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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vs 조선희, <오아시스>를 말하다(3)
2002-08-09

˝소외된 사람들의, 가장 본질적인 사랑 이야기˝

배우 - 심리적 경계선과의 전쟁

조선희

<박하사탕>을 볼 때는 문소리와 설경구라는 신인배우가 이창동 감독 때문에 스타가 되는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 이 영화를 보니까 저 두 배우 아니었으면 영화를 엄두도 내지 못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대요.

이창동

설경구는 스스로 내게 진 빚을 갚겠다는 생각도 있어서 처음부터 한다고 했고, 문소리는 내가 대안이 없었거든요. 나도 영화판에서 밥을 꽤 먹고 살아서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거든요. 이 역이 여배우에게 치명적이 될 수 있거든요. 또 신체적으로 잘하냐 못하냐를 떠나서 심리적 벽이 있을 거예요. 그건 거의 공포에 가까운 거죠. 문소리는 작품에 대한 애정도 있고 헌신성도 있었죠. 촬영하기 한달 전인가 본인이 드디어 해봐야 하는데, 사전준비는 충분히 했고 공주 역을 해야 하는데 막상 시작이 안 되더라고요. 충분히 예상했음에도 본인이 너무 두려워해서. 그때 제일 큰 위기였죠. 속으로 접어야 하는구나 생각했죠. 갑갑했죠. 다행히 그걸 어떻게 넘었죠. 그 심리적 선을.

조선희

여배우로서는 진짜 쉽지 않은 선택이죠. 그런데 설경구가 계속 훌쩍거리잖아요. 그건 감독이 지시한 거예요, 배우가 개발한 거예요?

이창동

개발했다기보다 감기들어서 그랬을 거예요. 본인도 굉장히 갑갑해했어요. 설경구라는 친구는 코드가 꽂혀야 하거든요. 분석하지도 않고, 계산하지도 않고 연습도 안 해요. 시나리오도 안 읽어요. 시나리오가 촬영 끝날 때까지 거의 새 책이야. 그런데도 대사를 외워오는 걸 보면 희한한 놈이지. 그런데 코드가 꽂히면 그 인물로 움직이는데, 종두가 자기에게는 전혀 없는 역이거든요. 지금까지 모든 역할이 <공공의 적>까지도 자기 안에 있는 어떤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거거든요. 그런데 설경구한테 홍종두는 없어요. 나한테는 있는데. 누군지는 알아요. 주변에 있으니까. 그러나 자기 안에 없거든. 걸음걸이부터 표정까지 다 만들어야 하니까. 무척 어려웠을 거예요

조선희

설경구에게는 전의 어떤 작품보다도 인물을 가장 잘 살린 연기 같아요.

이창동

본인은 굉장히 불안해했거든요. 왜냐하면 자기 속에 없는 거기 때문에.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외줄타기, 정상인과 미치광이의 중간, 바보와 영악한 놈의 중간, 그런 보이지 않는 선. 현장에서 제일 싫어한 말이 한 테이크 가고 나서 “내가 너 너무 바보 같다, 종두는 바보 아닌데”, 또 어떤 때는 “너 너무 정상 같다” 그러면 미치려고 하죠. 굉장히 불안해했죠. 한번은 내가 그런 얘기 했어요. <박하사탕>의 김영호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나 개인적으로. 훨씬 매력적인 인물로 생각한다고. 얘기해도 잘 안 믿지만.

조선희

류승완 캐스팅은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어요?

이창동

조감독이 아이디어를 냈는대, 나는 개인적으로 잘 모르거든요. 오다가다 인사하는 사이일 뿐이지. 의외로 너무 쉽게 하겠다고, 단서를 붙이는데 섹스신만 없다면.(웃음)

이미지 - 쫓았나, 좇았나

조선희

요즘 악몽을 꿔요?

이창동

아니오.

조선희

그러면 영화찍는 동안에는?

