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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출연한 신경외과 전문의 최휴진
2002-07-10

영화 출연으로 스트레스 해소하지

‘이를 우짜노….’ 최휴진(47) 교수는 “<챔피언>, 잘 봤십니더”라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다. 시사회를 다녀와서 주위 동료와 담당 환자들에게 “내가 나온 장면은 다 잘렸더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결국 들통이 났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역할로 출연했기에, 최 교수는 그토록 밝히길 꺼려했던 것일까. 처음도 아니고, 그간 특별출연한 영화가 <닥터K> <친구> <달마야 놀자> <재밌는 영화> 등 4편이나 되는데 말이다.

여기서, 문제의 영화 <챔피언>을 돌려보자. 혹, 권투 중계방송을 하는 캐스터와 해설자 사이에서 연신 V자를 내보이던 40대 중년 남자를 기억하는가? 포마드 기름으로 고정한 8:2 비율의 가르마가 흐트러질까 조심하면서도, 철없는 코흘리개 꼬마들과 다투며 얼굴을 들이밀던 바로 그 남자. 최 교수가 이처럼 ‘코너’에 몰린 건 다 ‘경택이 그놈’ 때문이다. 그는 요즘 “이거, 교수님 아니믄 아무도 못합니다”라는 곽경택 감독의 ‘꾐’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수난을 당하진 않을 텐데, 라고 곱씹고 있다(이에 대해 곽 감독은 “내가 안 하믄 누가 하나”라며 최 교수의 자발적 출연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다른 감독들은 아무리 망가지는 역할이라도 의사 가운은 입혀줬거든. 근데 경택이 금마는 만날 이상한 것만 시키는기라.”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 과장으로, 가운을 걸친 지 30년이 다 된 베테랑 전문의인 그가 ‘카메라’ 앞에 처음 서게 된 건 지난 98년. 신경외과를 배경으로 한 메디컬 미스터리영화 <닥터K>의 자문을 맡은 게 인연이 됐다. “다른 교수들이 익숙한 일이 아니라면서 나를 떠밀어 맡게 된 건데, 경택이가 이왕 하는 김에 출연도 한번 해보라케서 그리 됐지” 하지만 이후 촬영장에서 본 곽 감독은 만만한 그의 중학교 12년 후배가 아니었다. <친구>에서 악독 형사반장을 맡았던 그는 당시 품었던 불만을 웃으며 털어놓는다. “두 다리만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경택이가 내 보고 아무 말도 안 하고 다시 하라는 기라. 그때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한 게 스무번은 넘었지. 촬영 끝나고 나서 내 직접 묻지도 못하고 오성이, 동건이 붙잡고 ‘곽 감독, 내한테 무슨 감정있나’ 하소연 했다 아이가.”

그러면서도 그는 영화촬영장이 자신에겐 ‘비상구’라고 말한다. “수술이 잦은데다 신경외과는 까딱 잘못하면 죽거나 장애가 온다고. 매사 긴장해야 하니까 사람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남들은 스트레스 푼다고 운동이다 뭐다 취미 생활을 하는데, 나한테는 영화가 딱인기라. 말하자면 일상탈출이지.” 얼마 전부터는 드라마 출연 제의까지 들어오는 탓에 그는 나름의 ‘원칙’도 세워놓았다. 촬영 때문에 병원을 이틀 이상 비울 순 없다는 것. 섭외하는 쪽에서도 그의 스케줄 조정을 위해 적어도 한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또한 부산영상위원회 의료자문을 맡아 촬영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의 수습을 책임지고 있는 탓에 그는 다른 지역에서의 촬영은 대부분 거절하고 있다. “처음엔 충무로라는 동네가 참 수월해보였는데. 아, 해보니까 수술이나 촬영이나 고달프긴 마찬가진기라. 난 그저 아마추어 배우로 족해.” 단역배우치곤 꽤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최 교수, 그의 말이 과연 진심일까.글 이영진 anti@hani.co.kr / 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