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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젊은 법학도들이 영화에서 희망과 영감을 얻기를, <기후재판 3.0> 닉 발타자르 감독
정재현 2024-05-30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여한 195개국은 파리협약을 체결한다. 파리협약은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로 제한하며 이를 위해 협약 당사국 모두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량 감축을 국가별 목표에 따라 실현할 것을 타결한 조약이다. 이후 수많은 국가에서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기후변화로 발생한 손실과 피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인 ‘기후 소송’이 벌어졌다. 수많은 소송의 중심엔 변호사 로저 콕스가 있다. 그는 실제로 네덜란드의 일곱 환경단체와 함께 에너지 기업 셸을 고소한 이후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수준 대비 45% 줄일 것”을 법으로 주문한 우르헨다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낸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지금 로저 콕스는 “그간 기후 소송이 정부, 기업을 대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면 이젠 기업 이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기후재판 3.0’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재판 3.0>은 로저 콕스가 어떻게 기후 소송에 뛰어들었고 그가 소송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정리한 다큐멘터리영화다. 영화의 연출자이자 기후활동가인 닉 발타자르 감독과 화상으로 만나 나눈 대화를 전한다.

- 오랜 기후 운동 동료인 로저 콕스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게 된 배경은.

= 나는 주로 극영화를 만든 영화감독이다. 동시에 나는 기후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언젠가 로비스트들이 등장하는 기후-환경 스릴러를 만드는 게 궁극의 꿈이다. 그러다 로저를 알게 됐다. 어느 날 로저가 소송을 준비 중인 셸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을 때, 로저와 함께라면 역사적인 사건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다큐멘터리에 필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로저는 농담조로 “나는 출연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주인공이면 아마도 영화 역사상 가장 지루한 다큐멘터리가 될 테니까요”라며 고사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바로 영화화 준비에 들어갔다.

- 로저 콕스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 할 당위는 무엇이었나.

= 개인이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훌륭한 예시 아닌가. 많은 이들은 자신이 직면한 거대한 문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난점을 시작도 하기 전에 체감하기 때문이다. 로저의 출발점은 환경운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육식을 좋아했고, 새해나 생일에 선물로 자동차 신상품 카탈로그를 받을 때 가장 기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영화에 등장한 대로 <불편한 진실>을 관람한 후 충격에 휩싸인다. 지금 그는 엄격한 비건이고 비행이나 운전, 옷 소비를 최소화한 삶을 산다. 단적인 예로 로저는 늘 단일한 재킷만 입고 셔츠는 다섯개가 전부다. 로저와 동년배인 나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불편한 진실>을 보았다. 나는 몇년간 여행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터라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장시간 타고 다녔고, 많은 친구들에게 비행기 여행을 권장했다. 나 역시 <불편한 진실>을 시청한 이후 내가 지구에 진 빚을 탕감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불편한 진실>을 시청한 이래 영화로서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을 관객들에게 촉진하는 삶을 살고 있고, 로저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법률 전문성을 총동원해 기후 행동에서 가장 중요하고 희망적인 혁명 중 하나를 일으켰다.

- 당신은 이미 전작 <타임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탄소중립적 영화제작을 시도했다. 이번 <기후재판 3.0>을 만들 때도 비행기를 전혀 타지 않는 등 탄소중립적 촬영 현장을 운용하려 노력했다던데.

= 나는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영화산업의 자성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영화판엔 확실히 “우리는 영화를 만드니까, 우리가 남기는 폐해는 예술을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다. 그래서 <타임 오브 마이 라이프>를 만들 땐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지 추산했고, 탄소 감축 방향을 전방위로 고려했다. 당시 우리가 영화 촬영장에서 평균적으로 나오는 쓰레기양의 1/4만 만들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또한 우리는 네 가구가 1년간 사용하는 정도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말로 들었을 땐 상당한 배출량처럼 보이지만 이는 다른 영화 촬영장에 비하면 극미량이다. 그만큼 촬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량이 상당하다는 방증도 되겠지. 또 세트 위치를 정밀하게 계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제작자과 배우들의 기거지와 가까운 곳에 세트를 지으면 탄소 배출뿐 아니라 제작비까지 절감할 수 있다. 이번 영화를 찍을 때도 여러 가지를 고려했다. 촬영 전문가가 전세계에 있는 상황에서 왜 미국, 영국, 파키스탄 등으로 원정을 가야 할까? 오늘의 인터뷰처럼 화상회의를 통해 현지의 스태프들에게 직접 디렉션을 건넬 수 있다.

- 영화는 로저 콕스의 기후 소송이 이어질 것을 암시하며 끝난다. 로저 콕스를 주인공으로 한 시퀄을 기대해도 좋을까.

= 갑자기 존 레넌의 명언이 떠오른다. “삶이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느라 바쁠 때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 (웃음) 로저는 지금 셸 관련 소송에서 항소 중이고, 화석연료 투자를 지원하는 전세계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찍지 않기로 했다. 내 카메라에 담지 않아도 이미 나비효과처럼 다양한 기후 소송이 전세계 법정에서 제소 중이고 심지어 승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은 영화에서 로저 콕스가 촉발한 전세계의 기후 운동의 흐름을 잔물결 효과로 명명했다. 이 영화가 전세계 관객들에게 어떤 물결을 촉발했으면 하나.

= 우리의 목표는 이 영화를 보아야 할 모든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아야 할 관객의 수요에 부응하고 싶다. 바라건대 젊은 법학도들이 영화에서 희망과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란 걸 발언했으면 한다.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바람도 있다. 나와 로저의 삶이 <불편한 진실>을 통해 바뀌었듯 누군가도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관객도 삶의 다른 면을 개척했으면 좋겠다. 그게 다큐멘터리의 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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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서울국제환경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