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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토크 1장 : 미이케 다카시 vs 김지운
2002-07-27

“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다”

PiFan 메가토크-부천영화제를 달군 이벤트 3막3장 지상중계

˝토크쇼보다 재미있는, 세미나보다 깊이있는˝영화제는 영화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부천영화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토크쇼만큼 재미있고 세미나만큼 깊이있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PiFan 메가토크, 그 다섯 가지 이야기 마당 중에서 특히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얻은 ‘미이케 다카시 vs 김지운’, ‘할리우드, 한국영화를 주목하다: 한국영화의 리메이크’, ‘블루무비 특별상영 및 세미나: 검열과 극장’편을 지상중계한다.“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다” 제 1 장 미이케 다카시 vs 김지운

김지운 감독과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부천에 떴다. 이들의 ‘회동’에는 뭔가 특별한 내막이 있었다. 미이케 다카시 특별전에서 상영된 <카타쿠리가의 행복>은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황당무계한 뮤지컬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영화. 일찍이 <오디션>에 반한 뒤로 미이케 다카시의 홍보대사를 자임해온 김지운 감독은 미이케 다카시의 <조용한 가족> 리메이크를 “가문의 영광”이라며 반색했다. 이들은 도발적이고 의미심장한 영화를 만들어온 행보나 잔혹한 유머를 구사하는 수법도 비슷하지만, 검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나, 다변이나 달변은 아니되 좌중을 사로잡는 화술도 닮아 있었다. 아시아 영화통인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었을 터. 토니 레인즈는 이날 ‘수줍은 연인’ 같은 두 감독 사이에서 종횡무진 활기찬 대화를 이끌어낼 특명을 안고 사회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는 미이케 감독은 1년에 6∼7편의 영화를 만드는 짬짬이 TV드라마까지 만들고, 김지운 감독은 1년에 1편 내놓을까 말까인데, 대체 왜들 그러냐며 딴죽부터 걸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다양한 장르와 스토리를 두루 다룰 수 있으니까, 단지 그 때문에 기회가 닿는 대로 영화를 찍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김지운 감독은 “일본에는 V시네마 등 다양한 실험을 지속할 수 있고 자기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장치가 있는 반면, 한국은 매번 생사를 걸어야 할 만큼 성공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고 항변하는 듯하다가, 이내 “사실은, 정말 사실은 게을러서 그렇다”며 웃어 보였다. 토니 레인즈 미이케 감독은 <조용한 가족>을 어떻게 알게 됐고, 어떻게 영화화하게 됐나. 미이케 다카시 나는 그 영화를 아무런 예비지식 없이 봤다. 그런데 처음 만든 영화다운 에너지와 힘이 느껴지더라. 나는 한편의 영화에 그만큼의 힘을 기울인 적이 없다. 일본 스탭은 한국 스탭보다 정열적이지 못하다. 내가 똑같이 만든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뮤지컬로 만들어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토니 레인즈 <카타쿠리가의 행복>을 보면서, 어떤 점에서 화들짝 놀랐나. 김지운 전체가 다 화들짝 놀랄 만했다. (웃음) 먼저 그 영화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데 놀랐다. 야구치 시노부나 수오 마사유키가 리메이크 한다면, 별로 기대하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미리 본 사람이 있기에 어떻더냐고 물었더니, 사람 죽이고 나서 춤 춰, 그러더라. 그래서 역시 미이케 감독이다, 했다. 클레이메이션으로 표현한 것도 대단하지만,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캐릭터가 놀랍더라. 사기꾼 해군 캐릭터는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캐릭터였다. 송강호 역을 너무 잘생긴 배우가 맡았다는 것도, 고호경 역을 너무 못생긴 꼬마가 맡았다는 것도 놀라웠다. 미이케 감독의 영화는 매순간 풍자하고 조롱하려는 의도가 느껴지는데, 이번 영화도 그랬다. 엉성한 안무와 노래로 정통 할리우드 뮤지컬을 풍자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미이케 다카시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가 한국에 특별전 형식으로 소개되는 것은 이번 부천이 처음인 관계로, 이야기의 초점은 한동안 미이케 다카시의 작품 세계에 맞춰졌다. 그는 아웃사이더나 비주류 캐릭터, 충격적인 범죄행각에 집착하는 데 대해 “도덕의식은 낮지만 인간적이고 솔직한 사람들의 이야기”야말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라고 밝혔다. 야쿠자 장르를 파괴하려는 충동(<데드 오 얼라이브>)과 지속시키려는 욕망(<아지테이터>)이 상충한다는 토니 레인즈의 지적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변했다. “여러 타입의 프로듀서와 극작가가 존재하다보니, 그들의 요구에 따라 야쿠자 장르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야쿠자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다. 어떤 의미로는 그런 영화들이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미이케 다카시는 <레이니 독>을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을 일본 밖의 다른 나라, 중국, 홍콩, 필리핀 등지에서 작업한 것은 “일본영화계가 다이내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꿈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다른 나라 공기를 호흡하며 다른 나라 스탭들과 일할 때 더 좋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해외 촬영을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말을 많이 안 해도 된다는 데 있다. 그게 편안하다.” 미이케 다카시는 어떤 경우에도 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작품에 자부심이나 애착을 느끼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감독을 내 직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익숙해지거나 억압받는 게 싫기 때문이다.” 