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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속 가능한 활력,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에코프렌즈 배우 유준상
이우빈 2024-05-28

‘지천명의 소년.’ 모순 같은 수식이지만 유준상의 이름에 붙는다면 크게 이상하지 않다. 에코프렌즈란 칭호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지속 가능한 활력’이 항상 그의 주변을 맴돌기 때문이다.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의 ‘특별상영: 에코프렌즈 유준상’에서는 그의 두 연출작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 <스프링 송>을 만날 수 있다. 유준상은 자연을 주제로 한 동화책의 출간을 앞둔 작가로서 자연과 환경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고도 있다. 이번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창작자 유준상의 삶을 지탱하는 예술혼과 여행기를 살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최근 자신을 ‘트래블아티스트 테니스맨 유준상’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좋아하는 것들일까.

= 가족여행 중에 나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편한 여행보단 힘든 여행, 무한정 계속 걷는 여행을 더 좋아한다. 가족들이 안 따라올 땐 혼자 미술관이나 가고 싶은 곳으로 무작정 돌아다닌다. 어느 날 그렇게 쭉 걷다가 아무 생각 없이 카메라를 켜고 말을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트래블 아티스트 테니스맨 유준상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오더라. (웃음) 그게 너무 재밌어서 계속 쓰고 있다. 여행하면서 새롭게 마주한 것들을 토대로 글을 쓰는 게 일상이다. 이 과정을 계속하면서 끝없이 나를 되돌아보고 나아가게 된다.

- 최근 가장 몰두하는 분야는 테니스라고 들었다. 얼마 전엔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 테니스는 연기와 비슷하다. 상대와 공을 주고받는 과정이 연기 방식과 똑같아서 너무 재밌다. 이번에 우승한 대회는 2~3년 전에 출전했다가 한번 크게 실패를 겪어서 좌절했던 곳이다. 힘들었던 순간을 결국 극복한 거다.

- 지천명의 나이를 훌쩍 넘었다. 그간 만든 연출작을 보면 나이 듦에 대한 사유가 많이 녹아 있다. 첫 장편 <내가 너에게 배우는 것들>(2016)에선 “누구든 나이를 먹는다. 나도 50대를 향해 가고 있다”라는 내레이션도 등장한다.

= 나이 먹는 건 어찌 보면 되게 두려울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왕 모두가 겪는 일이라면 조금 더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나이 드는 것을 이겨내거나 거스르거나 역행하자는 욕심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보는 풍경, 자연과 자연스럽게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젊은 친구들도, 나와 동년배인 분들도 내 영화를 보며 나이 듦에 대해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 ‘유준상은 항상 긍정적일 것’이란 시선이 종종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 그렇다. 사람들이 나를 볼 땐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 긍정을 긍정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가장 어렵다. 걱정과 근심이 찾아올 때마다 자신을 한없이 채찍질해야 하고 끊임없는 번민과 맞서야 한다. 그럼에도 버티고 버틴다면 자신이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 그렇게 버티며 영화를 만들고 창작하면서 긍정이 무엇인지 다시 공부한다. 거창한 무언가를 만들려는 마음은 없다. 그저 창작하는 생활과 스스로 발전하는 과정이 이어진다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 영화제 상영작인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엔 고뇌하는 인간 유준상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초반부 셀프캠에서부터 날것의 투박한 일상이 자주 등장한다.

= 힘든 촬영을 마치고 잠시 몽골 고비사막에 갔을 때다. 매니저와 음악하는 친구와 함께 간 여행이었고 한 장소를 이동하려면 10시간은 차를 타야 하는 고행길이었다. 그러다가 혼자 사막을 오를 때 “트래블아티스트 테니스맨 유준상입니다!”를 외치며 일상처럼 영상을 찍었다. 그렇게 차차 쌓아둔 영상들을 살펴보니 사막에 오르는 과정과 사막의 정상에서 본 풍경, 몽골의 자연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면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매니저를 찾기 시작했다. (웃음) 스테디캠 같은 장비도 없던 터라 매니저가 직접 카메라를 붙잡고 촬영을 해야 했다. 체격이 좋은 친구라 그런지 흔들림 없이 잘 찍혔더라.

