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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영화계의 스타감독에서 데뷔작 준비하는 봉만대 감독 스토리(2)
2002-08-09

˝넌 멜로 하냐? 난 에로 한다˝

강용규, 내겐 형님 같은 스승

제대한 뒤 <휘파람 부는 여자> <용호의 권> 등의 영화에 조감독으로 복귀했고, 이듬해인 95년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언더그라운드>는 제작사의 원안을 각색했고, <킬링게임> <킬러> 등의 시나리오를 썼다. 스스로 재주가 남달랐기보다는 현장이 자신에게 그걸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감독이 “다음 대사 뭐야?”라고 물었을 정도로 촬영현장에서 급하게 시나리오를 써낸 영화도 있다. “지금이야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그땐 예를 들어 살수차 오기만을 기다려선 안 됐다. 시간이 지연되면 중간에 호스를 뚫어서라도 물을 뿌려봐야 했다. 시나리오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서 습작한 셈이다.”

그는 영화촬영이 없는 날이면 광고, 방송쪽 일을 맡아 촬영스탭으로도 활동했다. 혹시 경제적인 이유? 아니다. 조감독 때 곧잘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서곤 했는데, 매번 감독말 듣고 가서 서 있으면 촬영감독이 그 위치가 아니라고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도대체 촬영감독들은 왜 그리 곤조가 센가” 궁금해서 직접 촬영부에 들어가기로 맘먹었다는 그는 몇편의 광고를 찍은 뒤 “촬영감독의 오케이 사인은 현상을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라 매순간 긴장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길지 않은 충무로 생활 동안 그가 잊지 못하는 감독은 무술감독 출신의 강용규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어, “사부의 명망이 그리 높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존경하는 이유가 뭐냐”고 대뜸 무례하게 물었더니 그는 “들어갈 때 타이틀 보고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충무로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게 이야기를 한번 써보라고 기회를 제공해 준 사람은 그분이 유일했다”며 자신에겐 ‘형 같은 존재’라고 답한다. 실제로 같이 작업할 무렵, 다른 곳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수차례 받았지만 모두 거절한 것도 강용규 감독 때문이다.

IMF 한파로 인한 제작편수 감소를 몰고 왔고, 그는 결국 백수 신세가 된다. 그 무렵, <휘파람 부는 여자>의 제작부장을 했던 형이 연결해준 제작사에서 에로비디오 연출 제의를 받는다. 이른바 한·일 합작 프로젝트. 편당 개런티가 100만원 수준이라는 것도 구미를 당겼지만, 무엇보다 카메라를 들 수 있다는 기쁨에 냉큼 받아들였다. 일본까지 가서 찍은 <도쿄 섹스피아>는 열성적인 일본 배우들을 보면서 놀라기도 했지만, 핸드헬드로 공들여 찍었던 5분 이상의 후반부 드라마 장면이 제작자에 의해 무참히 잘리는 치욕을 당하기도 한 작품이다.

에로비디오가 어때서?

그렇다고 에로비디오는 좀 너무한 것 아닌가. 하긴, 그는 어렸을 때부터 성에 관한 관심이 남다르긴 했다. 그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영화들은 <무릎과 무릎사이> <> <나인하프위크>였고, 일찍이 <소녀경> 같은 고전과 <부부클리닉> 같은 실용서적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건강 다이제스트>를 두루 섭렵하고 꾸준히 독파해온 탓에 ‘에로’에 대한 특별한 거부감이 없었다. “충무로에서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너 멜로 할래, 나 에로 할게’ 뭐 그런 주의였다. 에로가 저열하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가져본 적이 없다.”

봉만대, 라는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두 번째 작품 <이천년>의 원제는 <핑크 펑크>.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쓰는 데만 6개월이나 공을 들였으나, 정작 자신의 스타일을 받아준 제작사가 없었던 터라 결국 섹스장면을 늘려 AV로 제작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드라마를 전면에 내세웠다. 2000년이 시작된 순간 감방 신세를 지게 된 세 젊은 남녀의 행적을 플래시백으로 뒤집는 <이천년>은 매순간 빠른 호흡의 영상으로 끌고 들어가는 점도 돋보였지만, 무엇보다 돈에 젊음을 저당잡힌 이들의 엇갈린 욕망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거친 이야기 구조지만 보기 드문 시도였다.

