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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4인, 기획영화 10년을 말하다(2)
2002-07-26

˝우리,지금 독일이랑 4강전 앞둔 대표팀이야˝

<은행나무 침대>에서 <접속>으로

심재명 신씨네의 <은행나무 침대>도 중요해요. 금융권의 자본이 처음으로 들어왔던 영화거든요. <결혼 이야기>가 대기업 자본을 유인했다면, <은행나무 침대>가 금융자본을 유도한 거죠.

차승재 그러고보니까 철이 형이 대부분 문을 열고 들어간 거네. 93년부터 제작에 들어간 <구미호>도 아마 컴퓨터그래픽을 처음 쓴 영화 아닌가. 내가 그때 신씨네에 근무했는데, 어느 날 철이 형이 150ℓ짜리 냉장고를 하나 들고 오는 거야. 저게 무지 비싼 거라고만 들었지, 스캐너인 줄은 몰랐다고.(웃음) 그때까지 한국영화에 그래픽을 한컷이라도 쓴 영화가 있었나 싶어.

이춘연 생각이 있어도 팍 내지르고 실천하기가 힘들잖아. 그런 면에서 신철은 정말 대단히 미친 놈이었다니까.

신철 전에 컴퓨터 공부를 한 게 좀 있어서 그랬죠. 매킨토시는 내가 거의 최초 사용자 중 하나였으니까. 그래서 그래픽쪽의 가능성을 봤고. 막상 시작하고나니 너무 지식이 부족했고, 계획과 실행 사이에 착오가 많았어.

차승재 그때 신문에 고소영 얼굴이 구미호로 변신하는 5장의 변화 컷이 실렸거든.

신철 근데 영화엔 그 장면 안 나와. 사람들이 극장에서 나오더니 그거 왜 안 나오냐고 그랬다니까.

심재명 빚을 많이 지신 거죠? 그때 장비 때문에.

신철 누가 장비에 투자해줄 사람이 있나. 하고 싶은 사람이 사야지. 그때 돈으로 한 7억원 들였으니까. <은행나무 침대>까지 쓰고 나서 그쪽 팀들 독립할 때 함께 보냈지. 지금은 거의 못 쓰는 장비들이야.

차승재 형은 새 물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사서 해보고자 하는 성향 같은 게 있어. 노트북도 그렇고.

신철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 <구미호>로 이야기하자면, 당시 제일 큰 문제가 우리가 특수효과를 하려면 매트페인팅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걸 하려면 옵티컬을 해야 해. 근데 그건 우리한테 불가능하다고. 옵티컬 작업하려면 현상을 잘해야 하는데, 그때 법에 현상액 중 일부는 국산을 써야 한다는 게 있었어. 섞는 데 잘될 리가 있나. 죽어도 안 되거든. 그 쉬운 매트패인팅도 못하니까 그렇다면 CG로, 디지털 기술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거지. 거기다 옵티컬을 하게 되면 현상을 네다섯번 하는 과정에서 화면 퀄리티가 뚝 떨어지는 문제도 있고.

차승재 오버랩 한번 하면 화면 질이 10% 정도 다운되니까 긴 옵티컬은 아예 엄두도 못 냈지.

신철 그때 실패를 거울 삼아 <은행나무 침대> 때는 조금 나아진 거야. 물론 실질적으로 돈은 그렇게 많이 못 벌었어.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다 가져가버렸거든. 그때가 회사로선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서 다 가져가버린 거지.

이춘연 넌 제일 똑똑하지만 항상 사기맞을 준비가 돼 있다는 게 문제라고. 신철이 철드는 데 한 10년 걸렸지.

신철 아주 중요한 한획을 그은 게 <접속>인데, 그게 몇년이었지?

심재명 97년이었죠. 아이템 개발은 95년 말부터고. 삼성영상사업단으로부터 전액 투자를 받아서 하게 됐죠.

차승재 <결혼 이야기>는 새로운 형태의 한국영화라고 보여지고, <접속>은 한국영화 전통의 한 부분인 멜로영화의 흐름을 바꿨다고 봐야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죠. 일단 주인공 남녀가 안 만나는 멜로영화가 없었으니까.

심재명 컨셉이나 주제,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적인 완성도에 많은 신경을 썼어요. 후반작업에 공을 들인 것도 그 때문이고. 어떤 소재나 주제의 특이함이 아니라 그 자체의 완성도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기존의 음악을 선곡할 때 미리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처음 만들어서 부가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고.

신철 그게 얼마나 나갔지?

심재명 80만장이나 나갔으니까. 그거 자체가 큰돈이 됐죠.

차승재 O.S.T가 영화홍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몇 안 되는 영화야.

◀ 이춘연/1955년생. 연극계를 거쳐 1983년 화천공사에서 영화일을 시작했다. 94년 성연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손톱>을 제작했고, 씨네2000을 차려 <지독한 사랑> <그들만의 세상> <삼인조>

등의 작품을 내놓았다. <여고괴담> <미술관옆 동물원><인터뷰>등도 씨네2000의 작품. 최근작은

<서프라이즈>

▶ 신철/1957년생. 1978년 김수용 감독의 <도시로 간 처녀> 연출부로 첫발. 1988년 신씨네를 차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베를린 리포트> 등을 기획했고, 1992년 기획영화 <결혼

이야기>를 제작해 서울에서만 52만명의 관객을 동원. 96년 <은행나무 침대>를 제작해 또 한번 흥행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선보임.<편지><약속>의 대박 이후 휴면기 끝에 지난해 <엽기적인 그녀>로

재래.

신철 그림으로 이야기하면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나. 전에 만들었으면 안 그랬을 텐데. 피카디리극장 앞에 있는 전도연의 치마 앞자락에 물이 살짝 떨어져 있는 게 보이는 거야. 그런 느낌의 차이들. 그게 되게 좋았다고.

이춘연 예전 같았으면 둘이 그렇게 멍하니 안 서 있지. 뽀뽀도 안 하고 말이야.

차승재 젊은 관객이 좋아하는 아이콘이 많이 보인 영화였어요. 폴라로이드카메라만 하더라도 기획의도로 심어놓은 것 같고, 아이콘이라고 부르기 뭐하지만 여배우의 안구건조증 같은 설정도 기억에 오래 남고.

심재명 일단은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조명주 작가가 훌륭하고 탄탄한 트리트먼트를 써냈죠. 그 안에서 디테일한 변형을 한 거죠. 남녀주인공의 직업을 음악 프로듀서로 하자는 것 등은 회의에서 결정이 났고. 완성도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사실 2년 동안 캐스팅도 안 되고 파이낸싱도 안 되던 때라 할 수 있는 일이 고치는 것밖에 없기도 했죠.

신철 투자하는 사람들도 꺼려했을 거야.

이춘연 영화를 보면 기술적인 발전 같은 게 보여. 조명만 하더라도 무조건 환하게 찍지 않고 입체적으로 세팅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까지 기술 스탭들도 해보고 싶은데 환경이 받쳐주질 않아서 못하니까 그냥 해온 대로 갔을 거라고. 그런데 <접속>부턴 달라진 거지. 그런 의미에서도 기폭제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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