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부부문제 낱낱이 털어놓는 <터닝 포인트 사랑과 이별>
2002-07-11

이혼이 쉽습니까?

<터닝 포인트 사랑과 이별> SBS 토요일 밤 11시50분외주 제작 리얼리티 비전

<터닝 포인트 사랑과 이별>(이하 <사랑과 이별>)은 11시50분, 밤 늦은 시간에 방송된다. 상처받은 자들이 잔뜩 웅크린 시간이다. 사회자 한선교와 양금석, 그리고 패널 두명은 조용히 앉아 있다. 오늘도 문제 많은 부부의 산을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괜히 텔레비전 앞에 웅크린 마음이 무거워진다.

소개와 함께 상처받은 부부가 등장한다. 6개월치 밀린 월급을 결혼이라는 중대결정으로 갚아버린 남자와 남편의 외도로 의심만 늘어가는 여자와 이해할 수 없는 생활습관 덕분에 차라리 배우자가 없었으면 하는 여자와, 외도도 아니라는데 불쑥불쑥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 나이 많은 남자가 무조건 보기 싫다는 여자, 그들 앞에 남은 것은 이혼뿐인 것처럼 보인다. 구경하는 자의 자만이 불쑥 튀어나온다. 저러니 헤어지고 말지, 힘들게 뭐가 있어. 이혼은 쉽다. 가끔 말만큼 쉬울 때도 있다. 가끔 구경하는 것보다 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구경하는 자의 마음은 상처가 없다. 상처받은 자들은 어렵게 생각한다. 명쾌하지 않다. 어렵다. 에둘러 가는 길, <사랑과 이별>은 그들의 편에 서서 어려운 길을 택했다.

시시콜콜한 인터뷰, 구질구질한 당신 삶으로

부부관계를 탐색하는 프로그램은 많다. 수많은 TV드라마들이 부부문제에서 출발한다. 부부의 문제만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부부의 상황을 재연하는 프로그램(<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KBS2))도 있고 문제를 가진 부부를 출연시켜 서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하는 프로그램(<아침마당>(KBS2)의 ‘부부탐구’)도 있다. 그런 중 <사랑과 이별>의 특별한 점은 출연자들이 용기있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용기의 포스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비밀, 부부관계를 낱낱이 털어내는 데까지 끌어올려져야 한다.

<사랑과 이별>은 대략 한달간의 제작기간을 거친다. 그래서 동시에 네개의 조가 움직인다. 섭외중, 촬영중, 후반작업중, 작업 끝내고 쉬는 중. 남/녀/합동으로 이루어지는 인터뷰는 촬영 전 2∼3일에 이루어진다. 첫날의 인터뷰는 4시간에서 6시간에 육박한다. 이를 바탕으로 재연 시나리오가 짜인다. 이후 촬영을 진행하는 10일 내내 출연자들의 옆에는 카메라가 붙어다닌다. 촬영을 할 수 없는 경우, 부부만이 있어야 하는 상황에는 집에 카메라를 설치한다. 대략 카메라는 4대가 설치된다. 그 카메라를 제작진은 관찰카메라라 부른다. 정신과 상담과 심리극, 심리검사는 모든 부부들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다. 케이스별로 갖가지 특이한 프로그램이 뒤따른다. 의욕이 없는 사람은 극기훈련을 거치고, 아내가 가꾸지 않는 것이 불만일 경우는 아내의 모습을 바꾸어주기도 한다. 남자가 권위적이고 여자가 억눌려 살 경우 예절교육을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부부는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보면 구경하는 자들의 쉬운 해결책을 버리고 급작스런 반전이 일어난다. 그들은 서로를 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옛기억을 떠올린다. 밀쳐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발자국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사랑과 이별>에서 문제부부를 관찰하는 카메라는 관음증적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은밀한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구질구질한 당신 삶으로 안내한다. 즐거움이라 한다면 자신의 삶보다 더 구차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만족시키는 한에서 일어난다. 보는 순간 어떻게 얼굴을 내놓는 출연(40% 정도는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성변조는 하지 않는다)을 결정할 수 있었는지 하는 의문이 들 만큼 그들은 적나라하다. 텔레비전에서 절대로 비쳐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우리의 더러운 모습, 누추한 모습, 부끄러운 모습들을 바로 그 현장에서 중계된다. 그러다 그 관찰카메라는 이상하다. 우리는 어떤 시선 앞에서 움찔한다. 그것마저 적나라하다. 69회 ‘돈이 뭐길래’의 경우 심리극에 참여한 부인은 남편에게 억눌렀던 감정을 표한다. 갑자기 돌변한 부인에게 당황하며 남편은 말한다.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다른 회, 남편이 부부싸움에서 평소와 다른 태도를 보이자 부인은 말한다. “카메라 의식하는 거냐.” 그들에게 카메라는 그 순간 ‘중계’를 담고 있지 않다.