“노출이오? 그거 중요하죠. 근데 그건 누구나 다 찍을 수 있어요. 눈 맞아서 옷 벗기고 관계 갖는 것만 계속 찍는다면 무슨 소용이냐구요” 그는 매번 AV업계의 불문율을 어긴다. 가장 먼저 온갖 체위를 전시하며 벌어지는 성교장면. 다른 감독들에 비하면 턱없이 짧고 부족하다. 대신 앞뒤 시간을 잡아먹는 설정들은 무지 많다. 또 배우들은 진지(?)하지도 않다. 그들은 몰입해야 할 심각한 상황에서 장난을 치고 시덥잖은 대사를 쳐댄다. 그는 제작사는 안중에도 없는지 일부러 ‘컷’이라고 외쳐놓고서 릴렉스된 상태에서 배우들의 실제 대사들을 따서 편집 때 쓰기 위해 애쓴다. 그러니 신음소리는 그만큼 줄어든다. 이런 경향은 그의 열다섯편 AV 작품 중 뒤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지난해 출시된 <모모>의 한 장면. 카메라는 관계를 맺는 두 남녀를 잡지만, 전혀 미동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한참 흥분이 고조되려는 순간, 카메라는 갑작스럽게 90도로 우회전 해서 이동한 뒤 한발 물러선다. 그와 동시에 황급히 옷을 입고 도망치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에로비디오의 섹스장면에선 오직 숨소리와 살이 부대끼는 효과음에 힘입은 육체의 현란한 움직임만이 허용되어야 한다. 특히나 처음 보는 이를 사로잡기 위해선 필수다. 그러나 <모모>는 주인공이 일본으로 잠입해서 마약밀매를 하느라 언제나 쫓겨다니는 캐릭터라는 사실을 이 한 장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섹스가 드라마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가 섹스를 몰아내는 건 다른 AV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파격, 또 파격

일반적으로 AV 현장에서 하루에 찍는 평균 촬영분량은 10신이 넘는다. 봉 감독은 <아파바> 촬영시 제작자를 앞에 두고 겨우 2장면만을 찍은 적이 있다.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섹스장면도 아니고, 단지 여주인공이 상대를 기다리는 장면의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배우를 다루는 테크닉도 그는 다양하다. 그는 배우에게 시범을 보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비디오>를 찍을 때의 일화 한 가지. 촬영이 이뤄졌던 때는 겨울이었는데 도저히 좁은 방 안에서는 앵글이 안 나왔다. 할 수 없이 창문 뜯고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배우들이 추위 때문에 오들오들 떨었다. 그는 스탭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도 팬티만 남겨놓고 다 벗었다. “촬영하다보면 팀워크라는 게 중요하다. 그건 오랫동안 같이 작업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김태원, 박진순씨 등 지난 3년 동안 그와 같이 작업해온 스탭들이 그를 떠나지 않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딴따라>에 가면,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그가 2000년에 찍은 작품은 <연어> 일심> <이노미> <스파링파트너> <귀공녀> <아파바> 등 총 6편. 2001년엔 4편이다. 편수만 보더라도 사실 AV업계에서 봉만대 감독은 ‘잘 나가는’ 감독이라고 할 순 없다. 한달에 2편씩 찍어내는 감독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생제작사에서 그의 유명세를 빌리기 위해 기회를 주긴 하지만, 정작 유통업계에선 “과감한 노출과 다양한 체위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그에 대한 평판이 좋을 리 없다. “공중 부양 섹스? 그거 좋다. 근데 그건 액션영화에서나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서가 전달되지 않는 섹스장면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섹스는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정서의 공유다.”

