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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외화 핍박의 살아있는 증거 <ER>
2002-06-19

걸작드라마 수난기

<ER> Movie Plus 월∼목 오전 10시, 오후 11시

캐치원(HBO로 바뀌기 전에)에서 월요일 오후 10시에 처음으로 <ER>이라는 드라마를 선보였을 때, 행복 그 자체였고 신선함 그 자체였다. 행복한 월요일. <ER>을 보고 채널을 곧장 돌리면 KBS에서 <X파일>을 볼 수 있었다. 치밀한 이야기, 수많은 재미난 사연들, 박진감 넘치는 전개….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ER>만의 아우라가 있었다. 바로 생과 사가 갈리는 상황에 부딪히면 소박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있었다.

<ER>의 배경무대는 시카고 쿡 카운티 병원의 응급실이다. 수술하러 위층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주무대는 응급실과 바로 앞의 길 건너 식당뿐이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며 자기들만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코믹한 사연에서부터 안타까운 사연, 인간이 싫어지는 순간부터 삶의 경이를 느끼는 순간까지, 우리가 살면서 만날 수 있는 모든 감흥이 살아 숨쉰다.

현재 케이블에서 계속해서 방송해주는 <ER>은 시즌 1과 2다. <ER>의 정수이자 영혼과도 다름없는 시즌이다. 그 시즌에서 보여준 저력이 8년, 9년을 지속하고 10년을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상당수 의학드라마가 의사와 의사의 관계에 치중하고, 환자는 단지 지나가는 손님으로만 치부했다면, <ER>은 지나가는 환자에게 순간이라도 따뜻한 애정을 보여준다. <ER>에서는 ‘사람이 손을 댈 수 없는’ 인생 부분에 중심이 있다. 의료보험이 될 수도 있고, 장기기증이 될 수도 있고, 죽음과 삶이 될 수도 있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이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반응을 일으키다보니 충돌하고 화합하고 토닥이는 것이다. 이게 <ER>을 구성하는 진짜 느낌이고, 그래서 특유의 아련함과 감동이 있다. <ER>의 화려함도 박진감도, 그린과 루이스의 고생담도, 카터와 벤튼의 승강이도, 로스와 해서웨이의 사랑도, 사실 이 아련함과 감동이 있기에 배가 된다.

이 뛰어난 드라마 <ER>은 우리나라 지상파에선 너무도 많은 시련을 겪었다. SBS는 골프중계하며 만날 시간도 제대로 안 지키고 방영한 것은 생각도 안 하고 시청률을 핑계로 시간대를 옮기다가 중단해버렸다. 놀랍게도 KBS가 <ER>을 방영했으나 시즌 3은 건너뛰어 버리는 바람에 보던 시청자들까지 혼란에 빠졌다. 시청률은 급락해서 밤 11시에 ‘2%’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수요일 밤 12시20분으로 밀려났다. 외화 최후의 보루, KBS가 시간대 핍박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였다(<ER>이 월요일 11시를 이때 계속 지켰다면 <X파일> 시즌 1, 7, 8, 9가 금요일 12시30분에 방영될 확률은 낮았다). 그런데 <ER>이 겪은 황당무계한 피해는 단지 시간대뿐만이 아니었다. SBS는 그날 그날의 우리말 성우진이 훌륭했다. 그런데 KBS에서 방영한 <ER>의 수준은 말 그대로 참혹했다. 말도 안 되는 인물설정을 해놓은 번역(남자 의사들은 성씨로 부르고 여자 의사들은 이름으로 부르기 같은)과 무성의한 성우진(보조의사 지니의 남편과 애인은 성우가 같았다. 바람피우는 보람이 없었군….), 줄거리 전개를 무시하는 삭제로 이전에 보던 팬들마저 떨어져나가게 해버렸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몇몇 드라마가 <ER>을 대놓고 베끼기 시작했다. <해바라기>까지는 그래도 메디컬 드라마를 가장한 삼각관계물이었지만, <메디컬 센터>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아예 대놓고 <ER>을 모사한 것이었다. 수준이 떨어질 뿐 비슷한 카메라워크, 비슷한 인물 설정, 비슷한 줄거리와 분위기, 심지어 음악은 아예 <ER> 사운드트랙을 쓰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팬들은 표절이라는 말은 자제하고 너무 비슷하다고 주장했건만 <메디컬 센터>의 이창한 PD는 이런 문제제기를 ‘마니아의 문화사대주의’로 몰아붙였다.(이 어처구니없는 반론은 <씨네21> 280호에 실려 있다) <ER>은 우리나라에서는 수난의 드라마다. 시즌을 건너뛰고, 충분한 홍보도 없고, 무단으로 방송시간이 변경되고, 엉망인 번역에 성우진은 더 나빠지고, 별것도 아닌 이유로 삭제당하고, 도용당했다.

정말로 <ER> 같은 드라마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드라마를 동시대에 만나 향유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한 세대에서 몇편이나 되는 드라마가 감수성을 흔들며 삶의 축복과 저주를 동시에 풀어놓는단 말인가? 이런 훌륭한 드라마가 왜 수모를 당하는가? 미국에서는 닥터 그린까지 응급실을 떠난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의 퇴장을 슬퍼할 기회조차 없다. 그것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화가 치민다. 한국의 <ER>과 <ER> 팬들은 약자라서 당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올곧고 솔직해서 당하는 것이다. 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