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화보 > ARCHIVE
[Archive] 내가 먼저 가는 이 길이 푸르도록,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과 환경재단 역사 소개
이유채 2024-05-31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환경재단을 만들기로 결심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2000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에서 열린 ‘골드먼 환경상’ 수상자 워크숍이었다. ‘그린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 상을 환경운동연합을 설립해 사무총장을 역임하던 1995년에 받고 역대 수상자로서 이 자리에 참석했다. 당시 그는 환경재단이 얼마나 있느냐는 미국 환경운동가의 질문을 받았을 때 없다고 답하기가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돌아와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 책상 하나 놓고 출발했다. 비전이 확실했고 추진력이 강했기에 국내 최초 환경 전문 공익재단은 2년 만에 빠르게 출범할 수 있었다.

최열 이사장은 국내 최초 민간환경단체인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열고 연구실장을 맡으면서 환경운동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인권보호운동까지 폭넓게 활동해왔던 만큼 환경문제가 시급한 사회문제임을 대중에게 인식시키고 반핵운동을 전개하면서 재단의 기틀을 잡아나갔다. 1988년 공해 관련 시민단체를 통합해 ‘공해추방운동연합’ (공추련)을 결성했고 공추련을 뿌리로 1993년 환경운동연합을 결성했다. 권위 있는 미국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이 제정한 치코멘데스상 수상(2013년) 등의 영광이 말해주듯 최열 이사장은 지난 40여년간 국내 환경운동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기며 현재도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로 창립 22주년을 맞은 환경재단은 2003년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적은 기업들에 매출의 만분의 일을 기부해 환경운동을 지원하게 하는 ‘만분클럽’을 결성하고 2004년 제1회 서울환경영화제(현 서울국제환경영화제)를 개최해 정부·기업·시민사회와 함께하는 실천공동체로 초기 정체성을 확립했다. 2012년 들어선 태양광 지원 캠페인 ‘1만개의 태양을 나누다’를 열고 2015년 환경친화적 마을 모델의 확산을 꾀하는 ‘에코빌리지 프로젝트’에 착수해 아시아가 함께 기후변화에 대응할 방법을 모색했다. 현재 재단은 20년 이상의 역사성을 발판 삼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환경재단의 다음 페이지는 서울 서촌에 ‘글로벌 에코 캠퍼스’를 세워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허브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구환경 용량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대안을 만드는 ‘세계환경포럼’을 여는 것이다. 국경을 뛰어넘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선 기후 환경의 심각성에 뜻을 모은 전세계 시민이 연대해야 한다.”(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사진제공 서울국제환경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