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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1)
2002-07-27

“왔노라, 보았노라, 즐겼노라”

스콧 버거슨(J. Scott Burgeson)

그는 대한민국에 잠입한 비밀요원이다. 어떤 국가나 단체에서 혹은 먼 행성에서 그를 보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주어진 임무가 어떤 것인지조차 아직 명확히 밝혀져 있진 않다. 다만 1967년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링컨에서 처음 출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 버클리대 영문과를 졸업한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저 이 글에서는 ‘MIB(Man in Bucheon) 비밀요원’이라고 해두자. 처음 전화로(놀랍게도 그는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접선해 부천영화제의 이면을 찾아 글로 써달라고 하자, “이러쿵저러쿵 긴말 할 것 없어, 그냥 이메일로 몇 단어를 써야 하는지만 알려줘!”라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시죠, 라고 하자, ‘secretagentbug.**.com’이란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설마 했던 그는 정말 ‘비밀요원’(secretagent)이었던 것이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머리카락까지 빡빡 밀고 부천에 나타난 그는 푸른 선글라스에 카메라를 메고 영화제 이곳저곳을 조사하고 다녔고 <씨네21> 앞으로 꽤나 긴

원고를 보내왔다. 한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간사이 타임아웃> <코리아 헤럴드> 등에 기고하기도 했으며 지난 4년 동안 대한민국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은 교보문고 근처나 은신처로 알려진 낙원동 일대다. 광화문 지하차도 등지에서 혼자 만들어 파는 <버그>(bug)라는 잡지를 통해 공작금을 충당하고 있으며 99년 <맥시멈 코리아>, 2002년에는 <발칙한 한국학>이라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편집자

지루하고 진부하며 무감각하기까지 한 도시 부천이야말로 ‘판타지’라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도시일 것이다. 사실 부천을 ‘도시’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역겨울 정도로 관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30년 전, 그러니까 정확히 1973년에 ‘소사’라는 조그마한 마을과 인근 지역이 공식적으로 부천시로 합병되기 전까지 이 지역은 끝간 데 없이 늘어선 논과 복숭아밭뿐이었다(듣기로는 복숭아 경작은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이 지역은 끝없이 이어진 수천, 수만의 이십수층짜리 고층아파트의 물결에 완전히 뒤덮여버렸다. 땅 한 조작으로부터 쥐어 짜낼 수 있는 마지막 한푼의 이윤까지도 그 더러운 손에 쥐고야 마려는 탐욕스러운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이 멋들어진, 하지만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수확물인 부천은 정말이지 생명이 있는 도시란 어떠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상상력 제로, 판타지 제로, 아이디어 제로의 상태를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이 도시는 교외 거주지역의 악몽인 셈이다. 내가 어떻게 부천에 오게 되었냐면…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참석한 한 유럽인 게스트는 야간상영을 함께한 뒤 소사역 부근을 걸으며 “여긴 내가 이제껏 봐온 도시들 중에 최악이야”라고 평했는데 이 도시에서 정말로 아름답다고 할 만한 건물이나 나보다 연령이라도 오래된 건축물 하나를 변변히 떠올릴 수 없었기에 나로서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90년대 초로 돌아가, 그러니까 내가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을 무렵, 성 마르고 여드름투성이에다 검정 정장을 즐겨 입던 제프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비디오가 삶보다 아름다우므로…”라는 슬로건 아래 매주 언더그라운드 비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했었다. 당시에 나는 그의 말이 다소 염세주의적 견지에서 재치있고 귀엽기까지 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부천에서의 일주일을 보낸 이 시점에서 나는 그의 말에 부분적으로나마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최소한 부천에서는 PiFan이 실제의 삶보다 의심할 나위 없이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물론 서울에 살든(서울은 나의 현 거주지다) 부천에 살든 혹은 샌프란시스코에 살든 우리 모두에게는 약간의 판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거의 직관적으로 옳은 명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시아에 사는 서양인으로서 삶에 대해 과도한 판타지를 가지는 것은 때론 최악의 범죄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리고 주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왔다. 애드워드 사이드와 다른 많은 식자들이 일깨워준 바대로 아시아의 땅과 문화를 하나의 판타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쭐대는 인종주의적 오리엔탈리스트의 태도에 다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지점이 내가 매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하고 좀더 주변부적이고 대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영화제에 가끔씩 들르는 것에 만족하면서 지난 5년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는 한번도 참석하지 않은 최소한의 무의식적 동기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양심상의 가책으로 족쇄 채인 내 판타지 세계의 검은 세력(?)이 자유롭게 날개를 펴는 것은 어지간히 힘든 일이었다. 어찌됐건 나는 올해 드디어 금기를 깨뜨릴 이유와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나의 최근 저서 <발칙한 한국학>의 번역을 도와준 최세희씨가 그녀가 편집일을 하게 된 영화제 데일리를 위해 일본 감독 미이케 다카시와 독점 인터뷰를 해달라고 요청해 온 것이다(전공보다는 인연을 따라 일이 성사되는 것은 할리우드와 한국이 다 마찬가지인가보다). 대가로 나는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는 패스를 발급받을 수 있었는데, 이건 일본에서 가장 열정적이라는 미치광이 감독을 만난다는 것보다도 훨씬 나은 제안이었다. 더욱 고맙게도 최세희씨는 나를 <씨네21> 편집진에게 소개시켜 주었는데, 덕분에 독자들이 읽고 계실 이 일기를 써주는 대가로 술 몇잔 기울일 수 있는 짭짤한 부수입도 챙길 수 있었다(게다가 나의 공식 통역을 가장한, 에∼, 나의 여자친구에게도 패스가 발급되었다). 글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이 정확히 일기로서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그리고 여기 기록될 일들 중 일부는 검열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이것이 내가 그간 다녀온 영화제들 중에 가장 멋진 영화제임을 비로소 깨달은 PiFan에 대한 나름의 기록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이제 내게 남은 마지막 죄책감은 내가 이 영화제를 좀더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뿐이다.

▶ 굿바이 부천, 어게인 2002

▶ 메가토크 제 1장 : 미이케 다카시 vs 김지운

▶ 메가토크 제 2장 : 할리우드, 한국영화를 주목하다:한국영화의 리메이크

▶ 메가토크 제 3장 블루무비 특별상영 및 세미나: 검열과 극장

▶ ‘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1)

▶ ‘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2)

▶ ‘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