그의 삐딱한 기질은 때론 소비자를, 때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위원을 향하기도 했다. <연어>의 미용실 섹스장면을 보자. 이 장면의 초반은 마치 비디오를 빠르게 돌려보는 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서치를 사용해서 에로비디오를 관람하던 이들에게 이 장면은 당혹감을 던져준다. “자, 앞으론 돌려보지 마십시오. AV라고 이야기가 없겠습니까?”라고 묻는 듯하다. 애초 그의 의도는 심의위원들의 가위 눈을 피하기 위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 그는 촬영 당시 다양한 각도에서 찍다보니 미처 음모가 노출됐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심의가 무서워서 다시 찍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발견하지 못하도록 아예 빠른 속도로 편집했다는 것이다. 올해 출시된 <터치>도 마찬가지. 정사장면에서 <터치>는 화면이 4분할된다. 4개의 카메라로 서로 다른 위치에서 찍은 이 장면에 대해 그는 “감독의 편집본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이젠 관객에게도 골라볼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

봉만대의 충무로 데뷔작 <사랑>

첫 섹스가 90%를 결정한다

봉만대 감독은 <사랑> 촬영이 한달 남짓 남은 지금까지도 시나리오를 초고 그대로 놓아둔 부분이 있다. ‘사랑’을 엮어가는 두 남녀, 신아와 동기가 중국집에서 격렬한 애무를 나눈 뒤 호텔에 가기까지의 첫 만남을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지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신아와 동기가 첫 섹스하는 장면은 영화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부분이에요. 거기서 ‘아, 이거다’ 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이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는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려는 것일까. “이 장면만 공간이 서울인데, 영화 다 찍고 나서 제일 마지막에 촬영하려구요. 그때까지 열심히 생각하면 갑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을 거예요.” 성(性)을 키워드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는 신조를 가진 AV 감독답게, 그는 “한번에 확 깨는 것처럼 다가오는” 섹스를 꿈꾸고 있다.

봉만대의 첫 35mm 장편영화 <사랑>은 우연히 서울에서 만난 신아와 동기가 자신들의 터전인 대전에서 함께 살고 섹스하고 헤어지는, 매우 일상적인 연애담이다.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교외를 달리거나 아기자기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대신 서로의 몸을 탐구하는 데 열심이다. 여자는 남자의 몸을 알면서 친밀함을 느끼지만, 남자는 여자의 몸을 갖게 되면서 점점 지루해지기만 하는 이율배반. 봉만대는 이 상반된 감정을 한 화면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정서가 넘치도록 담는 방법을 열심히 생각중이다. 그가 예로 든 한 장면은 동기의 방 안에서 치르는 섹스. “TV의 파르스름한 불빛을 비추고 방 안은 따뜻한 노란색 톤으로 처리하는 거예요. 달빛도 푸른색이지. 느낌이 다른 두 가지 조명이 깔리는 가운데 두 남녀가 알몸으로 엉키는데, 거긴 또 국소조명이야. 스탠드 불빛을 이용해서 가슴으로 갔다가 다리로 갔다가. 그렇게 일이 다 끝나고 나면 형광등을 켜서 적나라한 알몸을 보여줘요. 어떻게 보면 섹스가 끝난 다음이 더 야할 수도 있다니까.”

봉만대는 평범한 시나리오와 달리 문단 사이사이에 마음에 맞는 다른 영화의 캡처 화면을 삽입했다.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적나라한 정사와 냉장고 앞에 알몸으로 누운 누추한 일상이 모두 전시된 사진들이다. 그는 그 느낌을 따라 섹스를 진행할 생각이다. 낯선 사람과의 설레는 정사, 질퍽하면서도 지겨운 정사, 관계의 회복을 위한 절박한 정사. 하늘을 떠올려도 ‘우리 신아’의 알몸이 겹친다는 봉만대는 “에로가 너무 좋아서” 찍는 열여섯 번째 에로영화를 그렇게 고민하고 있다.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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