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엽기적인 생각일진 모르겠지만, 천정명의 몸과 얼굴을 따로 떼어놓고 조각 맞추기를 한다면 좀처럼 제 짝을 맞추기 어려울 것이다. 동글동글 귀엽고 순한 얼굴에 근육형 팔뚝은 잘 연결이 안 되는 조합인데다 ‘배시시’하는 웃음에 조곤조곤한 말투까지 듣고 있다보면 농구, 축구, 테니스, 골프까지 섭렵한 ‘만능 스포츠맨’이란 말은 거짓말처럼 들릴 정도다. 영화 데뷔작인 <아 유 레디?> 역시 처음엔 ‘좋은 몸’ 때문인지 터프한 고등학생 현우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하지만 그를 지켜본 제작자는 “정명이 성격은 오히려 준구에 가깝다”고 판단, 결국 교복을 단정히 입은 모범생의 모습으로 처음 스크린에 담길 수 있었다.
<아 유 레디?>에서는 고등학생을 연기했지만 천정명은 올해 대학 4학년인 80년생이다. “낯가림도 많고 친구들과 운동만 하던 학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길에서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어 데뷔했다. 처음 찍은 ‘호빵CF’는 “거금 100만원”의 용돈을 벌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처음으로 “조명을 받는 일,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의 매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공부할 땐 그렇게 졸리더니 일하면서 밤샐 때는 졸리지 않더라구요. 그냥 재미있고 신났어요. 운동밖에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일이 좋아질 것 같았어요.” 준비기간이 짧아 연극영화과가 아닌 체육학과로 진학하긴 했지만 그는 대학생이 되고부터 운동이 아닌 연기쪽으로 중심을 기울였다. 혹시 그의 얼굴이 낯익다면 SBS 단막극 ‘남과 여’의 <꽃다방 순정>이나 MBC 특집극 <세번째 우연>과 베스트극장 <한 잎의 여자> 등을 통해 이미 남모르게 그와 조우했으리라.
“저는 찍을 때마다 다쳐요.” 처음 <꽃다방 순정>을 찍을 때 스턴트맨의 뒷발에 차여 턱이 돌아가고 <세번째 우연>에서는 달리는 자전거 체인이 빠지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어드벤처영화 <아 유 레디?>는 말하나마나, 타이의 폭포 안에서 원신 원컷의 액션신을 찍던 그는 심장마비로 앰뷸런스에 실려가며 “이렇게 죽는구나” 했던 사고도 겪었다. 그 순간 인공호흡까지 동원해 함께 있어준 이종수는, 4살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아 유 레디?>를 통해 만난 가장 소중한 친구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이종수가 출연중인 시트콤 촬영장에 놀러가는 등 그들은 남다른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기대에 찬 데뷔작이자 어떤 작품보다 고생이 심했던 영화, 그러나 비록 흥행이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해도 그는 “후회없이 촬영했고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며 크게 괘념치 않는 눈치다. 그저 “그렇게 좋아하는 운동도 포기하면서 선택한 것이니만큼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할 것”이라며 다짐만 거듭할 뿐. “헬스나 영화나 어떻게 보면 닮은 것 같아요. 모두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점이 그렇구요. 함께하는 친구나 동료가 있다면 더욱 즐겁다는 것까지요.” 아직 스물둘인 그의 눈에서 미래를 읽을 순 없지만, 이미 천정명의 발은 한 발짝 앞서 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