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간 동네의 멀티플렉스를 지나치다가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진 휠체어 장애인. 그는 극장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극장 상영관의 장애인석 유무에 따라 크게 갈린다. 현실적으로 대답을 먼저 하자면 ‘아니다’. 분명 현행 ‘장애인·노인·임신부 등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는 극장이 전체 관람석의 (비록 매우 적은 비율이나) 1% 이상을 장애인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좌석을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전수조사한 ‘2023년 전국 멀티플렉스 3사(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장애인 관람석 설치 현황’에 따르면 3사 모두 규정대로 1%(CGV 1.4%, 롯데시네마 1.6%, 메가박스 1.4%)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상영관에 장애인석이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시행령의 설치 기준이 개별 상영관이 아닌 ‘전체 항목’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즉 극히 일부 상영관에만 장애인석이 있더라도 전체 비율 1%를 충족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과 같다.
멀티플렉스 3사의 장애인석 현황과 A열 장애인석이라는 난제
모두예술극장의 가족 화장실과 포켓 스페이스다. 포켓 스페이스랑 문 앞의 블루존으로, 휠체어나 유아차 사용자가 양방향으로 이동 시 한쪽 이동자가 잠시 대기할 수 있는 구역이다.
지난 2019년 전동 휠체어 장애인이 보고 싶은 영화가 걸린 상영관에 장애인석이 없어 다른 영화를 관람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의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각지대에서 장애인 관객은 상영관별 장애인석 유무를 극장 예매 앱에서 개별 관을 하나하나 눌러 직접 확인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고 있다. 설사 원하는 상영관에 장애인석이 있다 하더라도 불편은 여전하다. 대부분 시야 확보가 어려운 A열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로 영화를 봐야 하는데 몸을 움직이기 힘든 장애인은 그마저도 어려워 온전한 관람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장애인석 맨 앞줄 설치 비율은 CGV 70.8%, 롯데시네마 71.6%, 메가박스 75.5%(‘2023년 전국 멀티플렉스 3사 장애인 관람석 설치 현황’)로 장애인의 좌석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이다(특히 아이맥스관에서도 장애인석은 A열이라 장애인 관객은 충분한 시청각적 경험을 누릴 수 없다). 갈 길이 멀어 보이나 이마저도 2018년 8월, 신설 영화관의 장애인석은 중간 줄 또는 맨 뒷줄에 설치하라는 시행규칙 개정안이 공포되면서 점진적 변화가 나타난 결과다. 롯데시네마는 “2018년 8월 이후 개관한 영화관 중 판교점은 모든 장애인석을, 도곡점은 장애인석 총 9석 중 6석을 맨 뒷줄에 배치했다. 2023년 12월에 오픈한 제주연동관점과 월드타워점 리뉴얼관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메가박스는 “2018년 이후 오픈 지점의 장애인석은 맨 뒷줄에 더 많이 배치했다”(메가박스 관계자는 “기존과 다른 위치에 장애인석을 설치하려면 그만큼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CGV는 “관련 법령을 준수하여 상영관 구조와 입장 동선에 따라 장애인 관객이 편안하게 이동 관람이 가능하도록 중간 열, 맨 뒤 열 및 맨 앞 열에 설치했다”는 다소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관 내 편의시설 개선 및 확충에 대한 3사의 온도는 전과 비슷하다. 롯데시네마는 “휠체어 탑승 고객을 위해 포스(POS) 및 키오스크를 타 기기보다 낮은 위치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메가박스는 “구조적으로 휠체어 입장이 불가한 지점의 경우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했다”고 알려왔다. 확인 결과 리프트를 설치한 메가박스 지점은 모두 서울로, 상암월드컵경기장지점과 목동점 두곳이었다. 상암월드컵경기장지점은 휠체어 이용자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전용 복도를 거친 뒤 리프트를 타고 상영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목동점은 계단과 리프트 기능을 통합한 형태로 유아차 이용자, 노약자를 설치했다. CGV는 구체적인 사례를 언급하지 않았다.
