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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가 지상에서 보낸 서른여섯해 (2)
2002-08-16

핑크빛 플레이걸, 포에버

9개월 만에 막내린 결혼생활, 무너진 먼로먼로가 남긴 짧은 말들은 대부분 슬픔에 차 있다. 먼로는 “만일 내가 만인의 스타라면 그건 재능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다. 나는 어느 곳에도 어느 누구에게도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외로움에 시달렸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전설적인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는 그런 먼로를 찾아온 기적 같은 연인이었다.디마지오는 54년 1월 흰 면사포 아래 동그랗게 뜬 눈동자로 웃고 있던 먼로와 결혼했지만 같은해 10월 공식적으로 이혼을 청구했다. 두 사람이 왜 그토록 빨리 헤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디마지오가 원피스 자락이 올라가며 먼로의 허벅지가 드러나는 때문에 분노했다는 소문이 있었고, 많은 언론이 디마지오가 먼로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끈질기게 나돌던 먼로의 불감증 소문도 불거져나왔다.

결혼 아홉달 만에 디마지오와 헤어진 먼로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갔다. <돌아오지 않는 강>을 본 <뉴욕타임스> 평론가 보슬리 크라우더는 “이 영화의 풍경은 스펙터클하다. 그러나 미스 먼로 역시 그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 못지않게 스펙터클하다”라고 썼다. 문제는 먼로가 스스로의 ‘스펙터클’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었다. 먼로는 샤넬 No.5 향수만 뿌린 채 알몸으로 잠든다고 말해 사람들을 자극하는 동시에 여성을 착취하는 할리우드에 대한 지독한 혐오를 드러냈다. 그녀는 할리우드를 “키스를 위해서라면 1천달러라도 지불하지만 영혼에 대해선 50센트가 고작인 곳”이라고 경멸했다. 그러나 그녀에겐 그 50센트라도 제안하는 사람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지쳐서, 먼로는 수면제와 알코올에 젖어들었다. 대사가 조금만 복잡해도 스무번 이상 NG를 내기로 유명했던 먼로의 악습은 교육부족과 약물중독 때문이었다. 타고난, 그러나 탈출하지 못한 코미디 배우그럼에도 먼로가 끊임없이 탈출구를 찾았다는 사실은 가십에 가려진 그녀의 강인한 면모를 드러낸다. 먼로는 유명한 연기지도자 리 스트라스버그를 찾아 뉴욕으로 ‘탈출’했고, 메이크업 박스는 한개도 없었지만 책은 수백권을 사들였다. 미국과 대륙 양쪽에서 정신분석을 받으며 치유를 모색하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을 설립해 로렌스 올리비에를 고용한 사실은 그녀가 개인적인 영역을 넘어 고민했으리라는 단서를 던져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녀의 몸부림은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다. 스트라스버그의 첫 번째 아내 폴라 때문에 생긴 신경쇠약,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의 실패, 치료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며 수면제만 처방했던 의사들. 먼로는 나이 많고 지적인 작가 아서 밀러와의 결혼을 통해 주부로 안주하려 했지만- 심지어 부엌에 손으로 만든 국수를 널어놓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리기까지 하면서- 밀러가 대본을 쓴 영화 <미스핏> 현장에서의 마찰과 유산의 상처를 거치며 4년 만에 파탄에 이르렀다. 먼로에게 그 결혼은 단순한 사랑의 결과가 아니었다. 먼로는 “내가 그저 멍청한 금발여자였다면 밀러가 나와 결혼했을까?”라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증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밀러는 고작 결혼 3주 만에 “지옥에서 온 편지” 같은 잔인한 내용의 일기장을 아내가 보는 앞에 뻔히 펼쳐놓았다. 밀러는 먼로가 자신을 그늘에서 구원해주기를 바랐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던 것이다. 초반부터 별거와 불화로 순탄치 않았던 결혼생활은 먼로를 금기의 선을 넘도록, 다시 말해 수면제와 알코올을 섞어 상습 복용하는 지경에까지 가도록 빠르게 몰아쳤다. 59년작 <뜨거운 것이 좋아>를 찍을 때 새어나왔던 악의에 찬 소문은 당시 먼로의 상태가 어땠는지 짐작하게 해준다. 이 영화의 작가 I. A. L. 다이아몬드는 먼로가 “버본이 어디 있죠?”라는 대사를 47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털어놓았다. 누구도 그런 그녀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이다. 1962년 8월5일 먼로는 전화기를 손에 꼭 쥔 채 침실에서 죽어 있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옆에는 텅 빈 수면제 병이 뒹굴고 있었다. 그녀와 동시에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케네디 대통령 형제부터 마피아 관련설까지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수사는 그녀의 죽음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종결됐다.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했던 먼로. 그녀와 관련있는 많은 사람이 바로 그날 먼로와 대화를 나눴다고 주장했다. 먼로가 누구에게 전화를 걸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죽는 순간 그녀가 혼자였다는 사실뿐이다. 막 새로운 계약을 맺고서 다시 한번 삶을 시작하려 했지만, 먼로는 마지막 영화 속에 대사로 남긴 질문의 답을 얻지 못한 것일까. “어둠 속에선 어떻게 돌아갈 길을 찾아야 하죠?”글 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제공 SYGMA

