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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즐기며 나아가기, ‘만분의 일초’ 주종혁
이자연 2023-11-07

김성환 감독이 그린 <만분의 일초> 콘티를 처음 보았을 때, 주종혁은 자신의 눈을 떠올렸다. 콘티 속 상대방을 응시하는 재우의 눈이 본인의 것과 몹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형을 죽인 사람과 나란히 대련해야 하는 다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재우는 침묵을 선택한다. 외면이 아닌 인내. 주저함이 아닌 묵묵한 질주. 황태수(문진승)를 이겨내겠다는 승부욕엔 그만의 복잡한 역사가 점철돼 있다. 이제 재우는 자신을 억눌러온 것들을 직면해야 한다. 약점을 여유 있게 읽어내는 황태수를 이겨내고, 이기적이라 믿어온 아버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혼자만의 싸움을 시작한 재우를 위해 주종혁은 그의 외로움을 들여다보았다.

-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김재우를 어떤 유형의 인물로 분석했나.

= 재우는 굉장히 안쓰러운 인물이다. 단 한번도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한다. 그게 <만분의 일초>의 핵심이다. 실제로 재우를 연기하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숨을 확 뱉어내는 순간 재우를 위해 쌓아온 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최종 목적지를 향해 모든 걸 꾹꾹 참아내는 재우의 인내심과 묵묵함을 보고 이 작품에 꼭 참여하고 싶었다. 재우가 안쓰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검도라는 소재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작품을 통해 경험하기 전까지 검도는 내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전문 용어나 디테일한 자세 등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알고 보니 김성환 감독님이 어릴 적 검도를 배웠다고 하시더라.

- 영화는 재우가 검도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여하는 과정을 그린다. 재우의 검도 수준에 준하는 실력을 체득하기 위해 실제로 두달 동안 훈련을 받았다고.

= 처음엔 조금 얕봤다. (웃음) 워낙 운동을 좋아해 자신이 있었고, 검도라 하면 왠지 정적인 운동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몸을 빠르게 많이 움직여야 해서 그 과정에서 다치기도 했다. 검도는 상대방을 대하는 기세와 머리 싸움이 무척 중요하다. 소리도 엄청 질러야 하는데 그 모습이 꼭 호랑이 같다. 스포츠는 내공이 쌓이는 만큼 정직하게 드러나는 터라 두어달 만에 국가대표 선발전 참여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용인대학교를 찾았다. 수업에 참관해서 학생들이 어떻게 대련하는지, 어떤 습관이나 자세를 지니고 있는지 관찰했다. 그런 것들을 연기하는 데 많이 참고했다. 흉내에 가깝지만 큰 도움이 됐다.

- 검도를 직접 해보니 알게 된 매력은 무엇이었나.

= 역동적으로 운동하고 나서 마지막엔 모두가 모여 묵상을 한다. 사실 그전까지는 명상을 어떻게 하는지 잘 몰랐다. 명상을 하면 꼭 잠을 잤다. (웃음) 그런데 묵상을 하니 조급하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검도는 이런 낙차가 무척 매력적인 운동이다. 선수간의 예의범절도 상대방을 향한 존중과 배려를 기반으로 한다. 언젠가 검도를 취미로 다시 하고 싶다.

- 재우는 다양한 감정을 지녔다. 어려서 형을 잃은 뒤 우울감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자격지심을 보인다. 태수를 향한 분노와 원망도 내재해 있지만 영화상에서 감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는다.

= <만분의 일초>는 대사가 많은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비언어적인 표현을 많이 빌리려 했고, 특히 눈을 많이 활용했다. 시선과 눈빛으로 심정적인 변화를 압축해 보여주려 했는데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재우가 자신의 감정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있다. 아버지의 최후를 마주하는 장면으로, 당시 감독님이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어달라”고 디렉션을 주셨다. 그 컷을 여러 번 거치면서 나중엔 맥이 빠진 상태로 울었는데, 그걸 감독님이 좋아해주셨다. 재우의 감정은 그런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직접적이기보다는 우회해서, 정중앙보다는 끄트머리의 것으로 나타난다.

- 김재우와 주종혁은 높은 경쟁률을 뚫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2019년, 주종혁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사 통합 오디션인 ‘카카오M 액터스’에서 700:1의 경쟁률을 뚫고 최고점을 받았다.

= 둘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그 오디션을 무척 재미있어 하면서 즐겼다는 거다. 몇등을 꼭 하고 싶다거나 붙고 싶다는 간절함이 크지 않았다. 그냥 타인의 눈으로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평가받고 싶었고 또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전까지 연기를 접하거나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오디션 자체를 하나의 공부라 여겼다. 반대로 재우는 인정욕구가 강해 다소 조급해 보인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평소 하지 않던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건 둘의 공통점처럼 보인다.

- 지난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권민우로 대중에게 배우 주종혁을 각인시켰다. 그 이후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생겨난 것 같나.

= 욕심이 커지고 있다. 3~4년 전만 해도 이렇게 상업 영화·드라마 등 매체 연기를 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독립영화 오디션에 지원해서 붙으면 신나서 작업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다양한 기회를 접하면서 더 부지런히 살아야겠다는 동력을 얻었다. 자유롭게 자기만의 색깔로 연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 골프, 풋살 등 여러 취미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무엇에 관심이 있나.

요즘엔 친구들과 밴드를 한다. 박성준 배우가 보컬을 담당하고 내가 베이스를 맡았다. 내년 1월에 공연을 여는 게 목표다. 사실 올해 한 영화제에서 밴드 공연을 열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우리의 실력이 아직 탄탄하지 않아서 진행할 수 없었다. 너무 아쉽다. 내년엔 꼭 무대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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