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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외계의 침입자>
2002-07-18

우리 안의 강탈자들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 1978년, 감독 필립 카우프만 출연 도널드 서덜런드 EBS 7월20일(토) 밤 10시

차도에 사람이 뛰어든다. “그들이 오고 있어, 그들이!”라고 소리친다. 운전하던 이는 놀라 차를 멈춘다. 소리를 지르던 사람은 어디론가 달려가고 일군의 군중이 뒤를 따른다. 그들은 마네킹처럼 묵묵히 걸어간다. 잠시 뒤,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고 역시 군중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처참한 시체, 무표정한 사람들. <외계의 침입자>의 이 장면은 일상적 공포의 서늘함을 들춰 보인다. 도시는 회색빛이고 군중은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의 존재가 낯선 외계에서 온 것이라는 점.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접하는 현실의 풍경이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겹쳐진다.

<외계의 침입자>는 원작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외계에서 날아온 씨앗이 도심 상공에 떨어진 뒤 이상한 꽃이 핀다. 생물학자 엘리자베스는 꽃을 집으로 가져온 뒤 남자친구의 행동이 이상해짐을 느낀다. 동료인 매튜는 엘리자베스의 말을 듣고 심리학자 키브너를 소개한다. 엘리자베스와 매튜는 우연히 인간의 복제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발견하고 이 사건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 된다. 외계에서 온 씨앗이 밤새 잠들어 있는 인간을 복제하는 것. 엘리자베스 등은 탈출을 결심하지만 의외로 쉽지 않다.

<외계의 침입자>는 SF호러의 고전이다. 국내에 <신체강탈자의 침입>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졌는데 세편의 영화로 제작된 적 있다. 돈 시겔(1956), 필립 카우프만(1978), 아벨 페라라(1994) 등의 감독이 각기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낸 것이다. 원작소설을 각색한 세편의 영화들은 미국사회가 특정한 시대에 품고 있었던 악몽을 재현하고 있다. 돈 시겔 감독의 영화는 세계대전과 한국전 이후 냉전 분위기를, 필립 카우프만 감독작은 베트남전 이후의 미국인들의 피해망상증을, 그리고 아벨 페라라 영화는 에이즈 시대의 공포를 그려내고 있다. 이중에서 필립 카우프만의 <외계의 침입자>는 원작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을 얻었다. ‘외계로부터의 침입’이라는 SF물의 고전적 모티브를 당시 미국인들의 불안한 심리적 공백상태와 결부했다는 것이다.

<골드스타인>으로 데뷔한 뒤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를 오가던 필립 카우프만 감독은 이 영화로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카우프만은 영화를 리메이크하면서 변화를 꾀했는데 중요한 것은 영화 속 공간이 샌프란시스코라는 대도시로 옮겨진 점을 꼽을 수 있다.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육체를 차지하게 되고 그들의 ‘감정’을, 가장 인간적인 속성을 모조리 제거한다는 설정은 원작과 동일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