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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 틀별전 - V시네마의 아지테이터를 만나다
2002-07-05

다다미 위에 나뒹구는 날것의 세상

Focus

on Takashi Miike

미이케 다카시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이전에 만났을 때, “당신이 가장 만들고 싶은 영화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이케는 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영화라고 답하면, 사람들이 ‘아, 미이케 다카시는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구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 혹은 세상의 틀이나 질서에 가두기 싫다는 것. 아마도 그것이 미이케의 사상이고, 행동양식이고 또 그의 영화가 아닐까?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는 천개의 얼굴을 가진 불상과도 같다. 데뷔작인 <후도>를 보았을 때는 기발하고 희한한 만화 같은 영화를 보았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을 보았을 때는 섬세하고 오랜 세월 숙련된 칼로 뜬 생선회를 맛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표류가>에선 모든 것을 초월한 잡동사니로 들끓는 에너지를 보았다. <천연소녀 만>을 보았을 때는 정말 심하게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이번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들의 면면 역시, 천국에서 지옥까지 각양각색이다. <아지테이터> <레이니 독> 같은 한 경지에 이른 전형적인 장르영화가 있는가 하면, <이치 더 킬러>처럼 장르를 구분할 수 없는 잡탕도 있다. 뮤지컬인 <가타쿠리가의 행복>도, 선뜻 뮤지컬이라 부르기가 망설여진다. 인간의 지극히 순수한 마음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영화가 있는가 하면, 다다미 위에 나뒹구는 인간의 내장처럼 날것의 참혹한 폭력으로 점철된 영화도 있다. 미이케 다카시는 속세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그의 영화 하나하나는,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영화는 종종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마음만은 늘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

이번 미이케 다카시 회고전에서는 모두 7편의 영화가 선보인다. 1년에 적어도 3, 4편의 영화를 만드는 다산의 작가인 미이케 다카시의 지형도를 완벽하게 숙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대강의 행로는 살펴볼 수 있다. 특히 V시네마의 주력 장르이며, 미이케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 부분을 점유하는 야쿠자영화 <레이니 독> <블루스 하프> <아지테이터>를 볼 수 있는 것은 큰 수확이다. 장르의 규칙 안에서, 장르의 한계와 공식을 뛰어넘는 미이케의 세련된 연출력을 감상할 수 있다. 미이케 다카시의 무정부주의와 폭력의 미학은 널리 알려진 바이지만, 의외로 그의 작품에서는 ‘가족’을 읽을 수 있는 구석이 많다. <가타쿠리가의 행복>은 워낙 소재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레이니 독>이나 <데드 오어 얼라이브> 등에서도 ‘가족’이란 단어가 새삼스레 마음으로 밀고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오디션>도 핵심은 ‘가족’이다. <표류가>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랬고.

미이케 다카시는 천변만화의 작가다. 그의 작품은 저열한 속(俗)에서 궁국의 지향점인 성(聖)을 끌어낸다. 그런데 그냥 단순하게 일직선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마지막 장면에서 난데없이 드래곤 볼의 필살기가 연상되는 것처럼, 미이케는 상식을 초월한다. <중국의 조인>에서 ‘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도시인들이, 결국은 날개를 달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김봉석/ 영화평론가

◆ 이치, 더 킬러 Ichi the Killer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아사노 다다노부, 오모리 나오, 쓰카모토 신야, 사부

일본 / 2002년 / 129분

1년에 적어도 3, 4편의 영화를 만드는 미이케 다카시가, 무려 1년여의 사전제작 기간을 거친 뒤 촬영에 들어간 역작. 원작인 야마모토 히데오의 만화 <고로시야 이치>는 지나치게 폭력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야쿠자 조직의 보스 안조가 행방불명된다. 안조의 심복인 카키하라가 수색에 나서 용의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한 끝에 찾아낸 용의자는 이치라는 이름의 킬러. 안조에게 맞으며 희열을 느끼고, 얼굴 곳곳에 피어싱을 한 카키하라는 ‘완벽한 사디스트’ 이치에게 매혹된다. 이치는 동급생이 강간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돕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강해지기로 결심했고, 킬러가 됐다. 자신을,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을 죽이지만 그 폭력은 오히려 이치 자신을 고통에 빠뜨린다. 인간의 폭력성의 근저를, 지독한 ‘고어’와 함께 치열하게 드러내는 문제작. 이와이 순지의 <피크닉>에 출연했던 아사노 다다노부가 ‘사이코’ 카키하라를 맡았고, 감독으로 유명한 쓰카모토 신야와 사부도 조역으로 출연한다.

◆ 아지테이터 Agitator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다케나카 나오토, 가토 마사야

일본 / 2002년 / 150분

모든 혁명은 부패한다. <아지테이터>의 노회한 야쿠자들은, 강직한 의리와 분노로 살아가는 히구치를 두려워한다. 마침내 축출한다. 세상 어디서나, 모든 원칙은 동일하다. 소도시의 야쿠자 조직 요코미조는 시라네와 경쟁하고 있다. 시라네의 조직원이 요코미즈 구역에서 고의적인 시비를 걸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수습책을 논의하던 중 요코미즈의 보스가 암살당한다. 요코미즈의 일파인 히구치 조장은 당장 전쟁에 나설 것을 주장하지만, 다른 조장들은 타협책을 찾는다. 시라네는 전국 조직인 텐세이카이에 중재를 의뢰한다. 텐세이카이의 카이토는 시라네의 보스를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리고 양대 조직을 자신의 손에 넣어려 한다. 걸림돌은 물론 히구치. 음모를 알아차린 히구치파는 독자적으로 전투에 나선다. 미이케 다카시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야쿠자영화의 최신작.

