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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스틸라이프>
이다혜 사진 백종헌 2023-08-22
가이 대븐포트 지음 /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정물화는 과일이나 꽃, 생선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대상을 가리킨다. 영어로 스틸 라이프(still life)라고 불리며,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같은 주제에 이르면 움직이지 않는다(still)는 데서 필연적으로 연상되는 죽음을 은유하는 그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박한 예술이다. 문학의 형식에서 비슷한 것을 찾자면 소네트와 같다. 미국의 작가, 학자, 교육자, 번역가, 삽화가인 가이 대븐포트는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을 폭넓게 썼는데, 그중에서 <스틸라이프>는 미술사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으나 현대에 들어오며 가장 실험적인 장르가 된 정물을 (인)문학적으로 살펴보는 저술이다. 정물화에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빵과 와인이 기독교에서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듯이, 사과와 배는 ‘한쌍의 이미지’로 자주 다루어지며 정물화뿐 아니라 시와 소설, 산문에서도 유구하게 함께 언급되는 소재였다. 중세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화가들은 사과와 배를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와 함께 그렸는데, 사과는 추락을, 배는 구원을 의미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산문에서 사과는 객관적이고 공개적이며 사회적이지만, 배에 대해서는 확신하기 어려운, 유럽의 분위기를 떨쳐내지 못한 무언가를 의미했다. 한편 가장 유명한 정물 속 사과라면 세잔의 사과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이 대븐포트는 에밀 졸라와 세잔의 오랜 시간에 걸친 우정과 결별을 통해 사과의 뜻을 추측해간다. 같은 사물이라 해도 읽어낼 수 있는 맥락은 수없는 갈래로 뻗어나간다. 고흐의 <양파가 있는 정물>을 분석할 때는 그림 속 책이 무엇인지에서 시작해 물건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설명한다. 그 결과 이 그림은 무엇보다도 질병과 건강의 기록이 된다. 파이프는 르네상스 정물에서 “삶은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메멘토 모리’를 상징하는 사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꺼진 촛불은 보통 파이프와 함께 그려지는 소재였고, 책과 음식과 악기는 우리의 유한한 삶에 수반되는 소재들이다. 마지막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속 정물 이야기에 다다른다. 제임스 조이스 전문가이기도 했던 가이 대븐포트의 유려한 산문을 만나보시길.

153쪽

정물화는 반고흐가 일종의 시각적 일기로 사용한 장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