이창동

가끔. 가위 눌리는 거 있잖아요. 나는 악몽을 틀림없이 꿀 텐데 깨고나면 잊어버리니까. 가위는 원래 자주 눌려요.

조선희

왜 40대 후반의 신체 멀쩡한 남자가 가위를 자주 눌릴까?

이창동

나는 내 손이 가슴에 얹혀지면 가위 눌려요. 자다보면 손이 얹혀질 수 있잖아요.

조선희

영화와는 관련이 없다는 거죠? 세편이 넘어 가니까 조금 뻔뻔해진 건가요. 영화가 좀 쉬워진 거예요?

이창동

아무도 동의 안 할걸. 이런 생각은 오히려 해. 내가 점점 미쳐가고 있지 않나. 실제로 그런 불안에 사로잡힌 적이 있어요. 영화를 찍을 때마다 내가 너무 전보다 더 작은 것에 집착하더라고요. 더 만족을 못하고 까다로워지고. 사람 이러다가 미치는 것 아닌가 하는 괜한 불안 같은 것 느낄 정도로 날카로워져요. 좀 두려움이 있죠.

조선희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영화를 찍을수록 스킬도 그렇고, 노하우도 그렇고, 제작팀의 팀워크도 그렇고 점점 안정돼 가야 하는 게 상식 아닌가요.

이창동

이번에는 영화적인 걸 피해가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전하고 다른 방식의 사고를 요구했고. 영화적이지 않은 걸 찾는다는 게 무지 힘들어요. 카메라 대보면 그냥 앵글이야. 조명하면 바로 분위기가 만들어져요. 그걸 피해간다는 게 기준도 없고 뭘 찾는지도 모르겠고. 현장에서 다 힘들어했죠. 그게 생색나지도 않는 거고. 촬영도 멋있게 잘 찍으면 생색이라도 나지, 후지게 찍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데 누가 알아줘. 카메라도 서 있는데 왜 어깨에 메고 덜덜 떨고 있냐고. 촬영뿐만 아니고 연기자도 마찬가지고. 다른 모든 스탭에게 영향을 끼치죠. 미술도 그렇고. 정확하게 지향하는 게 없기 때문에. 뭔가를 피하긴 피해야 하는데. 그럼 찾는 게 뭐지? 이건 다들 막막하니까.

조선희

소설가라서 처음에 생각하기에는 내러티브에 의지해서 이야기 위주로 드라이하게 갈 거다 싶었는데 아주 이미지에 강해요. <초록물고기>도 막동이 차창 앞 죽는 장면이나, <박하사탕>도 영호가 기차 앞에서 나 돌아갈래 하는 장면이나, <오아시스>에서도(이창동-이미지가 있었나요?)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강렬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떠올려 놓은 이미지가 있었나요?

이창동

이번에는 이미지를 피해가려고 애를 썼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박하사탕>이나 <초록물고기>는 지금 말한 몇몇개 이미지가 머리 속에 처음부터 있었고, 그걸 영화에서 재현하려고 노력했죠. 그런 특별한 이미지가 아니라도 이미 머리 속에 뭔가가 있어요. 그게 영화 속에서 보여야 하는데 왜 안 되나 그런 고민을 했는데 이번에는 이미지가 뭔가 만들어지려고 하면 걱정이 되는 거 있죠. 이게 아닌데. <오아시스>에서 종두가 꽃들고 왔다가 꽃만 주고 나와가지고 앞에 공사장 인부들 잡담하고 있는데 혼자 멀뚱하게 서 있는 장면 있어요. 그런 장면이 좋아요. 정말 후지거든. 그건 이미지도 아니고 X도 아닌데, 그런 게 좋아요. 사실은 그런 게 몇개 없어요. 그런 걸 찾아내기가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개봉박두 - 쉬운 영화, 착한 사람들이에요

조선희

개봉이 보름쯤 남았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이창동

착잡하지 뭐.

조선희

왜 착잡해요? 지금까지 이래서 잘 만들었다고 설명해놓고.