장애인 관객과 노인 관객의 목소리를 듣다
그렇다면 실제 장애인 관객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씨네21>은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인천 남동장애인복지관 성인장애인 영화동아리 ‘같은 시선’을 만났다. ‘같은 시선’은 10명의 팀원이 함께 제작한 작품을 출품해 여러 차례 수상한 경력이 있으며 극장 영화 관람을 정기적으로 해오고 있다. 동아리 회원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마자 “영화 예매가 빡세다”는 말부터 나왔고, “어려워요” , “힘들어”란 반응이 이어졌다. 이중 전동 휠체어를 이용하는 뇌병변장애인 오현태씨는 “키오스크는 어려워요. 직원이 없으면. 너무 높아서”라고 경험을 전했다. 동아리 담당자인 박은영 사회복지사는 “당사자에겐 일반적인 키오스크 화면이 너무 멀다. 손을 뻗어서 터치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그늘이 져서 화면이 안 보인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라며 휠체어에 앉은 시선에서 키오스크가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설명했다. “또 웬만한 건 다 터치다 보니 시각장애인 분들은 사용할 엄두를 못 내신다. 발달장애인 분들은 글자 인지가 어렵다보니 예매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 그림을 활용한 친절한 버전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스스로 티켓 끊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발달장애인용 예매 시스템을 제안하기도 했다.
키오스크로 대화가 넘어가자 오현태씨는 “휠체어에 음료수랑 팝콘이랑 넣고 다니면 흔들흔들하면서 쏟아지고 엎어져서 힘들어요”라며 다시금 불편을 전했다. 간단한 스낵을 갖고 이동하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감독과 배우를 겸하는 발달장애인 엄혜정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2시간 동안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이)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의자도 안 불편해요. 재밌어서. 나는 영화도 찍고 연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영화 많이 봐야 해요. (그런데 극장을) 혼자는 안 가고요. 같이 가야 해요. 또 가고 싶어요.” 박은영 사회복지사는 극장 인솔 과정에서 겪었던 난관을 전해주었다. “다 함께 상영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직원이 안내해준 곳으로 가니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 앞에는 우리 회원은 아닌, 전동 휠체어 장애인이 난감해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문을 혼자 열 수 없던 거다. 물론 직원에게 상황을 알리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공간에 진입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이 생겨 마음이 좀 그랬다.”
화장실 아래쪽에 발로도 찰 수 있는 비상 버튼을 마련했다.(모두예술극장)
가장 시급히 해결할 문제로는 휠체어 접근성 향상과 A열 장애인석 배치 해결을 꼽았다. “비장애인들은 어떤 자리가 좋을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휠체어 장애인은 그럴 수 없다.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 맨 앞에서 2시간 동안 정면만 쳐다보는 일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물론 개선된 점도 있다. 장애인 화장실이다. “이전에는 장애인용 화장실 칸이 청소 도구 보관함으로 오용되었고 잘 활용되더라도 자동문이 고장난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랬던 과거에 비교하면 지금 화장실 상태는 정말 좋아졌다. 청결도도 향상됐다. 여기서 화장실 개수만 늘어나면 극장 이용하기가 더 편해질 거다.” 발달장애인이 이용하는 안산밀알보호작업장의 영화동아리 담당자는 스낵의 개성이 오히려 발달장애인에겐 혼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짚어내기도 했다. “극장마다 팝콘 맛은 비슷해도 명칭은 다 다르지 않나. 