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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다섯 번째 흉추’, 척추뼈를 훔쳐 인간이 되는 곰팡이의 기괴한 여정
오진우(평론가) 2023-08-02

2000년 12월 잿빛 하늘에서 눈 내린 어느 날 결(문혜인)은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간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이삿짐을 현관 앞에 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결은 땀을 흘리며 혼자 이삿짐을 옮긴다. 그사이 애인 윤(함석영)이 도착한다. 시간은 흐르고 해가 바뀐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서 둘은 싸운다. 떠나면 죽어야 한다고 저주를 퍼부은 결은 밖으로 뛰쳐나간다. 혼자 남은 윤은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다. 그 매트리스에서 곰팡이가 피어난다. 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매트리스를 뒤집어 사용한다. 방치된 매트리스 내부에서 곰팡이는 퍼져나가고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간다.

<다섯 번째 흉추>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피어난 곰팡이 꽃이 인간의 척추뼈를 탐하며 생명체가 되는 여정을 그린 독특한 영화다. 독특하다는 말로 축약될 수 없는 새로운 재능을 가진 신예 감독의 탄생을 알리는 이 영화는 크리처물과 로드 무비의 형식을 취한다. 매트리스는 서울의 북부 지역을 떠돌며 쓰이고 버려지기를 반복하고 커플들의 사랑과 이별을 바라본다. 그 안에 서식하는 곰팡이는 인간으로부터 척추뼈뿐만 아니라 감정도 훔치며 인간의 형상을 갖춰나간다.

기괴하지만 매혹적인 미장센, 타임랩스, 몽환적인 음악, SF적인 구성 등 영화는 겉보기에 그럴싸한 외형을 갖추고 있기에 화려함만을 좇는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곰팡이를 통해 인간의 시간과 감정을 고찰하기에 이른다. 애초에 곰팡이가 이별 과정에서 발생한 커플의 분노와 저주를 숙주 삼아 탄생했기에 영화는 ‘감정’을 이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병원 에피소드다. 병원 침대에서 죽어가는 환자와 곰팡이는 소통한다. 환자는 곰팡이에게 유언을 남기는데 이는 영화의 엔딩과 연결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울려 퍼지는 사운드는 관객에게 큰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고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3관왕(감독상·배급지원상·관객상)을,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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