◆ 데드 오어 얼라이브 Dead or Alive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아이카와 쇼, 다케우치 리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영리한 액션영화다. 화끈하게 눈을 사로잡는 오프닝으로 출발하여, 서서히 관객을 인물들에게 끌어들인다. 주인공들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빼앗아버리며 감정을 고조시킨 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어느 틈에 현실 너머로 도약해버린다. 신주쿠에서 야쿠자들이 중국계 마피아 조직에 연거푸 살해당한다. 죠지마는 요코하마의 차이나타운에서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닌2, 중국계 일본인의 영웅 류이치를 만난다. 난치병에 걸린 딸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사 죠지마. 유학을 보낸 동생과 함께 조직을 확장할 꿈을 꾸는 중국계 일본인 류이치. 그러나 그들의 미래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잘못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모든 희망을 빼앗아버린다. V시네마의 최고 스타 아이카와 쇼와 다케우치 리키가 연기하는 죠지마와 류이치가 등장할 때마다, 화면은 꽉 들어찬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두 스타의 카리스마를 한껏 살리면서, 미이케 다카시의 기발한 액션이 영화 전편을 수놓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누구도 예측불허.

◆ 레이니 독 Rainy Dog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아이카와 쇼, 가오 민춘, 첸셴메이

일본 / 1997년 / 94분

야쿠자의 세계를 다룬 미이케 다카시의 ‘흑사회’ 3부작의 하나. 조직의 명령으로 살인을 하고 대만으로 피신한 유지. 밤에는 정육점에서 일하고, 낮에는 자거나 컴퓨터로 <고지라>를 보고, 중국 마피아 보스 호우의 명령으로 가끔 살인을 한다. 어느 날 한 여인이 찾아와 유지의 아들이라며 첸을 남기고 가버린다. 유지는 버려진 개를 보듯 대하고, 첸은 졸졸 유지의 뒤를 따라다닌다. 심지어 살인의 현장까지도. 다른 조직의 보스인 쿠를 죽이러 간 유지는 창녀인 리리를 알게 된다. 아무런 꿈도 없던 리리에게, 유지는 날개가 된다. 쿠는 죽였지만, 호우의 배신으로 유지와 리리, 첸은 쫓기는 처지에 놓인다. 미이케 다카시가 그려내는 야쿠자영화의 기본 정서가 쓸쓸함과 박탈감임을 잘 보여주는 영화. ‘비맞은 개’의 외롭고, 힘겨운,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여정을 비정하게 그려낸다.

◆ 가타쿠리가의 행복 The Happinessof the Katakuris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사와다 켄지, 마쓰자카 게이코

일본 / 2001년 / 113분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뮤지컬로 리메이크한 기묘한 영화. 가족의 행복만을 원하며, 퇴직금을 몽땅 쏟아부은 ‘가타쿠리가’의 산장. 딸 시즈에는 이혼하여 딸 유리에를 데리고 돌아왔고, 감옥에서 나온 말썽꾼 아들도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요원하다. 첫 손님은 자살하고, 두 번째 손님인 스모 선수와 애인은 복상사에 질식사한다. 오로지 가족의 행복을 위하여, 가타쿠리가는 시체를 유기한다. <가타쿠리가의 행복>이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춤과 노래다. 솜씨가 세련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어색함이, 어떻게든 행복만은 지키려는 가타쿠리가의 진심을 드러낸다. 웃음을 참으면서도, 그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가족과는 거리가 먼 듯한 미이케 다카시의 눈이, 사실은 가족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

◆ 블루스 하프 Blues Harp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와타나베 세이이치

일본 / 1997년 / 106분

미군 사병이었던 아버지는 베트남에서 죽었고, 창녀였던 어머니는 10살의 츠지를 고아원에 버리고 떠났다. 청년이 된 츠지는 거리에서 마약을, 라이브 클럽에서 술을 판다. 어느 날 츠지는 다른 야쿠자들에게 쫓기던 켄지를 구해주고 친구가 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미래의 길이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 그뒤 츠지는 술집에서 만난 토키코와 동거하게 된다. 처음으로 츠지는 가정이란 것을, 평온함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 츠지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던 하모니카 연주가 음반제작자의 눈에 띄고, 눈앞에 희망이란 글자가 보인다. 하지만 혼혈아인 츠지와, 야쿠자 조직의 이단아인 켄지의 미래는 암흑이다. 이 지독한 사회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살아가려면 냉정하고, 잔인해져야 한다. 이방인의 종말을 처연하게, 비극적으로 담아낸 영화. 개인적인, 강추!

◆ 중국의 조인 The Bird People in China

감독 미이케 다카시

출연 모토키 마사히로, 이시바시 렌지, 마코

일본 / 1998년 / 118분

미이케 다카시의 상용어가 폭력만은 아니다. <중국의 조인>에는 마오쩌둥이 누군지도 모르는 중국의 변방 마을에서, 하늘을 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마을에 도착한 도시인들은, 돌아오고 싶지 않다. 돈도, 명예도 필요없는 세상에서. 와다는 난데없이 담당자가 입원하는 바람에 중국의 운남성으로 출장을 간다. 우격다짐으로 끼어든 야쿠자 우지이에와 티격태격하며 찾아간 마을에는 하늘에서 온 조인의 전설이 있다. 조인의 전설은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와다와 우지이에는 마을에서 도시인의 이상향을 발견한다. 미이케 다카시는 와다와 우지이에가 오지의 마을에 매혹당하고 빠져드는 과정을 통하여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현대인의 갈망을 그려낸다. 아름답고 순수한 영화.▶ Pifan2002 올 가이드: 개 ·폐막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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