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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악귀’

여느 오컬트 드라마와 달리 SBS <악귀>는 시청자가 귀신 이미지에 소스라쳐 물러서기 전에 화면을 전환하고 흐릿한 상에, 스치는 찰나에 더 다가가게 하는 방법을 취한다. 스물다섯의 공시생 구산영(김태리)에겐 정체와 목적이 불분명한 악귀가 들락날락하는데, 이를 알기 쉽게 가시화하는 CG 사용을 않고 배우에게 맡긴 덕분에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과 대화하던 산영이 “아” 하는 한마디로 매끄럽게 인격이 스위치되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산 사람과 귀신. 분명한 경계가 있음에도 식별하기 어려운 같음에 붙들리게 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랄까. 이삿짐센터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개천 돌다리를 흥얼거리며 건너는 뒷모습이 산영의 의식을 악귀가 장악하고 있던 때임을 나중에 알고 나서 떠올린 장면이 있었다. 극에 처음 등장한 산영이 배달 일을 하며 퇴근하는 직장인 무리의 퇴사 푸념을 듣던 그 뒷모습이었다. 한강 다리에 도착해 몸을 기울이는 산영과 이삿짐 일이 끝나고 유복한 아이의 인형을 훔쳐 여과 없는 분노를 배출하는 악귀 들린 산영, 둘은 얼마나 겹치고 얼마나 다를까.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회고 속에서 반짝이는 이상의 청춘에 생기를 불어넣었던 배우 김태리가 연기하는 또 다른 청춘 구산영은 삶의 변수에 적절히 대응할 여력이 없는 이의 조바심과 박탈감으로 현재의 청춘과 공명한다. 염 교수가 “악귀는 그 사람의 약한 곳을 이용한다” 했을 때, 속으로 ‘악귀만 그렇겠냐’고 시시하게 넘겼는데 돈 500만원에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궁색한 처지를 자신의 약점으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 산영에겐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일임을 이제 안다. 산영이 악귀일 때의 몸짓에 매혹되다가도 매번 제정신이 돌아오며 무너질 때마다 취약한 경계를 버티는 이의 안쓰러움에 마음이 기운다.

CHECK POINT

어린 산영은 <장화홍련전>의 결말을 두고 “더 없어? 그게 끝이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귀신이 원통함을 풀고 하늘로 떠났는데도 왜 찜찜할까. <악귀>에도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 학대당하는 어린 소녀를 구해달라고 원귀가 된 소년이 뜻을 이루고 사라졌지만, 무엇 때문에 소녀를 이름도 없이 학대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아동 학대를 하나의 기구한 사연으로 살풀이하고 넘어가지 않으려는 작가의 책임감인지. 앞의 사건을 어린아이를 염매로 삼는 사악한 주술과 연결하는 극 구성의 전략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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