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일본 대중영화의 UFO,야구치 시노부와 <워터 보이즈>(2)
2002-08-09

달려라!요절복통 돌연변이

영화적 원천은 애니메이션

“쓰카모토 신야 등의 일본 감독은 이른바 만화세대다. 그들은 만화를 보면서 성장했고 그것에서 영화적 영감을 얻곤 한다. 난 그들과는 많이 다르다. 일종의 애니메이션 세대랄까? 더 어린 세대다. 가장 감명깊게 본 작품으로는 유명한 <건담> 시리즈 등이 있다. 나의 영화적 원천은 애니메이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다른 일본 감독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원인 중 하나다. 움직이지 않으며 일종의 정지상태에 있는 만화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영상인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성장했고 그것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것이다.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경력은, 코미디에서 시작해서 코미디로 일관된다. ‘돈’을 유일한 인생의 목표로 삼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인 <비밀의 화원>(1997)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이 어느 부분에 재능이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여성,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 지질학 공부를 하고 수영대회에 참가하며 암벽등반 대회에서 우승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캐릭터 코미디에 능한 연출자임을 입증했다. 사키코라는 여성은 은행강도들이 잃어버린 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을 삶의 목표로 만들어버린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영화의 흐름, 어설프다 싶을 정도로 생략과 과장의 원칙에 철저한 <비밀의 화원>은 이후 야구치 시노부 영화의 특징을 앞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차기작 <아드레날린 드라이브>(1999) 역시 잃어버린 돈에 관한 영화다. 무기력한 스즈키라는 남자, 간호사 시즈코는 야쿠자들의 현금가방을 발견한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 둘은 가방을 들고 달아난다. 이들은 부부인 척 위장하고 길을 떠나는데 야쿠자들이 뒤를 쫓는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는 <비밀의 화원>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내부의 근원적 ‘힘’을 깨닫게 되는 여성의 이야기인 것이다. 남자친구도 없이 처량한 신세였던 간호사 시즈코는 돈가방을 손에 넣은 뒤 적극적인 여성으로 변신한다. 감독은 “이런 캐릭터는 얼핏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주변에 실제로 있을 법한 존재다. 좀 이상하고 기이하지만 따지고보면 재미있는 사람 말이다. 난 주변의 이런저런 사람을 모델로 해서 영화 속 캐릭터를 빚어내는 편”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거주하는 평론가 아론 지로는 “야구치 시노부 영화 속 캐릭터들은 감독을 최근 일본에서 가장 재능있는 코미디 연출자로 인정받게 했다”고 논했다.

♣ 왼쪽부터 <비밀의 화원>(1997), <원피스 프로젝트>(1999)