그래서 장애인 분들이 극장마다 자신이 원하는 맛을 스스로 선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상영관에서 각자의 티켓을 가지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도 꽤 큰 산이다. “글자 읽기에 제한이 있는 장애인들은 글자를 그림으로 인식한다. 예컨대 J열 13번 좌석이면 이동하면서 J와 13이라는 그림을 찾아나간다. 극장 방문 전에 열심히 훈련을 하지만 아무래도 현장에서 시간이 소요된다. 다른 관객들이 불편해할까 봐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카페 지원용으로 제공하는 키오스크를 언급하며 실질적인 대안을 전하기도 했다. “‘먹고 가기’ , ‘포장하기’ 같은 글씨가 작은 대신 그 내용에 맞는 그림이 크게 들어가 있다. 이런 키오스크가 극장 매점에 들어온다면 접근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극장은 관객을 생각한다
치매 친화 영화관인 인천 미림극장의 상영 전 안내가 진행 중이다. ‘언제든지 나가고 들어올 수 있으니 배려해주세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치매 친화 영화관인 인천 미림극장에서 만난 노인 관객들은 심리적인 어려움을 전했다. 70대 김순례씨는 “내가 은행 ATM기 도사다. 그래서 예전에 CGV고 롯데시네마고 가서 키오스크 잘만 이용했다. 그런데 앞자리가 바뀌어서 그런 건지 아무도 없는 로비에 혼자 떡하니 있는 게 싫더라. 늙은이를 반겨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아 안 가게 됐다”라며 멀티플렉스로의 발길을 끊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단골 관객인 70대 장준동씨는 “여기가 비록 좀 낡긴 했어도 정감이 있다. 같이 영화 보는 사람들도 다 내 또래고 직원도 친절하다. 그런데 멀티플렉스에 가면 괜히 주눅든다. 젊은 사람용인 것 같다. 늙으니까 마음 편한 데가 최고다”라고 공간에 대한 진솔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극장이 노인 관객을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극장을 향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이들을 위한 너그러움과 환대, 관심일 것이다.
김동환 미림극장 운영부 부장은 극장이 노인 관객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설이야 뭐, 오래된 극장이니 개보수가 필요한 것 천지지만 어르신들을 최대한 편하게 해드리려고 한다. 상영관 내부가 완전 깜깜하면 무서워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조명을 살짝 켜놓는다. 치매 어르신과 가족들이 편히 쓰시라고 상영관 근처에 가족 화장실을 마련했다. 유리문 조심, 계단 조심 문구들도 크게 붙여놨다. 올해 3월부터 10월까지 치매환자와 가족, 동네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상영을 ‘가치 함께 시네마’를 지역센터와 손잡고 운영 중인데 4년째 반응이 좋다. 이런 작고 꾸준한 것들에 안심하시는 것 같다.”
인천 미림극장의 모든 안내 문구는 큼지막하다. 노인 관객을 위한 작지만 중요한 배려다.
올해 개관 1주년을 맞은 서울 모두예술극장은 국내 극장이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는 좋은 본보기 사례다. 장애예술인과 기술 스태프가 물리적 제약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편의성과 접근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설계했다. 실제 방문했을 때 ‘무장애 시설’을 표방하며 전체가 높낮이 차가 없는 무단차 공간이라는 게 눈에 띄었다. 휠체어 이동 중심의 가로로 넓은 복도와 경사로, 공간을 띠지처럼 둘러싼 안전바, 공연장 좌석 포함 모든 안내판에 부착된 점자가 안정감을 주었다. 접근성 매니저는 극장의 핵심 직원이다. 극장에 상주하며 지하주차장부터 대기실까지 이용자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히어링 루프(loop)는 영화관에도 차츰 도입해볼 만하다. 보청기 사용자가 소리를 선명히 들을 수 있도록 주파수를 맞춰주는 시스템으로 이미 대부분의 영국 영화관의 매표소와 매점에 도입돼 있다. 자유시장논리의 중심에 있는 영화관은 정말 모두를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평등한 극장의 궁극적인 청사진은 이호선 모두예술극장 극장운영부 과장의 한마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두예술극장의 목표는 모든 이용자가 원하는 만큼 도움을 주되 결과적으로 스스로 걷고, 움직이고, 공연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