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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클로징] 태초의 ‘진흙 덩어리’와 미래의 ‘미키 17’
홍기빈 2025-03-27

태곳적, 여신 여와(女媧)는 사람을 만들어내기로 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 한 사람 정성 들여 진흙으로 빚고 숨을 불어넣어서 만들었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느리고 복잡했다. 싫증도 나고 마음도 조급해진 여와는 결국 다른 방법을 택했다. 항아리에 진흙과 밧줄을 함께 쑤셔넣은 뒤 밧줄을 확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방에 흩뿌려진 진흙 덩어리들이 저마다 꿈틀거리며 저절로 사람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였고 땅은 금세 사람들로 북적이게 되었다. 하지만 여와가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 사람들과 항아리에서 한꺼번에 만들어진 사람들이 동일할 수는 없었다. 전자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귀족들이 되었고 후자는 평생 흙을 파고 갈아먹고사는 서민들이 되었다. 중국에서 내려오는 창조신화의 한 대목이다. 고대인들 또한 계급사회라는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반쯤은 체념으로 반쯤은 슬픔으로 ‘한땀 한땀’ 정성 들여 만든 ‘수제’ 인간들과 항아리와 밧줄을 사용하여 ‘대충 만들어진’ 인간들의 차이로 설명하려고 했던 듯하다. 우리 사회도 비슷하다. 지적 배경과 경제적 능력을 갖춘 부모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야말로 장장 18년 동안 하루 24시간, 주 7일, 12개월 내내 가지가지의 세심한 교육과 돌봄 속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다’. 반면 배움도 돈도 부족한 부모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은 민들레 씨앗처럼 땅에 떨어져 자신들의 힘으로 잡초처럼 자라난다. 전자는 좋은 대학을 거쳐 각종 스펙을 쌓아 고소득 엘리트가 되고, 후자는 매일매일 맨주먹과 맨몸으로 세상과 씨름해야 하는 서민들이 된다. 19세기의 사회사상가들은 산업문명이 발달할수록 인류가 점점 더 동일한 집단이 될 것이며 계급 또한 소멸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산의 주역이 기계가 될 것이며 그 앞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사람마다 대동소이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의 우리가 부딪힌 산업문명의 전망은 전혀 다르다. 생산의 주역은 기계와 같은 유형적 요소가 아니라 지식과 기술이라는 무형적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후자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를 놓고 각자가 차지하는 위치와 대접은 천차만별로 세세하게 갈라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최소한 향후 몇 세대 동안 계속될 것이며, 인간 세상도 점점 여와 시대와 비슷한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교육과 돌봄 불평등이 계급을 결정한다’라는 명제는 점점 더 절실한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미래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것이 있다. 좀 어이없는 일이지만 지난 몇십년간의 세계적 추세로 볼 때, 많이 배운 엘리트일수록 점점 더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가진 것, 배운 것 없는 서민들은 갈수록 ‘보수적’이거나 ‘극우적’인 성향으로까지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투표를 통해 독재자가 되는 사기꾼들이 늘어만 간다. 그렇다면 ‘자유, 평등, 박애’라는 현대 민주사회의 원칙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손으로 만든’ 인간이든 ‘밧줄에 튕겨져 생겨난’ 인간이든 모두가 서로를 형제자매로 아끼며 함께 살아가자는 소중한 꿈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로서는 아직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는 질문이다. 지식과 정보라고 해봐야 달랑 USB 하나에 담긴 채 끝없이 프린트되어 나오는 미래의 ‘미키 17’과 공중에 흩뿌려지는 여와 시대의 진흙 덩어리의 이미지만 자꾸 머리에서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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