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한 아이템은 다 해봤다. 오래된 잡지의 난제 중 하나는 뭔가 새롭고 특별한 걸 시도해야 할 시기에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거다. 올해 내내 <씨네21> 30주년에 어울릴 기사를 준비하면서 머리를 싸맸다.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5주년, 10주년, 15주년, 20주년, 25주년 창간 기념호들을 쭉 돌아봤더니 오히려 선택지가 줄어 더 막막해졌다. 주변에서 너무 힘주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 하라며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지만 막상 욕심을 내려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4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영화기자가 된 뒤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매주 (사고 없이) 마감하는 특별한 요령이 있냐고. 처음엔 그런 건 없다고 했지만 요즘은 이렇게 답한다. 마감은 하는 게 아니라 당하는 거라고. 마감을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언제 하는지는 명확하게 안다고. 같은 마음가짐으로 복잡한 생각들을 지우고 몸이 기억하는 대로 30주년 창간 기념 특집을 정리 중이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선별하고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제법 넉넉하다. 한번에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워서 아예 한권으로 끝내지 않고 나눠서 선보이기로 했다. 그렇게 최소 4주, 한달치의 아이템이 준비됐다. 주간지지만 월간지인 것마냥. 아니, 매주 월간지 분량을 뽑아낸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빵빵하게 준비한 30주년 특집 기획들을 소개한다.
1500호에서는 <씨네21>이 기록해온 한국영화의 30년을 정리해보았다. 새로울 것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21세기 한국영화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씨네21>이 함께해온 만큼 지난 역사를 한눈에 훑어보는 건 <씨네21>만이 할 수 있는 기획이다. 이어 영화를 사랑하는 두 배우 이준혁, 전소니 배우를 만나 ‘그들 각자의 영화관(映畵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국 기획영화의 문을 연 <쉬리>가 25년 만에 재개봉해 이에 맞춰 강제규 감독과의 긴 만남도 가졌다.
이번 1501호에서는 아예 한권을 통째로 30주년에 바친다. 30은 그저 숫자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 특별한 의미로 채워보려 한다. 우선 ‘30’이라는 숫자에 맞춰 1500개의 표지 중 베스트30, 30년 세월의 기사 중에 베스트30개의 기사를 뽑았다. 30년 세월의 엑기스를 한눈에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야심 차게 준비한 기획은 ‘(한국)영화에 던지는 서른 가지 질문들’이다. 여러 각도에서 지난 시간과 기억을 되돌아보고 정리한 것은 단순히 추억을 되새기는 작업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질문을 뽑아내기 위한 점검과 정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때때로 우리의 질문이 어설퍼 고리타분한 답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수하고 실패할지언정 부딪치고 묻는 걸 멈추진 않겠다. 그것이 이립(而立)에 접어든 서른살의 영화 주간지 <씨네21>이 세운 의지이다.
다음 1502호에서는 봉준호 감독을 만나 2000년 이후 한국영화의 중심에서 바라본 기억을 들어볼 예정이다. 과거는 낯설게, 미래는 생생하게 바라볼 뜻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어 1503호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또 다른 특별한 만남들이 준비되어 있다. 독자 여러분의 이야기와 요구를 직접 듣고 반영하는 자리도 마련할 것이다. 이번주, 4월 한달, 2025년이 전부 특별할 것 같다. 어쩌면 매주 하던 대로. 어깨에 힘주고 준비하고 보니 ‘평소에 하던 대로’란 조언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