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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소설 <버스,지나가다>
2002-08-08

죽은 오필리아의 `물=독백`

동산만해진 엄마 배에 귀를 대고 잠이 들었었다. 꿈을 꾸었다. 내가 엄마 뱃속에서 살아가는 꿈이었다. 온통 불고 검은, 그러나 따뜻하고 촉촉한 바구니 속 같았다….(‘사랑인가’ 중)

5년 전 작고한 소설가 김소진의 작품을 모두 묶은 전집(6권)이 나왔다. 함정임 소설은 그보다 2주 전에 나왔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함정임은 김소진의 아내(였)다. 그리고 살아 있다. 유교적으로 표현하면 고인과 미망인 관계다.

왜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죽음이라는 ‘신비한 소문’ 속에서 ‘리얼리스트’ 김소진은 더욱 확보부동한 것으로 되어왔다. 그리고 삶이라는 ‘난해한 퍼즐’ 속에 함정임 소설은 정반대로 확고부동하다. 하지만, 둘 다 훌륭한, 그리고 진지한 소설가임에 틀림없다면 이젠 좀 달리 생각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김소진 소설에서 죽음의 신비를, 함정임 소설에서 난해한 퍼즐의, 논리보다 우월한 멀쩡함 혹은 삶-근친성을 찾아볼 때가 되었다. 두 사람의 소설이 삶과 죽음의 회통이라는 진경을 보여주는데 리얼리즘과 모더니즘(논리적) 회통이야 말할 것도 없겠다.

<버스, 지나가다>에 수록된 함정임의 단편소설 11편은 하나같이 감각적이다, 라는 말은 부정확하고 불충분하다. 그(녀)는 감각의 논리에 심지어 우연의 논리에 집착한다. 왜냐, 이야기의 논리가 과학의 논리보다 포괄적이듯, 소설의 논리는 이야기의 논리보다 더 죽음-응축적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소설은 죽음에 임박한 삶이 죽음의 논리로 건져올리는 삶의 감각의 ‘파편들’이므로, 파편성과 논리성의 구분-결합은 ‘우연(형식)=신(神, 내용)’의 시점에 달하므로, 아연 고전성을 띠게 된다.

400년 전 쓰여진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의 여주인공 오필리아는 복수를 위한 햄릿의 ‘가장된’ 광기에 상처를 입고 절망하다가,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자 진짜 광기에 휩싸여 물에 투신, 자살한다. 어찌하여 가장된 광기가 장래 장인의 목숨을 빼앗고 애인의 진짜 광기와 자살을 부르는가?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럽다. 그러나 <햄릿>은 걸작 비극이다. 왜냐, 물 때문이다. 그녀의 시신을 실어나르는 물이 스스로 ‘문학의 생명력’을 갖고 흐른다. 그것은 삶의 생명력, 혹은 죽음의 생명력?

무엇을 구분하겠는가. ‘죽음’의 ‘생명’력이면 되겠다. 함정임의 소설은 죽은 오필리아의 ‘물=독백’이다. 모든 문학이 그러하므로, 김소진 소설도 그러하다.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