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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스텔라 마리스>
진영인 2023-12-19
코맥 매카시 지음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펴냄

정신 질환을 바라보는 관점 하나. 보통의 사람과는 다르게 감각하고 생각하며 진리에 다다른 사람을, 의사나 심리사가 그 다름을 이유로 질환으로 규정한다는 것. DSM 같은 정신 질환 분류법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풍부한 정신적 세계가 있다는 발상은 여러 작품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스텔라 마리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 발로 정신병원에 찾아온 천재 수학자 얼리샤와 정신과 의사의 대화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얼리샤는 정신의학의 관점에서는 조현병이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손에 물갈퀴가 달린 ‘키드’라는 이질적인 생명체를 어릴 때부터 보았다. 이같은 남다른 지각은, 양자역학을 비롯하여 20세기 과학사가 거둔 빛나는 성과를 어린 나이에 단숨에 이해한 비범함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과학은 진보한 만큼 어둠을 드리웠고, 그 어둠은 얼리샤의 개인사에도 스며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물리학자였던 얼리샤의 아버지는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고, 얼리샤와 말이 통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인 오빠 또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과학사와 수학사, 정신의학과 심리학을 종횡무진 아우르는 환자와 의사의 대화는 관념론과 실재론이 그리는 평행선을 따라간다. 이 세상의 사물들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바라보는 주체의 지각을 통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언어의 탄생으로 파괴된 수많은 것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무의식의 세계는 어떻게 작동할까. 세속적 세상이 가닿지 못하는 얼리샤의 세계와 잠시나마 손이 닿는 순간이 있다면, 얼리샤가 할머니의 유산을 물려받아 거금을 지불하고 300년 된 아마티 바이올린를 산 일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홀로 악기를 꺼내 바흐의 <샤콘>을 연주하고 울음을 터트렸다고 얼리샤는 고백한다. “아마티는 너무 아름다워 진짜 같지가 않았어요.” 2023년 세상을 떠난 코맥 매카시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두편의 연작 소설 가운데 하나인 <스텔라 마리스>는 세상의 진리에 가닿은 외롭고 위태로운 정신을 그린다. 이 정신이 잠시 두발을 내려놓은 곳이 바흐처럼 완벽에 가까운 음악이라면, 능수능란하게 인류의 문명을 다루는 이 작품 또한 누군가가 발을 내려놓을 장소를 제공할 것 같다.

92쪽

“의사들은 미친 사람들의 세계가 구성되는 세심한 방식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