최선을 다한 당신, 떠나라

관찰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상황은 돌변한다고 다큐멘터리의 교과서는 말한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정직한 다큐멘터리를 만날 수 없음을, 그런 시차적응 전 다큐멘터리는 애초에 정직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런데 <사랑과 이별>의 관찰카메라는 관찰하기 시작하는 순간의 돌변 상황을 그대로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간의 다큐멘터리의 허점을 장점으로 바꾼다. 그들이 용기를 내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 ‘터닝 포인트’다. 카메라는 그들을 부추기고, 서로의 감정의 극단까지 가도록 부추기면서 ‘터닝’을 돕는다.

그러나 구경하는 사람에겐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극적인 구성을 위한 편집 권리를 가진 제작진, 그들은 상처자국을 급하게 봉합해버린 채 박수치고 떠날 수 있다. <사랑과 이별> 기획부장이자 작가인 최은영씨는 그들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결론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갈등을 쌓은 시간에 비해 카메라가 다가가는 시간은 아주 짧다.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정을 했다면 후회없는 결정인가는 물어봐야 한다. 결혼이 중대사이듯 이혼도 마찬가지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어야 한다. 몇년을 같이 살아온 배우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다.”

우리 팀의 선전을 두고 차범근 해설위원이 승리는 의도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뒤에 오는 부산물이라고 한 말과 비슷하다. 그래서 <사랑과 이별>에 출연한 부부가 이혼을 한 경우는 별로 없다. 다음날 예정된 심리극을 마다하고 사라진 남편을 두고, 혼자 심리극에 참여한 부인이 이혼을 결정했던 예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들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할 때 그들은 관계개선의 첫 발자국, 시작이 반이라면 관계개선의 반을 지났다. 용기와 마지막 배려는 출구를 뚫었다.

저기 내 얼굴이 보이는군요

<사랑과 이별>의 방송이 끝나는 1시까지 제작진들은 사무실에 남아 있다. 저녁에도 울리지 않던 전화벨이 그때쯤 울린다. 텔레비전에 나의 얼굴이 보이는군요, 절망적인 우리 관계를 이야기할 용기가 이 늦은 밤중에 나는군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한 아줌마는 밤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위안을 삼는다. 나보다 더 지겨운 삶이 나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얄팍하지만 결말에 질투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저 사람 말하는 게 나하고 똑같다, 내가 들어도 짜증나네, 라고 스스로를 반성한다. 그들은 인생의 벼랑에 도달해 있다. 이혼율이 높아진다고 부부간 기강을 되살려야 한다는 교회의 새해 설교는 이혼이라는 주홍글씨를 목에 단다. <사랑과 이별>의 웅변은 간곡하다. 연사의 목은 막혔다. 이혼이 그렇게 쉽습니까. 구둘래 kuskus@dreamx.net제작진의 노하우로 전하는 부부생활 증진법

양말 냄새 맡을 때는 안 보이는 데서

부부 사이에 대화를 많이 하라는 것은 건강한 부부생활 증진법의 1조1항이다. 하지만 이 대화법에는 특별한 조례가 있으니. <동물원 사람들>의 운종과 하영처럼 30분 동안 할말이 없어 방바닥 때만 벗기는 일도 있지만, 격하게 마음이 쌓인 경우 서로 자기말만 쏘아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기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들을 것. 전문가들은 5분 동안 자기 말을 하고 5분 동안 상대방의 말을 들어줄 것을 제안한다. 그 5분을 다른 사람이 소화하고 있는 경우는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올라도 참아야 한다. 남이 떡이 커 보인다고 남의 5분이 더 길어 보인다면 앞에다 시계를 가져다놓는 것도 준법시민의 자세다. 부작용은 시계에만 몰두하다보면 상대방의 소리가 째깍째깍으로 들린다는 것. 시계바늘 소리는 너무 크지 않는 것으로 가져다놓는 것이 좋다.

벽이나 천장이나 문에다가 상대가 자신한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과 했으면 하는 것을 정리하여 적어놓는 방법도 유용하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 오래라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의 항목을 적는 것에 손이 떨리는 유치함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꿋꿋이 참으며 항목을 적어내려가다보면 그간의 문제들이 일목요연하게 보일 것이다. 사람 부딪히고 사는 것은 유치한 것투성이라서 상대방의 양말 냄새 맡는 버릇(양말 냄새 맡을 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라)과 아껴놓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얌체 같은 행동(아이스크림 먹을 때는 소유주를 확인하라) 따위가 그녀 혹은 그의 냉전의 시발점일 수도 있다. 그런 항목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웃지 말고, 꼭 양말은 그냥 벗어라.

대화법에 못지않은 증진법은 ‘내 탓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로간의 양보가 없는 부부들은 ‘니 탓이요, 니 탓이요, 니 탓이요’라고 생각한다. ‘니가 못해줘서 내가 그렇지, 니가 잘해주면 내가 못해주겠냐’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 ‘니가 못해줘도 내가 해준다’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것을 조건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가 아니라)는 속담은 고언이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이 상황에는 부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