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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은 계속되어야 한다, 쭈욱∼
2001-03-29

컴퓨터 게임 - <리지니> 등 게임 저작권 시시비비

<리니지>는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이다. 한해 매출이 수백억원에 이르고, 제작사인 ‘NC소프트’는 코스닥에서 제일 돋보이는 기업 중

하나다. 이 게임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공방이 벌어질 예정이다. 원작자에 대한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리니지>의 원작은 유명한 만화가 신일숙씨가 그린 판타지 순정만화다. 그런데 게임 <리니지>가 만화 <리니지>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상업적으로 성공한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기존의 소설이나 만화를 기반으로 게임을 만드는 건 원작의 지명도에 따른 PR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리니지>는 게임이 워낙 성공하다 보니까 원작의 기여도가 비교적 낮았다. NC소프트는 게임 <리니지>로부터 창출된 상업적 가치는

자기들의 성과라고 생각했고,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캐릭터 상품을 개발하는 데 원작자인 신일숙씨와 계약은커녕 어떤 동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여기서 갈등이 생겼다.

NC소프트의 주장에 의하면, 게임 <리니지>가 이름과 세계관 등을 만화 <리니지>에서 따오긴 했지만, 몬스터나 캐릭터 모두 게임 속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더구나 온라인게임은 게이머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새로운 창작물이니 이에 대한 권리를 자신들이

가지는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원작자 신일숙씨에게는 계약에 따라 이미 일시불로 지급을 했으니 이 부분에서 추가로 요구를 해오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신일숙씨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처음 계약할 때 러닝 개런티를 요구하지 않은 건 NC소프트의 입장을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벤처기업 하나 잘되는 걸 보자는 마음에서 원작자로선 부당하게 느낄 수도 있는 계약을 이의없이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계약은 계약이고,

성공에 따른 추가적인 배려가 없는 건 문제삼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게임 엔딩에서 원작자 이름을 빼는 일이 일어나고, 급기야 원작자도 모르게

저작권이 걸린 부가상품을 개발하는 등 원작의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팽팽하게 맞서는 두 입장 중 누구 얘기가 옳은 건지 제3자가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계약서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도 아니고, 확인될

수 없는 소문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에 관계없이 이번 사건은 몇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게임시장이 꽤나 커지긴 커진 것 같다. 양쪽 사건 대리인은 각각 ‘태평양’과 ‘김 앤 장’이다.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들이 달려들

정도니 재판과 거기 걸린 돈의 규모가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둘째, 결과에 관계없이, 이번 사건은 게임산업에 합리적 시스템이 도입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이런 종류의 재판은 더 많이 행해져야 한다.

모 이동통신 업체의 광고에서 <스타크래프트> 캐릭터를 무단으로 이용하고도 저작권자쪽의 항의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일이 있었고,

유명 만화사이트에서 국내 작가들의 만화를 마음대로 올렸다가 만화가들의 항의에 마지못해 내리며 변변한 사과도 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저작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포함해 게임계에 전반적으로 합리적인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온라인게임 열풍 전 게임시장은 너무 영세했고, 모든 일은 수공업적으로 처리되었다. 이제 엄연한 산업으로 대우받을

만큼 규모가 커졌지만 전근대적인 구조는 여전하다. 합리적인 풍토가 자리를 잡을 때 표절이나 주먹구구식의 홍보와 유통 같은 문제점들이 고쳐지고

게임은 하나의 산업으로 완전히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sugulman@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