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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4인, 기획영화 10년을 말하다(1)
2002-07-26

˝우리,지금 독일이랑 4강전 앞둔 대표팀이야˝

신철 무슨 얘기부터 해야 하지? 기획영화야 요즘에는 워낙 일반적인 게 돼나서. 전에는 딱히 부를 만한 용어가 없다보니까 그렇게 부른 건데.

이춘연 시작하기 전에 내가 야부리를 좀 풀지. 60년대에만 하더라도 이른바 일본영화가 기획되던 시대였지. 그래서 정보가 있는 어른들이 일본영화를 가져와서 조금 바꿔서 만들고 그랬다고. 그 이후 80년대 중반까지는 소설 원작을 주로 각색하던 시절이야. 영화사에선 터질 만한 소설이 나오면 남들보다 빨리 물어오는 게 일이었어. 기획실이 생겨나긴 했지만, 주로 홍보 선전일을 맡았고.

차승재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간접적으로 관객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방법 중 하나였을 거예요.

이춘연 내가 처음 영화판에 와서 기획실장 할 때 소설가들을 잘 몰랐거든. 신문에 광고나는 소설 빨리 보고 제목 괜찮으면 재빨리 잡는 사람들 보면서 굉장히 부러웠지.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포장마차로 끌고가서 소주 마시면서 내년에 나올 걸 잡는 경우도 있었어.

차승재 철이 형과는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이춘연 신철은 그때 명보극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뭐라도 하나 해보겠다고 해서 황기성사단 사무실 한 귀퉁이에 자리를 내줬지. 근데 웃긴 건 차비도 없는 애가 컴퓨터 들여놓고 아르바이트 써가면서, 30만∼50만원씩 줘가면서 뭐를 입력하네, 기획하네 그러는 거야.

신철 뭘 해보겠다는 맘이 생겼는데 어디 가서 말을 붙여요. 다 그때 황기성 사장님이랑 춘연이 형이 자리를 내줘서 하게 된 거지. 신씨네를 처음에는 제작사의 중간단계로 생각했고, 영화기획사라는 타이틀도 실질적인 제작능력이나 자금력이 없어서 그냥 붙인 거야.

이춘연 85년에 영화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영화사라고 하면 거짓말이라도 땅이 몇평 있어야 하고 스튜디오랑 카메라랑 있어야 했으니까.

신철 누구나 제작을 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긴 했지만, 우리로선 제작을 할 만한 여력이 없었어요. 이름 빌려서 하는 대명 제작도 힘들었고. 암중모색하다가 92년에 신씨네 기획에, 익영영화사 제작으로 해서 <결혼 이야기>를 만들었지. 일단 결혼은 누구든 다 하니까 모든 사람의 관심사일 텐데 그걸 이전과 다르게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 제목은 그때 홍보 맡았던 심 사장이 붙였고. 그때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직업을 유지하려면 어쨌든 장사가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컸어.

이춘연 그 영화 인상적인 게 마지막 타이틀 올라갈 때 신혼 부부들 인터뷰 장면이 나오잖아. 수십 커플들. 그게 기획영화가 탄생한 순간을 증명하는 거라고. 리서치를 해서 그 공통분모들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썼으니까.

차승재 시나리오도 오래 쓰셨죠? 제 기억으로도 28고였나, 30고였나 그럴 정도였으니까. 일단 <결혼 이야기>는 관객의 존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기획영화의 처음이죠. 관객이 뭘 좋아할까, 이 이야기로 관객한테 무슨 서비스를 해줄 수 있나 그런 고민을 했으니까.

심재명 그때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신뢰가 없었잖아요. 한국영화 흥행 1위가 20만∼30만명 들던 때였으니까. 무시당하는 절박한 상황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나를 고민했고, 제대로 된 한국영화를 만들어보자는 게 컸죠. <결혼 이야기>로 서울에서 50만명 동원하고 나니까 자신감이 붙었던 거죠. 또 전에는 한국영화라고 하면 나이든 분들이나 가서 보는 거였지만 이 영화를 시작으로 대중문화의 주소비자인 젊은 관객이 영화관에 몰리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하죠.

신철 일단 뭔가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욕구와 또 그걸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력들이 많이 모인 것 같아. 감독도 그렇고, 스탭들도 젊었고. 물론 선배들은 다 신인이라서 잘 안 될 것 같다고 그랬는데. 그게 되니까 신인한테 시켜도 되겠구나 하는 인식을 하게 됐지. 인력 측면에서 일종의 분출구 역할을 하긴 했어.

차승재 가장 중요한 건 이 영화에 대기업이 투자해서 수익을 가져갔다는 거예요. 어떤 선두의 흐름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본의 수혈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낼 수가 없잖아요. 법이 바뀌었고, 인력이 모였고, 거기에 자본까지 붙으면서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거죠.

심재명 그전까지는 대기업이 비디오 판권만 구매하다가 <결혼 이야기> 때부터 영화제작에 전면적으로 투자하게 된 거죠.

이춘연 익영영화사 ‘피카 박’(박상인 사장)의 스타일도 한몫했어. 간섭하지 않고 널뛰듯 한번 놀아보라고 한 건데, 그 안에 파워가 숨겨져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게 관객한테 전달됐던 거야. 기획이란 게 감독부터 스탭까지 아주 행복한 환경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잖아. 그 브레인들이 그런 환경에서 영화 만들어서 제일 시설 좋은 극장에서 틀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대기업들이 솔깃해하는 기회를 제공한 거지. 그 영화 한편으로 이후에 데뷔한 젊은 제작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도 MBC프로덕션에서 돌아와서 보니까 내가 보기엔 다 아기들인데 모두 사장이 돼 있어 놀랐다니까. 그것도 굉장한 사장들이 되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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