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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영화의 UFO,야구치 시노부와 <워터 보이즈>(1)
2002-08-09

달려라!요절복통 돌연변이

오랫만에 웃기는 일본영화 한편이 한국을 찾는다. 8월15일 개봉하는 <워터 보이즈>. 감독은 장진을

연상케 하는 야구치 시노부. 만화스토리 작가, CF 감독 같은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인 야구치는 지금 일본에서 가장 촉망받는 코미디 감독이다.

한국을 방문한 야구치 시노부를 만나 분방하고 경쾌하고 명민한 그의 영화세상을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교복차림의 남학생이 화면에 보인다.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는 바닥에 누워 있다. 옆에선 자전거 바퀴가 한없이 맴돌고 있다.

카메라는 위에서 교복의 학생, 자전거 바퀴, 그리고 자동차의 불빛을 포착한다. 이상한 상황이다. 아이는 주섬주섬 주변에 떨어져 있던 책을 줍기

시작한다. 가방에 쑤셔넣는다. 표지만 봐도 어떤 책인지 짐작이 간다. 포르노 잡지다.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웅성거린다. “야, 이 학생은

정말 머리좋기로 소문난 수재야”, “빨리 병원에 가야지”, “경찰을 부르자”, “정말 미안하게 됐네 그려” 웅성웅성. 그런데 교복의 아이는

가방을 부둥켜안은 채 꼼짝하지 않는다. “괜.찮.습.니.다!” 차사고를 당해 아프지만 포르노 잡지를 들키기 부끄러운 것이다. 차에서 내린 이들은

어딘가로 떠나가고 아이는 같은 자세로 한참 동안 누워 있다. 야구치 시노부의 단편 에피소드를 모은 <원피스 프로젝트> 중에서 <달려라! 에로스>다.

야구치 시노부의 상상력은 귀엽다. 사춘기 소년의 성(性)에 관한 미묘한 태도를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간결하게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야구치 시노부는 하나의 상황을 던지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그는 과감한 생략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의 엔진을 스스로 작동하게끔 만든다. 어떤 상황이지? 뭐가 웃기지? 등.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 매체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표현방식을 떠올리는 건, 그래서 자연스럽다.

기승전결없이, 쉬지않고 웃기는 영화

“난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정말 고독하다! 적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 말이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말이다. 그는 영화 <워터 보이즈>가 개봉하는 것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의기양양해야 할 영화감독의 이야기치곤 우울하다. 과연 어떤 영화이기에 외로움을 탄다고 하소연하는 것일까?

<워터 보이즈>는 어느 한심스런 청춘의 기록이다. 해체될 위기에 몰린 남자 고교 수영부가 있다. 부원은 단 한명뿐이다. 스즈키라는 학생인데 이 학생의 수영 실력은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다. 혼자서 경기를 마친 뒤, 그러니까 경기에서 꼴찌를 한 뒤 한숨을 내쉬는 정도다. 그런데 수영부에 변화가 생긴다. 미모의 여교사가 수영부 코치가 되자 갑자기 부원들이 늘어난다. 알고보니 여교사 전공은 싱크로나이즈 스위밍, 그러니까 수중발레다. 마른 체형의, 다리 곡선도 형편없는 남학생들이 수중발레에 도전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여교사가 출산 휴가를 떠나면서 상황은 더 꼬인다. 스즈키 등의 학생들이 돌고래 조련사를 정신적 스승으로 모시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워터 보이즈>는 웃기는 코미디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일본영화 몇편을 연상케 한다. <으랏차차 스모부>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낡고 오래된 탓에 기이한 운동경기로 보이는 스모세계에 어느 대학생들이 빠져드는 줄거리였다. 청춘+스포츠+코미디라는 복합장르의 양상을 보이는 것은 <워터 보이즈>가 <으랏차차 스모부>의 직계 후손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배꼽을 부여잡도록 하는 캐릭터의 향연,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함축하는 점에선 영화 <쉘 위 댄스>와 닮았다. <워터 보이즈>는 일본 내에서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중고교생 이상 청춘 관객에게 호응을 얻어 흥행에 성공한 케이스다.

♣ 왼쪽부터 <워터 보이즈>(2001), <아드레날린 드라이브>(1999)

“난 이 영화가 모든 장면이 재미있는 작품이 되도록 노력했다. 보통 코미디영화는 웃기는 장면이 나온 뒤 한참 쉬었다가 다시 웃기고 그런 식이지 않은가? <워터 보이즈>는 관객이 쉬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야구치 시노부의 말처럼 <워터 보이즈>는 기승전결 원칙을 깨끗하게 무시한다.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한 호흡으로 달려가는 것 같기도 하다. 캐릭터에 대한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설명없이 <워터 보이즈>는 성큼성큼 이야기의 걸음을 옮긴다. 몇개의 상황만으로 영화의 맥락은 관객에게 전달되고 자잘한 에피소드의 배치는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할 정도다. 망해가는 남자고교 수영부->미모의 여교사 출현->부원 증가->돌고래 조련사의 출현->학생 실력의 놀라운 향상->그리고 학교축제의 성공적인 수중발레 쇼, 라는 영화의 플롯 구조는 어떤 설득력도 없고 인과관계도 대체로 결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한순간도 빠짐없이 웃음 장치를 내재하고 있으며 최근 공개되었던 어느 일본영화보다 대중적 흡입력을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프로필

→ 야구치 시노부 矢口史靖 Shinobu Yaguchi

→ 1967년 5월30일 일본 가나가와현 출생

→ 도쿄조형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하며 8mm 단편작업을 시작함

→ 한편 영화스튜디오에서 프로덕션디자이너의 조수로 일함

→ 1990년 단편 <우녀>(雨女)로 피아필름페스티벌(PFF)

그랑프리 수상

→ 1993년 장편 <맨발의 피크닉>으로 장편 데뷔

→ TV드라마, CF, 만화스토리작가 등 여러 작업 병행

→ 학교 선배인 스즈키 다쿠지 감독과 함께 디지털영화

→ <원피스 프로젝트>(제1회 전주국제영화제 ‘N-비전’ 상영작)제작

작품목록

→ → → 1997년 <비밀의 화원>

→ → → 1999년 <아드레날린 드라이브>

→ → → 2001년 <워터보이즈>

→ → → 2002년 <파르코픽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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