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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소년은 움직임의 미학을 구현하기 좋은 피사체, ‘위국일기’ 세타 나쓰키 감독
정재현 사진 오계옥 2024-10-02

“왜 한국은 식탁에 가위를 올려두나요?” 인터뷰 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세타 나쓰키 감독이 대뜸 질문을 건넸다.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위국일기>가 초청돼 한국을 찾은 세타 나쓰키 감독은 공식 일정을 마친 후 서울에 남아 짧은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었다. 한국 여행이 간만이었던 세타 나쓰키 감독의 눈엔 고깃집이든 전집이든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가위로 숭덩숭덩 자르는 풍경이 무척 생경했나 보다. 장례식에서 만나자마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식구가 된 <위국일기> 속 이모 마키오(아라가키 유이)와 조카 아사(하야세 이코이) 또한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가위를 처음 본 것처럼 서로를 낯설어한다. 한데 가위는 지레의 원리로 작동해 받침점에 물체를 가까이 둘수록 힘점에 힘을 덜 가하고도 쉽게 물체를 자르는 도구다. 무작정 동거를 택한 마키오와 아사 또한 세상살이에 힘을 덜 들일 수 있도록 서로를 가까이에 둔 채 가윗날처럼 교차하고 또 엇갈리며 어느새 각자의 상처를 오려간다.

- 전작 <지오라마 보이 파노라마 걸>에 이어 유명 만화를 영화화했다.

= 오카자키 교코 작가의 <지오라마 보이 파노라마 걸>은 제작사로부터 연출 의뢰를 받기 전 이미 원작 만화의 팬이었다. 반면 <위국일기>는 영화화 의뢰를 받은 이후 읽기 시작했다. 굉장히 멋진 작품이더라. 읽는 내내 영화화할 그림이 절로 그려졌다.

- 영화의 원천 IP로서 만화가 지닌 잠재성이 있다고 보는지.

= 만화는 시퀀스간 연결 대신 토막으로 나뉘어 있다. 만화를 영화화하는 건 2차원의 세계를 3차원의 세계로 옮기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토막과 토막 사이를 음악, 대사 등으로 상상해 연결하는 미션이 늘 나의 도전 욕구를 부른다.

- 11권에 달하는 만화를 139분의 러닝타임의 영화로 만들며 가장 지양한 부분이 있다면.

= 시나리오를 쓰며 플래시백이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등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을 절대 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원작엔 과거 회상 장면이 몇 차례 등장하는데, 무언가를 설명하는 연출은 내가 영화를 통해 하려는 이야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 이모 마키오로 분한 아라가키 유이 배우와 조카 아사로 분한 하야세 이코이 배우가 긴밀한 연기 호흡을 보인다. 각 배역에 두 배우를 어떻게 떠올렸나.

= 처음 영화의 프로듀서가 마키오 역할에 아라가키 유이 배우는 어떤지 제안했다. 바로 그의 전작을 찾아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라가키 유이의 출연작이 대부분 코미디영화라 밝은 이미지가 인상에 남았다. 그런데 실제로 미팅을 하니 과묵한 배우였고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었다. 마침 키도 굉장히 커서 마키오와 더없이 어울렸다. 하야세 이코이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다. 오디션 당시에 아사와 동갑이어서 청소년 특유의 파릇파릇함을 보이는 소녀였다. 하야세 이코이 배우의 영화 데뷔작이라 나름 파격적으로 기용한 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 마키오는 상대에게 꼭 필요한 말만 건네고 자기가 한 말은 무조건 지키는 작가다. 아사에게 “나는 네 엄마를 정말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를 짓밟진 않을 거야”라고 말하고, 이 말을 정확히 지킨다. 마키오가 끝까지 아사를 거두고 챙기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았나.

= 어른들의 세계에서 상처받는 소녀를 본 순간, 성인 여성이라면 그 아이가 품은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마키오도 그런 마음에서 아사를 거두었을 것이다. 마키오는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이다. 정리정돈도 잘 못하고, 세상을 사는 요령에도 서툰 어른이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때문에 자기가 믿는 가치대로 살 수 있는 사람이다.

- 에미리(고미야마 리나)가 학교 체육관에서 아사에게 커밍아웃하는 장면이 무척 회화적으로 찍혔다. 조명이든 배우의 동선이든 좋은 의미에서 연출의 통제가 발휘된 신으로 느껴진다.

= 우리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다. 처음엔 원작처럼 발코니에서 이 장면을 찍기로 계획했다. 그러다 촬영 당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러 로케이션을 헌팅하다 결국 체육관으로 촬영지를 정했다. 연극무대를 연출하듯 컷 없이 찍은 장면이라 촬영 전날 배우들과 리허설을 통해 조명, 카메라의 위치를 지정한 후 동선 체크도 꼼꼼히 하며 만들었다. 정작 배우들에겐 카메라가 켜진 후엔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움직여도 괜찮다고 일러뒀다.

- 영화는 아사가 집 밖에서는 영락없이 10대 학생이라는 점을 끝까지 주지한다. 아사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학교생활을 하며 친구들로부터 자극을 받고, 또 자기보다 공부, 음악 면에서 우수한 친구들을 보며 조급함을 느낀다. 전작 <파크> <지오라마 보이 파노라마 걸>에서도 10대 주인공이 등장했다.

= 젊은이들을 작품에서 그리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어른의 세계는 표리부동하다. 속에 품은 생각과 겉에 내놓는 표현이 다르고, 진짜 속마음을 고백할 땐 여러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계산적인 면모도 종종 보인다. 반면 청소년들은 세태를 대할 때 계산 없이 솔직해서 좋다. 무엇보다 어른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 젊은 친구들은 활달히 움직이며 이야기하는 점도 좋다. 결국 영화는 움직임의 재현으로 완성하는 예술인데, 청소년들은 대개 걷거나 뛰어다니다 보니 움직임의 미학을 구현하기 더없이 좋은 피사체다. (웃음) 어린이, 청소년 배우가 성인 배우에 비해 테크닉 면에선 부족할진 몰라도 그들만이 가진 신선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 마키오와 아사는 모두 일련의 시간을 겪으며 전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성장영화’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 스스로 성장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을까. 전보다 달라진 나를 알아채는 일은 결국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좀더 알면 자연히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고 깊어지니 말이다. 마키오는 언니를 증오했지만, 아사와 함께 보낸 시간 동안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시선으로 본 단면만으로 상대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것이 마키오가 아사를 통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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