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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프랑스영화제2002 작품선정 디렉터 유키코 이마이즈미
2002-07-04

“결혼도 영화제 덕에 했죠”

요코하마의 6월은 눈부신 태양과 청량한 바람이 번갈아 뺨을 어루만지는 계절이다. 하나 더. 6월은 프랑스영화의 계절이기도 하다. 고급호텔과 컨벤션센터 등 메가톤급 건물들이 항구의 결을 따라 위풍당당하게 늘어선 이곳에선 올해로 10년째 프랑스영화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영화제요코하마’는 요코하마시와 유니프랑스가 절반씩 예산을 들여 프랑스영화 근작들을 상영하는 영화제.

올해 프랑스영화제요코하마에서 상영한 영화는 장편 18편과 단편 6편. 유니프랑스가 제공한 장편 100편, 단편 80편 가운데 상영작을 섬세한 손길로 골라낸 유키코 이마이즈미 마탱은 4년째 작품선정 디렉터를 맡고 있다. 작품선정 디렉터란, 글자 그대로 상영작을 선정하는 사람이다. 세월의 풍화를 달게 받아들인 주름과 사람좋은 미소, 나직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유키코는 온순한 첫인상과 달리 ‘신여성’으로서 꽤 강단있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1934년 도쿄 스기나미구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연극학과를 졸업, <TBS>에서 1년 동안 조감독 생활을 했는가 하면, 각켄이라는 회사 영화부에 입사해 사회교육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1971년부터 <도쿄신문> <키네마순보> <시네프론트> <닛케이신문> 등에 프리랜서로 영화에 관한 글을 기고하는 한편 오사카에서 열리는 유서깊은 축제인 ‘오사카밤바쿠’ 준비팀에 합류, 2년 동안 일했다. 당시 영화제 스탭 가운데 홍일점이었던 그녀가 눈길을 끌었는지 불가리아, 에티오피아 대사관 등에서 취재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불가리아영화에 관한 기사가 <마이니치그라프>에 실리는 등 저널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던 중 체계적으로 저널리즘을 공부할 필요를 느껴 75년 뉴욕으로 날아갔고, 컬럼비아대학 저널리즘 스쿨을 수료했다.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마르셀 마탱과 결혼하여 파리에 정착했던 그에게 4년 전 프랑스 대사관에서 작품선정 디렉터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고, 그때부터 영화제와 인연을 맺었다.

유키코의 프랑스영화 사랑은 유년 시절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남녀의 연애감정과 희로애락에 대한 탁월한 심리묘사에 끌려” 어릴 때부터 줄리앙 뒤비비에, 장 르누아르의 영화부터 챙겨보았던 그가 프랑스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올해 프랑스영화의 경향에 대해 “9·11 테러 때문인지 지난해에 비해 재미있는 것이 별로 없고, 심각한 주제를 다룬 작품이 좋은 것이 많았다”고 평한다. 영화제에서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 뒤에 교황청의 묵시가 있었다는 내용을 다룬 코스타 가브라스의 <아멘> 등이 인기가 많다고. 그 밖에는 “<로망스>의 감독 카트린 브레이야의 신작 <섹스 이즈 코미디>, 오페라 <토스카>를 그대로 영상으로 재현한 브누아 자코의 <토스카> 등이 관객의 호응을 많이 얻었다”고 귀띔한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기까지의 로맨스를 묻자, “71년 모스크바영화제에 취재차 갔다가 만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대개의 프랑스 사람과 달리 과묵했던 그가 도쿄로 돌아온 그녀에게 뜻밖에 파리에서 전화를 걸어왔고, 뉴욕으로 공부하러 간 뒤에도 파리에서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고. 방학 때면 뉴욕과 파리를 오가는 ‘값비싼’ 데이트와 수많은 편지의 공방 끝에, 77년에 ‘이마이즈미’ 뒤에 ‘마탱’이라는 성을 덧달고 파리에 정착했다는 꽤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수줍은 미소와 함께 털어놓는다. 지금도 <시네프론트>에 매달 기고하는 등 저널리스트의 행보도 이어가고 있는 그는 “영화제 덕분에 매년 요코하마에 올 수 있어 기쁘다”는 한마디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요코하마=글·사진 위정훈 oscar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