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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승부’의 대명사가 될 자격을 지닌 두 전설, <승부>
김철홍(평론가) 2025-03-26

세계 프로바둑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하며 최전성기를 맞이한 바둑기사 조훈현(이병헌)이 어린 이창호(유아인)를 제자로 들인다. 이 재능 있는 어린 소년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가까이에 두고 지켜보기 위해서다. 그렇게 창호는 훈현의 집에 얹혀살며 바둑뿐만이 아닌 승부의 세계 전반에 대해 깨우치게 된다. 그러나 이창호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치열한 연구 끝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풍을 확립한 창호는, 단숨에 훈현의 라이벌인 남기철(조우진)마저 꺾은 뒤 곧바로 이어진 결승전에서 스승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안기고야 만다. 창호의 미래가 궁금해 그의 스승이 되고자 마음먹었던 훈현은, 이제 그 현실이 눈앞에 다가오자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승부>는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바둑기사 조훈현과 이창호의 사제 관계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두 사람이 한집에 살며 대결을 했다는 사실을 비롯한 몇 가지 주요 설정들은 모두 현실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극적인 드라마 전개를 위해 픽션이 가미된 부분 또한 적지 않다. 이를 통해 영화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지점은 두 바둑기사의 인간적인 면모다. 한때 ‘바둑 황제’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스승이 어린 제자에게 참패하여 몰락의 길을 걷게 될 때의 모습과, 스승의 가르침대로 피 터지게 전쟁을 치른 끝에 승리를 거두었으나 차마 기뻐할 수 없는 제자의 모습. 바둑판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인물의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켜보다 보면, 승부의 세계가 이토록 잔혹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영화는 얼굴과 착수하는 손, 그리고 바둑돌을 번갈아가며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차가운 바둑판 위에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또한 바둑돌에 금이 가게 하거나 피가 새어나오게 하는 식의 비현실적인 묘사까지 적극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바둑이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다행히도 <승부>는 바둑에 친숙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조훈현, 이창호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윤종빈 감독과 함께 쓴 각본으로 이번 영화를 연출한 김형주 감독은 전작 <보안관>에서 그랬던 것처럼 <승부>에서도 역시 코믹적 톤으로 극을 진행시킨다. 이는 다소 정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스포츠 세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며, 얼마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극이 90년대를 배경으로 진행되어 레트로 감성을 자아낸다는 점과 주연배우들을 비롯한 고창석, 현봉식 등의 베테랑 조연배우들의 활약에 힘입어 내내 잔잔한 웃음이 이어진다. 그러나 <승부>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재미는 아무래도 두 실존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싱크로율에서부터 올 것이다. 머리 스타일과 바둑을 둘 때 하는 특유의 동작들, 특히 집중 상태에서 짓는 무표정에서 느껴지는 포스 등을 익히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번질 것이 분명하다. 두 배우가 펼친 연기 대결의 승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것도 <승부>의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close-up

<승부>엔 제자가 스승을 이겨내는 장면이 있고, 반대로 스승이 제자를 이겨내는 장면이 있다. 말하자면 ‘승부’는 이 이기고 지는 이가 있기에 비로소 성립된다. 우리는 어느 순간엔 이창호를 응원하고 또 어느 순간엔 조훈현을 응원하게 된다. 당신의 마음이 어떤 순간에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주목하며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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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감독 데이미언 셔젤, 2015

사제지간의 피 튀기는 혈투라면 앤드류와 플레처 교수를 따라갈 커플이 또 있을까. 동서양간의 끔찍한 사제 관계를 비교해보는 것, 그리고 <승부>에서 조훈현이 과연 이창호에게 ‘굿 잡’이라는 칭찬을 하게 될지 기다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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