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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세상의 모든 선자들에게

‘울 딸 손 하나 건드리기만 해… 가만 안 둬.’ 2023년 6월, 엄마가 보낸 문자메시지다. 촬영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 평상시에는 잘 이야기하지 않던 서러움을 그날따라 구구절절 술회했다. 별일도 아니었는데 유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던 날. 잘 준비를 마치고 핸드폰을 열었는데 엄마에게서 온 문자 한통. 그것도 두 시간쯤 지난 후였다. 가만 안 둬. 그 짧은 문자 한통으로 날 울리는 모든 것을 무찔러주는 슈퍼우먼이 우리 엄마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세 자녀 중 막둥이로 태어난 나에게 엄마는 강인하기만 했었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엄마에게 뭐든 물어보았고 허락을 맡았다. 엄마는 나에게 백과사전이었다.

좋아하는 오래된 기억 중 하나. 다음날 학예회 준비로 노래 연습을 하던 4~5살의 나. <바둑이 방울>이라는 동요를 텔레비전을 보며 누워 있는 엄마 앞에서 연신 불러댔다. 내가 20번을 부르면 엄마는 20번 박수를 쳐주었다. 게다가 매번 다른 칭찬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엄마에게 “엄마, 그때 나 안 귀찮았어?”라고 물어보면 “그게 뭐가 귀찮아? 귀엽잖아”라고 대답한다. 8살 때, 16살이던 큰언니가 유학을 갔다.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엄마는 덤덤했다. 우는 아빠를 위로해주며,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서럽게 우냐며, 멋있게 토닥여주던 엄마였다. 집에 도착해서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집을 천천히 적응하던 찰나, 엄마의 훌쩍이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안방 문을 열었고, 엄마는 침대 난간에 앉아, 처연히 울고 있었다. 엄마는 그렇게 한동안 울었다. 옆에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엄마도 우는구나. 엄마도 괜찮지 않구나. 엄마도 무섭구나. 엄마를 처음으로 안아주었다.

“엄마는 어떻게 딸 셋을 키웠어?”라고 물어보면 “엄마니까” 하고 웃으며 대답한다. 이보다 더 명확한 대답은 없다. 엄마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파친코>를 촬영하며 다시 한번 느꼈다. 선자는 두 아이의 엄마인데, 아직 딸밖에 해보지 못한 내가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엄마가 되면 어떤 마음일까? 두터운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선자의 아들, 노아를 낳는 장면을 촬영할 때의 일이었다. 진짜로 임신을 한 것도 아니었고, 촬영장에 있던 아기도 나의 아이가 아니었지만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아무도 이 아이를 해치지 않았으면 했다. 내 품에 이 아이가 안겼을 때, 나의 온기가 부디 아이의 숨결에 전해지길. 실컷 토해내는 울음에 부디 막연한 두려움과 서러움도 함께 훌훌 보내버리길 염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지켜줘야겠다며 스스로 다짐했다. 놀라웠다. 처음 느껴보는 막강한 힘이었다. 이틀 동안 진행된 분만 장면에서, 처음으로 엄마란 이런 것이겠구나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삭이 체포된 후, 두 아이와 남겨진 선자에게는 슬퍼할 틈이 없었다. 일어나야 했다. 더 큰 목소리로, 부지런히 김치를 팔며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내야 했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강인하게,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사랑이었으면 했다.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 이 혼돈 속에서, 사랑만이 유일한 희망과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노아와 모자수, 경희, 요셉, 이삭 그리고 고향에 있는 양진까지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이유.

예전에, 엄마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민하야, 나는 너희를 너무 사랑해. 그게 다야. 엄마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거 하나야. 사랑해, 내 딸.” 그렇기에 엄마는 나의 슈퍼우먼, 백과사전, 자존감, 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기로 결심했다.

꽃이 피면 촉촉해지고 나무가 흐드러지면 같이 물이 드는 엄마. 맑고 투명한 엄마는 엄청난 용기로 우리를 키우는 수세월 동안 풍파를 겪으며 딸로서,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멋진 사람으로서 혹은 어떤 이름으로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가 찾는 만인의 여인이 되었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이제는 엄마가 날 찾아주었으면 한다. 한없이 두려워질 때, 괜찮지 않을 때, 누군가가 보고 싶을 때, 혹은 아무 이유가 없어도 상관없다. 엄마의 이야기는 뭐가 됐던 간에 귀엽고 따뜻할 테니 말이다.

얼마 전부터, ‘하루에 한번 이상 안아주기’를 부모님과 실천 중인데, 여러분에게도 추천한다. 말 한마디 필요 없는 포옹 속, 깊은 대화가 오고 갈 것이다. 지금에서야 보이는 엄마의 연약함은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오늘 엄마와의 포옹 속에선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것이다. 꼭 지켜주겠다고, 걱정말라고. 엄마가 그랬듯 나도 엄마의 집이 되어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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