이창동

그랬나. 그럼 안 되는데. 겸손하게 포장할 필요가 있는데. (웃음) 이렇게 잘 만들었다는 게 아니라 이런 의도였다는 거지. 근데 이번엔 진짜 잘 모르겠네. <박하사탕> 때는 정말 큰 기대 안 했어요. 사람들이 영화 좋다라고 말하는 게 의외였다고. 이렇게 잘 통한다 말이야? (웃음) 언제부터 당신과 내가 이렇게 잘 통했지? 이렇게 날 잘 이해한단 말이야?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관객이 좋아할 땐 정말 의외였어요. 젊은 관객이. 정말 이해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너무 기대 안 해서 감격한 측면도 있지만, 이번에는 그게 내게 영향을 끼쳤어요. 내가 믿는다 그랬잖아요. 정말 관객 함부러 볼 게 아니다, 뭐 내 영화를 이해한다고 해서 대단하다는 게 아니라. 내가 통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관객을 안 믿는 이중성이 나에게 있었어요. 소설 쓸 때도 그랬어요. <박하사탕>이 내게 이중성이 있다, 위선이 있다는 걸 알게 해줬죠. 지금은 솔직히 기대를 해요. 통할 거다. 그런데 그 기대가 그냥 상처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있죠.

조선희

이제 남은 건 홍보 마케팅인데, 감독님도 열심히 뛰셔야죠.

이창동

내가 나오는 게 아무 영양가가 없어요.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박하사탕>을 보고 영화보니까 재밌던데 솔직히 보기 싫었데. 왜? 신문기사 보니까 또 뭐 예술이구나. 별거 아닌데 잘난 놈들끼리 아는 척하는구나. 괜히 보기 싫어지잖아. <박하사탕>은 그런 점 좀 있지. 좀 어렵잖아요? 시간도 거꾸로 가고, 광주도 나오고. <오아시스>는 무지하게 쉬운 영화인데. 감독이 다니면서 입 벌려봐야 영양가 있는 소리 하나도 없고.

조선희

그럼 이런 인터뷰도 조금 부담스럽겠네요? 예술로 비칠까봐.

이창동

그럼요. 말을 편하게 해야 하는데, 잘 안 되네. 입력돼 있는 말들이 그런 종류의 말밖에 없어서.

조선희

그래도 굉장히 검열을 해가면서 말하는 것 같아요. 장사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신경써가면서. 자꾸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려고 하고.

이창동

근데 그건 분명히 해야 해요. 나는 장선우 감독이나, 홍상수 감독 계열이 아니에요. 그쪽은 문제아 계열이에요. (웃음) 실제로. 나는 모범생 계열이에요. 나는 긍정적으로 발언해요. 긍정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요. 내 영화의 전략이 뭐냐. 어찌됐건 건전하게 출발한 영화인데, 진지한 영화인데 흠잡기 힘들잖아. (웃음) 농담이지만 진담이지. 나는 긍정주의자고 낙관주의자고 이상주의적이고 인간을 믿으려 하고. 그런데 <박하사탕> 때도 경험한 건데. 영화 한편에 주제넘게 여러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잖아. <박하사탕>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착한 사람들이야. 굳이 그 얘기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좋아하고, 정작 말하고 싶은 사람들은 안 보고, 봐도 화내고. <오아시스>는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 게 있었냐면 뒤로 가면서 두 인물이 이뻐보이더라고요. 공주도 이뻐보이고, 종두도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처음에는 위기라고 생각했죠. 원래 컨셉이 그게 아닌데 그렇게 몰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스탭들이 그게 자연스러우면 되는 거 아니냐, 우리가 굳이 관객을 동화시키려고 장치를 하지 않는데, 그것까지 위험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 그러더라고요. 나도 그랬으니까 마찬가지로 관객도 영화가 가면 갈수록 두 인물이 사랑스럽게 보일 것 같아요.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싶어요.

정리 임범 isman@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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