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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새로운 낱말
김소영 2024-01-25

처음 만나는 어린이들에게는 명함만 한 종이에 내 이름을 써서 준다. 어린이에게도 종이에 이름과 좋아하는 동물을 써달라고 한다. 강아지와 고양이가 단연 인기이지만,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호랑이, 도마뱀, 토끼, 코알라, 장수풍뎅이, 물고기…. 그리고 유기체. 유기체? “저는 과학을 좋아하는데 동물도 과학이라서 좋고, 동물은 모두 유기체니까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어린이가 한창 유기체 공부 중인 것만은 알 수 있다.

누군가 특정 용어를 유난히 자주 사용한다면 높은 확률로 그 말을 최근에 배운 거라는 농담이 있다. 나는 거기에 웃지 못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도 아닌데, 새로운 개념을 알게 되거나 지식을 얻으면 호시탐탐 그걸 티 내려 한다. 근래에는 ‘포스트휴머니즘’,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말을 신이 나서 자주 썼다. 그래도 글로는 쓰지 않는다. 글로 쓰면 수준이 금방 드러난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조차도 몰랐던 청소년 시절에는 ‘패러다임’을 온갖 데 갖다 붙였다.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아이디어에 전율이 흘렀다. 어딘가 지적인 어감도 좋았다. 논술 숙제는 물론이고 고전 시가 감상문 같은 데도 그 말을 썼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들이 ‘패러다임’을 아는지 시험해보는 마음도 있었다. 한때는 어느 자리에서든 ‘프레임’이라는 말을 서너번씩 썼다. 누군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봐주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다들 나보다 먼저 알았거나, 설령 몰랐더라도 나한테 물어보기는 싫었을 것이다. 그토록 물어봐주기를 열렬하게 바라는 얼굴을 한 사람한테는.

하지만 처음 알았을 때부터 내 생각과 감정을 완전히 사로잡았고, 어떤 낱말보다 자주 썼으며, 수십년째 사랑하고 있는 낱말은 ‘연대’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신문과 잡지를 열심히 읽는 것으로 달래던 때, 연대는 나도 이 세상에 포함되는 존재라는 걸 확인해주는 낱말이었다. 연결되는 느낌만큼, 강해지는 느낌도 주었다. 독립, 타도, 투쟁, 해방 같은 말은 역사 속에 있거나 선배들의 것 같았는데, 연대는 확실히 내 것이었다. 혼자서도 시위에 갈 수 있었고, 시민 단체 후원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것에 기뻐했다.

무엇보다 내게 연대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개념이었다. 결연하거나 희생적이지 않고 너무 감정적이지도 않아서 좋았다. 느슨하게라도 계속할 수 있는 게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느슨해졌다. “입금으로 연대한다”는 말은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로 힘을 보탠다는 뜻이지만 나는 나를 두둔하는 데 쓰고 있다. 요즘 내가 얼마나 느슨해졌는지 깨닫고 나는 다시 외롭고 두려워졌다. 정치와 사회가 약자부터 차근차근 소외시키는 걸 체감하면서 나는 새로운 낱말을 찾고 싶어졌다. ‘의지’(기대기)가 지금 세상을 대하는 내 마음 같다. 돕거나 응원하는 정도로는 안된다. 우리는 서로 기대고 있어서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안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한명이 무너지면 모두 무너진다는 마음으로, 힘껏 사람들한테 기대기로 했다. 나한테 기대도 된다고 더 열렬하게 티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용의 해를 맞이하는 나의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