계약을 새로 맺어 성문화하는 것이 절차에 맞지 않나. 수작은 11월1일자로 “모든 용역 결과물(스크립트 포함)에 대한 권리는 제작사가 소유한다”는 권리 귀속의 내용과 “제3자에게 감독 용역 등을 제공하지 않을” 의무가 담긴 내용증명을 보냈다. 어디서 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다른 제작사와 접촉해 영화를 만들려는 정황을 포착했으니 이를 중지하라는 내용도 포함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적이 없다. 수작과 나의 다른 저작물인 <이미테이션>의 계약이 이미 유지되고 있던 터라 겸업 금지 조항을 어길 수 없었다. 수작은 내 연락에 내내 답하지 않던 10월 <이미테이션>을 본인들의 단독 저작물로 등록했다.

2022년 3월3일, 나를 배제한 채 프리프로덕션을 진행 중인 <어른동화> PD에게 불공정한 계약서의 시정, 서로간 신뢰를 회복할 대안 제시, 그리고 내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된 캐스팅 작업의 중단을 요청했다. 또한 3월8일, 불공정한 계약을 해지하고 신문고가 제시하는 표준계약서를 재작성하자고까지 했다. “합의되지 않은 일체의 저작 행위를 멈춰 달라”고 했으나 이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자꾸만 내가 작품의 연출권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를 배제한 제작에는 다른 문제도 있다. 계약서에는 배우 캐스팅 진행 및 스탭의 고용, 해고 시 감독과 사전 협의한다는 조항이 있다. 그런데 캐스팅을 포함해 <어른동화> PD라며 내게 연락한 분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 이후 분쟁은 어떻게 진행됐나.

= 2022년 6월, 신문고가 <이미테이션>의 저작권 반환과 <어른동화>의 계약 해지를 요청했으나 수작이 거절했다. ‘각본 및 감독 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나를 제외한 영화화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해 <이미테이션>의 반환을 위한 소송 준비에 한창이었다. 그러다 올해 3월 수작이 다른 감독을 고용해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그래서 4월19일, 본건 계약의 불공정한 내용 수정을 포함해 제작 전반에 대한 협의를 담은 내용증명을 보냈다. 지난 5월8일 수작의 내용증명을 받았고, 수작측 PD를 대면했다. 최초 분쟁일 이후 처음으로 작품 관계자를 만난 것이다. 영화의 크랭크인 날짜 전에 만나서 정리하자는 의견까지 보냈지만 그들의 휴차 일정에 맞춘 23일에 만났다. 이후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검수를 받은 후 수작을 포함해 공동 제작사 모두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한 것은 내 섣부른 결정이다. 그런데 계약서상 을인 내가 해지하지 못하는 불공정한 계약을 이행조차 하지 않는 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힘들고 지치는 싸움이다. 그런데 내가 여기서 합의를 해버리면, 누군가는 “이렇게 이슈가 돼도 멋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나쁜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새끼에게 칼을 꽂고 있는 형국이지만 어쩔 수 없다. 환부는 도려내야 하고, 잘못된 관행은 고쳐져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