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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선미로 흥한 자 비키니로 망하리니,<데드 오어 얼라이브>
2002-08-14

컴퓨터 게임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살벌한 제목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대전 액션 게임이다.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집단이 무술 대회를 개최한다. 이들의 계획을 물리치기 위해 각지에서 무도가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묘하게 한 두명 빼고는 전부 여자, 그것도 젊고 예쁘고 육감적인 몸매의 여자들뿐이다.

이 게임은 일명 ‘버스트 모핑’ 게임으로 불린다. 1편이 나온 90년대 후반에는 아직 3D 그래픽 초기 단계였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많지 않은 갯수의 폴리곤 중 상당 부분을 여성 캐릭터의 가슴에 투자했다. 주먹을 내뻗고 발차기를 날리고 공중으로 뛰어 오르고 바닥을 구를 때는 물론, 가만히 있을 때도 가슴이 격렬하게 흔들린다. 덕분에 나오자마자 큰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버스트 모핑’ 때문에 손해본 점도 있다. 여자들은 물론 몇몇 남성 플레이어들까지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눈요깃거리만 내세운 형편없는 게임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데드 오어 얼라이브>는 뛰어난 게임성을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다양한 기술은 크게 공격, 방어, 잡기로 요약된다. 한 동작 동작에서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진다.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이야 아래위로 흔들리는 가슴에 시선을 홀리지만 정작 플레이하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3D 대전 액션 게임의 양대 산맥인 <철권>이나 <버추얼 파이터>보다는 떨어지는 감이 있지만, 게임 외적 요소로만 승부하는 허접한 게임은 분명 아니다.

아케이드로 1편이 나올 때만 해도 ‘버스트 모핑’은 전통있는 게임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흥행 이벤트로 넘어가줄 만했다. 하지만 아케이드판이 비디오 게임기로 컨버팅되면서 정도가 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 나온 새턴판은 게임기를 만든 세가보다도 더 뛰어난 3D 그래픽을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작품성을 확인받았지만, 다음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판은 업그레이드된 건 여성 캐릭터의 선정적 의상뿐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전도본말, 흥행 이벤트가 게임성을 말아먹기 시작한 것이다. <데드 오어 얼라이브> 시리즈는 드림캐스트로, 또 플레이스테이션2로 제목만 바꿔서 여기저기서 나오다가 결국은 엑스 박스로의 전격 이전을 선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전폭적 지원하에 만들어진 <데드 오어 얼라이브3>은 화려한 그래픽을 내세워 변변한 경쟁작의 부재 속에서 엑스박스의 간판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이 게임 때문에 엑스 박스를 구입하겠다는 게이머들이 적지 않은 걸 보면, 테크모는 게이머의 요구를 이해하는 시장 지향적 마인드를 갖춘 선진 기업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게 <DOA 익스트림 비치 발리볼>이다. 섹시한 여성 캐릭터들이 비치발리볼을 벌인다. 캐릭터들의 비키니 차림을 어떤 각도에서라도 감상할 수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제작사 ‘테크모’는 원래 다소 매니아적 게임을 내던 회사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자세를 고수하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복잡한 통행로를 가로막고 예수천당불신지옥을 외치는 것은 순교자적 자기 만족일 뿐이지 단 한명이라도 구원받을 자를 늘릴 수는 없다. 정성껏 만든 게임의 겉모습을 약간 포장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하려는 건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남은 것은 긍정적 게임성이 이미 사라져버린 <데드 오어 얼라이브>다. ‘전략적 후퇴’가 무서운 건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후에야 껍질만 남은 스스로를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