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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7호 [인터뷰] ‘고래의 뼈’ 오에 타카마사 감독, “영화는 평면의 예술이다”
이우빈 사진 최성열 2023-07-05

<고래의 뼈> 오에 타카마사 감독

<고래의 뼈>엔 ‘Mimi’라는 증강 현실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한다. 이용자가 특정 위치 좌표에 본인의 모습을 영상으로 저장하면 다른 이용자들이 해당 위치에서 영상을 재생할 수 있다. 영상 속의 인물은 마치 현실에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주인공 마미야는 어느 날 Mimi의 인기 이용자인 아스카를 실제로 만나게 되고, Mimi 속 그녀의 흔적을 쫓는다. <고래의 뼈>의 중핵은 ‘가상과 실재의 차이란 무엇인가?’란 오래된 미답의 논제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에 타카마사 감독은 ‘세계는 평면이다’라는 생각을 영화 만들기에 적용하여 ‘평면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 <간니발> 등의 각본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그의 머릿속은 현실과 영화에 대한 진중한 고민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 <고래의 뼈>의 초반부는 살인 사건에 관한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작품의 톤 앤드 매너를 전환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각본을 쓴 시리즈물 <모두 잊었으니까>에서도 서사와 플롯을 탈관습적으로 변주한 바 있다.

= 음악으로 치면 전조(轉調, 악곡이 진행되는 도중 음악의 조를 바꾸는 기법)의 방법론을 선호한다. <고래의 뼈> 역시 호러, 스릴러, 판타지, 드라마의 요소들이 유동적으로 전환되는 식이다. 사실 현실이 그렇지 않나. 일상에서 우리는 나쁜 일이 일어났어도 곧이어 기쁜 일이 생기면 웃을 수 있게 된다. 인생엔 한 가지 장르, 고정된 관습만 있지 않다. 이것은 영화 만들기에도 통용되는 것 같다.

- Mimi라는 앱을 떠올린 계기는?

= 10년 전부터 구상한 소재다. 그때 일본에 ‘세카이 카메라’라는 앱이 있었다. 특정 위치 좌표에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증강 현실로 특정 글자가 보이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이런 기술을 글자가 아니라 사람, 영상에 적용하면 어떨까? 유령의 가시화 같은 느낌이 아닐까?’라는 발상을 하게 됐다.

- 구상에서 완성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 현실적인 여건이 가장 문제였다. 당시 기획을 피칭할 땐 증강 현실에 얽힌 가상, 실재의 논제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적었다. 무척 영화적인 소재라고 생각했는데 그땐 완전히 이해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유령의 가시화’라고 하니, Mimi 속의 아스카는 가상이지만 꼭 현실에 있는 것처럼 마미야와 대화한다. 가상과 실재의 차이를 어떻게 다루고 싶었나.

= 우리가 보는 세상은 입체적이다. 다만 우리가 지각하는 외부의 정보란 시신경의 착각에 가까우며 언제든 변할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줄곧 세계의 원형은 평면적인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계를 구성하는 가상이든 실재든 각기 다른 층위일 뿐이란 뜻이다. 이 두 가지는 혹은 더 많은 세계의 층위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겹칠 수 있다. 그렇기에 영화 역시 입체가 아닌 평면을 다루는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어쨌든 현실을 다루는 매체니까. 촬영 감독과도 최대한 평면적인 촬영 방식을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 평면적인 촬영이란 무엇인가?

= 예를 들면 인물들이 스마트폰 카메라뿐 아니라 창문을 두고 서로 바라보는 장면이 많다. 평면적인 하나의 층을 매개로 해서 가상과 실재의 인물들이 서로를 인식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 프레임이란 층을 뛰어넘어 만나기도 하고.

- 중후반부, 마미야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Mimi 속의 아스카를 만나는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 그렇다. 그럴 땐 일부러 마미야를 프레임 바깥으로 이탈시킨 뒤 다시 프레임 내부로 돌아오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어떤 층을 넘고, 가상과 현실이 접합되는 순간을 아날로그적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CG나 사운드이펙트를 이용해서 세계가 겹친다는 인상을 직접적으로 지시한다면 촌스러울 수 있다고 느꼈다. 현재의 영화 기술이 100년 후의 사람들에겐 더 이질적일 수도 있으니까.

- 100년 후의 관객까지 생각하나.

=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각본을 쓰면서 영화라는 매체의 시간성을 크게 신경 쓰게 됐다. 지금의 우리도 100년 전의 영화를 보지 않나. 그 배우들이 세상을 떠났다 해도 우리는 그들이 살아 있다고 믿으며 영화를 본다. 어떻게 보면 사람과 유령이 혼재하는, 실재성과 환영성이 공존하는 공간이 영화인 것이다. 사실 편집된 시퀀스가 하나 있다. 마미야가 거리를 거니는데 주변이 메이지 시대, 에도 시대의 풍경으로 변하는 장면이다. 영화를 통해 현실의 시공간, 영화의 인물, 지리의 역사성이 묶이는 정경을 구현하려고 했으나 결국 지우게 됐다.

- Mimi 속의 아스카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아이돌의 팬덤, 이른바 오타쿠 문화를 다룬 것 같다.

= 맞다. 바쁜 도시인들이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서 Mimi를 생각했다. 그래서 Mimi의 이용자들이 움직이는 시간을 대부분 밤으로 설정했다. 낮에는 일상의 무게에 짓눌린 그들이 잠자는 시간마저 할애해 외출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 오타쿠의 광적인 행동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상에서의 도피라는 정서를 담아내고 싶었다.

- Mimi의 아이돌 아스카를 연기한 배우 아노는 실제 아이돌 출신 배우다. 염두에 두고 캐스팅한 것인지.

=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제작자의 소개가 있었고, 정식 오디션을 거쳐 만난 배우다.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 <고래의 뼈>는 아노 배우가 영화 촬영 중 느낀 감정들을 갈무리하며 만든 곡이기도 하다. 원래는 엔딩 테마곡을 넣을 생각이 없었는데 노래를 듣고 나니 괜찮을 거라 판단했다.

- 주인공 마미야의 시점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그러나 그의 심리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 촬영의 시선을 대부분 마미먀의 주관적 시점에 맞춰 구성했다. 작품의 화자인 셈이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진 않았다. 물론 주인공의 심리 상태나 행위 동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이 관객에겐 불친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관객이 마미야와 함께 아스카를 마주 보길 원했다. 직면하길 바랐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람을 만나더라도 각자의 경험, 성격, 관계에 따라 느끼는 바는 천지 차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너무 영화 속 세계, 인물을 설명하는 것은 외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 속내가 도통 드러나지 않는 미지의 인물인데, <큐어>의 마미야란 캐릭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외모의 분위기도 비슷하고.

= 아, 비밀로 하고 싶은 부분이었는데 들킨 것 같다. (웃음) 고민 끝에 <큐어>에서 이름을 따왔다.

- 차기작 계획은.

= 찍고 싶은 작품이야 너무 많다. <씨네21>에 인터뷰가 실리면 투자 제의가 올 수도 있으니 구체적으로 하나 말해야겠다. (웃음) AI와 딥 페이크 기술을 접목한 이야기다. 부부와 아들 한 명이 주인공인데, 식물인간인 엄마를 대신해줄 AI 로봇이 만들어지게 된다. 실제 엄마의 얼굴을 그대로 따와서 말이다. 남편과 아들이 사랑하는 로봇이 진짜 엄마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묻는, 나아가 남편과 아들을 위한 하얀 거짓말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영화 매체의 성격과 결부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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