고전 영화의 언급, 숨은 인용 찾기

한 가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야구치 시노부는 일본영화계에서 전형적인 엔터테이너로 칭해지곤 한다. 만화 스토리 작가, TV 광고물 제작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쳤으며 대중적인 오락영화를 만들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야구치 시노부가 영화사적 지식이 전무한 감독이라 보면 곤란하다. 그는 루키노 비스콘티, 샘 페킨파, 오즈 야스지로 등 영화사의 거장 이름을 자연스럽게 거론하곤 한다. <워터 보이즈>에서도 영화음악을 루치노 비스콘티의 영향을 입어 사용했다고 고백했으며 전작 <아드레날린 드라이브>는 샘 페킨파의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꼭 공부한다는 기분은 아니고 다른 관객과 동일한 입장에서 많은 영화를 보곤 한다”고 말한다. 야구치 시노부는 고전영화에 대해 적지 않은 식견을 지니고 있으며 곧잘 자신의 영화에 인용하곤 한다. 워낙 미세한 인용이고 야구치 시노부의 코미디 감각이 탁월해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야구치 시노부는 요약하건대, 일본 대중영화의 UFO적 존재다. 그는 철저하게 개인주의 성향으로 영화를 작업하고 있다. <워터 보이즈>는 대중영화의 흥미로운 케이스라고 할 만하지만 부수적으로 그는 상업성이 없는 디지털 작업을 병행한다. 그는 영화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중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매체는 영화가 아니라도 별 상관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철저하게 오락과 쾌락을 지향하는 세대인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연출자에 대해선 별다른 동료의식을 품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의 철학이 이미 몸에 스며 있는 편이다. 어쩌면 야구치 시노부는 철저하게 관객을 위한 오락을 지향하는 점에서 윗세대 감독인 스즈키 세이준의 적자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스즈키 세이준은 컬트적 작품으로 한때 제작사로부터, 관객으로부터 소외당한 적이 있지만 야구치 시노부에게 비슷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는 관객을 위해서라면, 이라는 진정한 엔터테이너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질적 수준은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지만 대중성의 측면에선 영향력을 상실한 지 오래인 일본영화계에선 이단적 존재로 비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야구치 시노부의 <워터 보이즈>는 일본 대중영화의 활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가장 인상깊게 본 만화는 <기생수>”라고 야구치 시노부는 말한다. <기생수>는 외계에서 온 생물체가 인간의 신체를 점령하는 줄거리다. 여기서 신이치라는 주인공 역시 비슷한 일을 겪는데 그는 외계의 생물체와 공존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숨겨진 힘을 자각하는 것이다.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는 무기력하고 평범하며 별다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워터 보이즈>의 수중발레에 도전하는 아이들은 “우리가 도대체 이것말고 뭔가 제대로 해본 적이 있었냐?”라고 자문한다. 그들은 우연같은 필연을 통해 잠재력과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즐긴다. 야구치 시노부는 이렇듯 회복의 이야기, 혹은 자아발견의 모티브를 즐겨 다룬다. 그것은 야구치 시노부 자신이 젊은 감독이며 앞으로 숨겨진 재능을 과시하고 싶은 의지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UFO의 정체는 그제야 공개될 것 같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

감독이 밝힌 <워터 보이즈> 제작과정

웃기는 각선미 오디션

이번에

방한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워터 보이즈>의 재미있는 제작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 그중 하나는 배우의 즉흥연기에 관한 것이다.

돌고래 조련사 역의 다케나카 나오토는 감독의 통제가 쉽지 않았던 배우로 꼽혔다.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그나마 감독이 약간의 조율을

했기 때문에 절제되었던 것이다. 영화에 반영된 그의 코믹 연기는 실제 다케나카 나오토가 연기한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야구치 시노부의 이야기다. 걸핏하면 온몸을 비틀고 중년남자답지 않게 귀엽고 발랄한(!) 표정과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다케나카 나오토의

연기는 <워터 보이즈>를 즐겁게 하는 중요한 축이다.

평소 야구치 시노부 감독은 저예산 인디영화로부터 출발한 경력답게 영화 속 아이디어를 직접 짜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수효과를

개발하고 촬영 아이디어를 스스로 내놓는 것. “<워터 보이즈>는 상대적으로 특수효과의 비중이 많지 않은 영화였다. 아이들이 돌고래

수족관에서 장난을 치다가 돌고래들이 잠시 기절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만 특수효과를 약간 썼다. 모형으로 돌고래를 만들었고

그 돌고래들이 전기에 감전되어 수면에 둥둥 떠 있는 장면이다.”

영화의 출연진은 오디션으로 선발되었는데 수영실력과 각선미 등이 선발 기준이었다고. 여성 관객의 시선을 고려해 심사위원 중엔

여성도 끼어 있었다. 영화 클라이맥스에 수중발레 쇼 장면을 위해 춤에 대한 감각 역시 유심히 보았다고 한다. <워터 보이즈>에선

수중발레가 중요하다. 일본 국가대표 선수를 지낸 바 있는 후와 히로시가 촬영장에서 배우들을 지도했다. 후와 히로시는 배우들에게

체력훈련 등의 과정을 지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워터 보이즈>는 영화소재 덕에 수중장면이 많은데 야구치 히로시 감독도 “수영을

꽤 잘하는 편이다”라고 스스로의 수영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