영화학교에 들어간 것은, 공부도 싫고 직장에 가는 건 더 싫었던 십대 시절의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탈출구. 그는 아직도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지 않으며, 그 탓에 어른 대우를 못 받는다고 말했다. 물론 전혀 괘념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김지운 궁금한 게 있는데, 도대체 잠은 몇 시간이나 자나. 우스운 질문이지만, 난 심각하다. 나이 들면 잠이 줄어든다던데, 난 갈수록 늘어 고민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근원은 어디에 있나. 체력인가, 욕망인가. 아님 일이 많아서 못 자는 건가. 미이케 다카시 잘 자는 편이다. 어디에 있든지.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자는 것뿐 아니라, 이동하거나 쉴 때도, 심지어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잔다. 사흘 못 자면 체력에 한계가 오더라. 대신 눈을 뜰 때 긴장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안 자려고 했는데, 내 노력이 부족했구나. 그 순간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안 하고 미뤄뒀던 일이나 새로운 이미지 같은 것들. 내게 돈과 시간과 자유가 충분히 주어진다면, 좋은 작품을 못 만들 것 같다. 현실적인 한계 때문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김지운 후배라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좋은 얘길 해줄 것 같진 않지만, (웃음) 조언을 부탁한다. 지치거나 힘이 빠질 때, 절망적일 때,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일 수도, 이상일 수도, 격언일 수도 있을 텐데. ‘친절하게’ 설명 부탁한다. 미이케 다카시 후배라고 했는데, 영화 만드는 데는 선후배가 없다. 영화를 먼저 만들었다는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한편이라도 만들었다면, 그때부터 처지는 다 똑같은 거다. 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만일 실패해서 다시 영화를 못 찍는다고 하더라도,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노력을 별로 안 하니까 실패해도 당연하다. (좌중 폭소) 토니가 말하길, 내 영화의 절반은 실패작이라고 하더라. 돌발 상황. 토니 레인즈가 마약 이야기를 꺼냈다. 미이케 다카시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마약에 절어 살고, 그 때문에 상상을 초월하는 극단적인 행동들을 하곤 하는데, 감독 본인이 그 세계를 체험하지 않았을까 하는 ‘당연한’ 의문. 김지운 감독은 몽환적인 음악이 특징적인 뮤지션 모비를 언급하며, 그가 실제로는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는 데 놀랐다고 덧붙였다. 미이케 다카시는 자신이 마약 중독 캐릭터를 즐겨 다루는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과 욕망이 유난하기 때문일 거라고 답했다. 일본 사람들이 울트라맨에 열광하는 것도 가상인물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반영하는 맥락이라면서.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약을 금지하지 않는 나라에 가면 나도 좀 해본다. 로테르담영화제나 그런 데서.” 미이케 다카시의 대책없는 솔직함에, 장내엔 잠시 멍한 침묵이 흘렀다. “아,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속기록에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김홍준 집행위원장의 임기응변에, 그제야 웃음이 터져나왔다. 두 감독이 서로에 대한 남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시간. 미이케 다카시는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 계획을 궁금해했다. 몇 가지인지, 어떤 작품들인지. 김지운 감독은 “지금은 한 가지 기획중이지만, 마음속의 기획은 많다”며, 앞으로 더욱 분발하겠다고 했다. 이어지는 미이케 다카시의 질문은 TV드라마나 뮤직비디오나 CF, 영화가 아닌 다른 영상매체에 도전해볼 의향이 있느냐는 거였다. 김지운 감독은 “좋은 기회, 재미난 프로젝트”가 있다면 언제든 시도하겠다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김지운 감독은 미이케 다카시가 혹시 스즈키 세이준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자신은 영화를 많이 보지 않지만, 보더라도 “엔터테인먼트 차원”에서 즐긴다며, 영화보다는 현실에서 아이디어와 영감을 구한다고 했다. 관객 다른 한국 감독의 작품을 본 적이 있나. 미이케 다카시 요즘 내가 기대하고 좋아하는 한국 감독은 김기덕이다. 작품이 흥행하고도 안 바뀌었기 때문에, 그를 주목한다. 관객 둘이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은 없는지. 미이케 다카시 예산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영화라면 좋겠다. 돈이나 다른 조건은 무리할 필요없이 체력만 무리하면 족할 그런 영화.

김지운 체력 보강하고 준비하겠다. (웃음) 이번에 타이의 논지 감독, 홍콩의 진가신 감독과 함께 <쓰리>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참 피곤하고 힘든 일이더라. 미이케 감독과도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함께하고 싶다.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일본에서 영화를 찍는 와중에 짬을 내서 날아온 미이케 다카시는 한국에 정확히 24시간을 머물러, 부천영화제 게스트 중 최단 체류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과 미이케 다카시는 1시간30분 남짓한 이 토크 자리에서, ‘감독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부분 공명한 듯 보였다. 그들에게 메가폰을 쥐어주는 것은 세상의 모든 금지된 것에 대한 매혹. “미처 탐구하지 못한 금지된 영역이 많다.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으니, 추구할 것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이다.”

▶ 굿바이 부천, 어게인 2002

▶ 메가토크 제 1장 : 미이케 다카시 vs 김지운

▶ 메가토크 제 2장 : 할리우드, 한국영화를 주목하다:한국영화의 리메이크

▶ 메가토크 제 3장 블루무비 특별상영 및 세미나: 검열과 극장

▶ ‘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1)

▶ ‘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2)

▶ ‘국제문화건달’ 스콧 버거슨의 9박10일 부천방랑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