◆ 먼로의 걸작들 ◆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Gentlemen Prefer Blondes┃1953년┃감독 하워드 혹스

로렐라이(마릴린 먼로)는 파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백치미 넘치는 쇼걸. 그녀는 부유한 애인 덕분에 파리행 크루즈를 타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좀더 부유한 남자를 찾아 배를 헤집고 다닌다. 결국 애인에게 들키고 만 로렐라이는 야무진 친구 도로시(제인 러셀)와 함께 파리 클럽에서 쇼를 하며 민생고를 해결하는 처지가 된다. <물랑루즈>에도 인용된 노래 <Diamonds Are A Girl’s Best Friend>로 유명한 이 영화는 소설을 각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다시 한번 리메이크한 작품. 60년대 섹스심벌이었던 라켈 웰치는 이런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면 자신도 좀 다른 배우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How to Marry a Millionaire┃1953년┃감독 진 니걸레스코

가난한 남자에게 진력이 난 샤츠(로렌 바콜)는 동료 모델 폴라(마릴린 먼로), 로코(베티 그레이블)와 함께 상류층 아가씨 행세를 하며 백만장자 사냥에 나선다. 잠시 빌린 아파트의 가구를 팔아치워가며 간신히 버티던 세 여자가 빈털터리가 됐을 때쯤, 석유재벌과 가난한 척하는 백만장자, 아파트의 원래 집주인 등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에서 먼로는 다른 두 배우보다 훨씬 짧게 등장하지만, 자주 이곳저곳 부딪치는 연기와 순진한 탄성으로 가장 많은 웃음을 주는 인물이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 누널리 존슨은 긴 다리를 뻗고 의자에 기댄 먼로를 가리켜 “나이아가라 폭포나 그랜드캐니언처럼 하나의 자연현상이라 할 만하다”고 감탄했다. 국내에서도 출시된 DVD에선 당시 시사회를 찾은 세실 B. 드밀 등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The Seven Year Itch┃1955년┃감독 빌리 와일더

조 디마지오에게 이혼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의심을 받은 영화. 지하철 통풍구 바람에 즐거워하며 하얀 원피스 자락을 날리는 먼로의 모습은 핀업 사진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결혼한 지 7년 되는 샐러리맨 리처드는 아내와 아이가 호숫가로 피서를 떠나자 혼자만의 자유를 만끽한다. 때마침 같은 아파트에 아름다운 금발의 여자(마릴린 먼로)가 이사오고, 리처드는 그녀를 두고 온갖 상상에 빠진다. 빌리 와일더가 연출한 은 발랄하고 천진한 현실 속의 먼로와 리처드의 상상 속에서 농염하게 돌변하는 먼로를 대비시켜 먼로를 둘러싼 환상을 폭로했다. 흰 원피스와 함께 가장 유명한 영화의상 중 하나일 붉은 가운은 20세기폭스에서 먼로에게 빌려준 것이었다.<버스 정류장>

Bus Stop┃1956년┃감독 조슈아 로건

태어나서 한번도 농장을 떠나본 적 없는 청년 보는 로데오 경기가 열리는 도시에 처음 와 클럽 가수 셰리(마릴린 먼로)를 만난다. 보는 창백한 피부를 가진 셰리가 천사 같다 여기면서 막무가내로 결혼하자고 우긴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보에게 납치되다시피 끌려간 셰리. 그녀는 계속 달아나려 하지만 눈 때문에 하룻밤 머문 휴게소 식당에서 보의 진실한 면을 발견한다. 먼로는 <피크닉>의 조슈아 로건이 감독한 이 영화로 코미디나 뮤지컬뿐 아니라 드라마 연기에도 재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낡은 무대의상을 입은 셰리가 거울을 보며 “고향을 떠날 땐 이런 걸 하려고 한 게 아니었어. 뭔가 하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초반부 한 장면은 먼로의 마음속 고백을 듣는 것 같아 애틋하기도 하다.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1959년┃감독 빌리 와일더

갱들이 판을 치는 금주령 시대 시카고. 색소폰 연주자 조(토니 커티스)와 바이올리니스트 제리(잭 레먼)는 우연히 창고에서 일어난 갱들의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급히 달아난다. 두 사람은 여장을 하고 순회 공연중인 여성 재즈 밴드 일행에 합류해 도피 행각을 시작한다. 조는 여가수 슈가(마릴린 먼로)에게 빠져 때로 남자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제리는 엉뚱하게도 남자의 사랑을 받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 결혼식장에서 남자와 결혼하게 된 한 남자가 내뱉는 대사가 걸작인 영화. 마릴린 먼로에게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안겨줬다. 먼로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허벅지를 감추기 위해 개발했다는 ‘먼로 워크’가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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