- 사막에서 거세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말하는 후반부 장면이 인상적이다. 자막이 없어서 어떤 말인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 처음엔 반복해서 듣고 자막을 달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우리가 삶을 살면서 서로의 마음을 다 알고 소통할 순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장면이 다르게 느껴졌고 너무 좋아졌다. 정성껏 썼던 자막을 다 지웠고, 상황의 의미와 감정을 관객 스스로가 느끼길 바랐다.

- <스프링 송>과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를 환경영화제 상영작으로 고른 이유는.

= 어떤 작품이 환경영화제에 어울릴지 고민했다. <평온은 고요에 있지 않다>엔 몽골 유목민들의 생활상이 자주 등장한다. 다만 그들의 자연 친화적인 삶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걱정이 되더라. 몽골의 아름다운 풍경도 점차 사라지는 상황이니까. <스프링 송>은 후지산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공교롭게 얼마 전에 후지산 명소라고 알려진 편의점에서 쓰레기 문제로 관광객을 통제하는 일이 있었다고 들었다. 귀중한 자연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과 함께 여러 생각이 들었다.

- 자연을 주제로 한 동화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고.

= 구상한 지는 거의 20년쯤 됐다. 30대 중반인가, 40대 초반에 캐나다에서 쿠바까지 일주여행을 떠났다. 정말 끝도 없이 버스를 타고 창밖의 자연을 봐야 했다. 어느새 내가 자연과 대화하고 있더라. 몬트리올 까치에게 “혹시 우리 동네 분당 까치를 아니?”라고 물으면 몬트리올 까치가 “당연히 알지”라고 답해주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 폭포 근처에 말 두 마리가 보이면 ‘저 폭포가 얼어붙을 때 함께 미끄럼틀을 타면 얼마나 재밌을까?’라는 상상도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써나간 자연과의 이야기를 아껴두었고 언젠간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는 10월에서야 총 7부작 중 2편의 단행본을 내게 됐다.

- 7부작이면 꽤 거대한 서사시가 될 것 같다.

= 처음엔 캐나다~쿠바에서 쓴 단편들만 엮으려 했는데 이왕이면 긴 모험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영화로는 수백억원을 들여도 만들기 힘들 듯한 상상을 맘껏 펼치고 그림을 채우니까 너무 재밌더라. 주인공이 여행하면서 이 세계를 만드는 거의 모든 자연을 만난다. 닥터 스카이, 선 시스터, 스노 브러더 등이 각지의 주인이고, 그들의 세계를 파괴하려는 엄청난 악당이 등장한다. 작품을 <해리 포터>처럼 아주 큰 판타지영화 시리즈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 연출 계획 중인 차기작 역시 규모가 크다고 들었다.

= 지구에 사는 소녀와 105억 광년 떨어진 별에 사는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다. 장편이고 후반작업 중이다.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기획을 시작했다. 촬영을 끝낸 뒤엔 이 기획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3편짜리 소설 중 한편을 먼저 쓴 상황이다. 한달 반 동안 매달려서 간신히 끝냈다. 구상한 이야기가 너무 크다 보니 우선 소설집을 낸 뒤에 애니메이션 등으로 전체 이야기를 완성하려 한다.

- 뮤지컬, 연기, 음악, 여행, 테니스에다가 큰 기획들까지 펼치고 있다. 하루가 부족하진 않나. 수면은 충분히 취하는지.

= 남들 자는 만큼 잔다. (웃음) 5~6시간쯤. 시간은 내기 나름이지 부족하진 않다. 이런 질문을 평소에도 많이 받는데 항상 “전 시간이 많이 남아요”라고 답한다. 하루에 꼭 마쳐야 할 일을 제외하면 다 개인 작업 시간이다. 최근엔 운동과 소량의 식사, 6월에 시작할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대본을 매일 숙지하는 정도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다 가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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