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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탕> <친구> <와니와 준하>의 황기석
2002-08-16

내일도 `좋은 사고` 한건 쳐야지

나?까탈스런 애첩

이런 말이 있다. “감독이 남편이라면 촬영감독은 아내다.” 그러나 황기석 촬영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감독이 남편이라면 촬영감독은 굉장히 까탈스러운 애첩이다.” 한 이불을 덮고 있지만 완전히 귀속되지 않은, 작은 사랑채라 할지라도 분명 그만의 영역을 가진 존재. 부인이라면 당연히 감수하고 인내하고 희생해야 할 것들에 끊임없이 발언하고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서른셋치고는 말 안 듣는 일곱살배기처럼 귀여운 인상의 황기석 감독이지만 한번이라도 그와 작업했던 사람들에게선 “직설적이고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똑같은 답변이 마치 사전에 짠 것처럼 튀어나온다. 그는 시나리오를 고르는 순간부터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이나 아이디어까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물론 설명을 통해 대략적인 느낌이 오는 경우에도 감독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찍을 건지 계속해서 물어보고 귀찮게 한다. 그의 머릿속에 막연하게 떠돌던 이미지들과 내가 담아내는 그림의 간극을 좁히고 오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핵심을 집어나가는 끊임없는 대화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왜 많은 감독들이 이 까다로운 촬영감독을 자신의 사랑채로 옮기려고 몸이 달아 있는 것일까? 그것은 까다로움 이면에 존재하는 합리적인 유연함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대한 신뢰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지는 않는다. 또한 감독이 구체적으로 사이즈에 대해 언급을 하면 들어준다. 그러나 1㎝ 옆으로 가잔 말이나 조금 줌인하잔 말은 안 움직여도 된다는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그런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이렇듯 애간장 녹이다가도 누구보다 유연하게 받아치는 ‘애첩기질’ 다분한 그와 ‘기둥서방’처럼 오랜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곽경택 감독은 “황기석 감독은 좋은 촬영감독이기 이전에 좋은 영화인”이라고 말한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적을 마음속에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다. 처음에는 그가 하는 말에 상처받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영화가 제대로 되려면 그래 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그것이 누가 봐도 까탈스럽지만 한번 일해보면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이 애첩의 매력이라고.입문?촬영감독 이전에 영화인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황기석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공대에 갈까도 했지만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원작과 영화비교’라는 수업을 듣게 되면서 막연히 영화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NYU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감독도 해보았지만 배우들 구슬르고 이런저런 잡다한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그 일은 왠지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 조명을 옮기고 카메라를 만지는 작업은 역동적이었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그렇게 대학교 2학년인 21살부터 그는 뉴욕에서 개퍼(Gaffer- DP시스템에서 조명을 담당하는 사람)일을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CF일을 하며 부족함 없이 살아가던 뉴요커를 한국 땅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바로 곽경택 감독이다. 94년 미국 유학중이었던 곽경택 감독은 아르바이트로 뉴욕 한인방송의 TV광고물을 찍게 되었고 ‘순수원액 100%! 전통의 특등참기름’ CF를 통해 두 사람은 감독과 촬영감독으로서 첫 인연을 맺었다. “나이는 어려도 2년이나 선배였던 황 감독이 콘티 짜는 요령부터 가르쳤다. 시나리오에 색연필로 풀숏은 초록색, 미디움숏은 파란색, 클로즈업은 빨간색… 뭐 이런 식으로.” 그렇게 졸업작품으로 찍은 단편 <영창이야기>부터 <억수탕> <친구>에 이르기까지 함께 작업을 해나간 두 사람은 단순히 숏을 나누는 시작단계뿐 아니라 “오늘 촬영장에 나가서 할 일의 방식까지 일치하는” 둘도 없는 짝패가 되었다. 물론 황 감독이 곽 감독의 <챔피언>을 선택하지 않고 김용균 감독의 <와니와 준하>를 선택했을 때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것은 “장르를 가리진 않지만 사람보다는 시나리오를 먼저 보고 결정한다”는 황 감독 나름의 원칙이 적용된 선택이었다. <와니와 준하>는 몇 가지만 해결하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시나리오였고 ‘빛을 다룰 때 빛이 닿는 곳보다는 그림자가 닿는 곳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던 대학 시절 교수의 말을 떠올리게 만드는 여지가 많은 시나리오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곽 감독 역시 “우리는 한 작품 안 했다고 변하는 사이 아니다”라며 그의 ‘외도’를 기쁘게 받아들였다.스타일? 조화에 대한 고민“어쩌다보니 기술적인 선구자같이 되어버렸다.” <친구>가 남긴 것은 단순히 800만명이라는 흥행성적과 한 뚝심있는 감독의 재기, 단단한 배우들의 발견만은 아니었다. <친구>는 “기억의 뇌세포에서 꺼낸 것처럼 바랜 색감”이라고 표현했던 ‘실버 리텐션’ 기법의 과감한 사용과 ‘현장편집기’의 도입으로 충무로에 기술적인 잔물결을 일으켰다. 보통 회상장면에만 부분적으로 쓰이던 ‘실버 리텐션’(Silver Retention)은 영어풀이 그대로 ‘은을 남기는’ 현상법이다. 즉 필름현상과정에서 색소에 붙어 있는 은 입자를 씻어내지 않고 남기면 명암의 차가 커져 밝은 부분은 더 밝아지고 어두운 부분은 더 어두워지면서 콘트라스트 강한 영상이 만들어지는 것. 그는 이런 현상법이 향수를 자극하는 <친구>라는 영화의 전체 분위기를 담기에 알맞은 그릇이라고 생각했고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에 직접 변형을 가한다는 위험부담을 안고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또한 지금은 많은 영화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현장편집 시스템을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바로 봄으로서 쓸데없는 누수를 줄일 수 있다”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따로 책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상황이었다. 결국 황 감독은 자신의 개런티를 현장편집을 맡은 박광일 기사에게 나누어주고 500만원을 들여 안에서 쓰던 편집기를 분해해서 재조립했다.

1970년 서울생1984년 미국으로 이민1993년 NYU 영화제작과 졸업 1997년 <Land of blind>(감독 윤용아)1997년 <억수탕>(감독 곽경택)2001년 <친구>(감독 곽경택)2001년 <와니와 준하>(감독 김용균)단편<영창이야기>(감독 곽경택)<>(감독 조은령)<멀리 보지 못하는 사람>(감독 강수철)<소나기>(감독 김창래)<낚시가다>(고영범)“어느 하나 공들이지 않은 숏이 없었다”고 말하는 <와니와 준하>는 <친구>처럼 눈에 보이는 기술의 도입 없이도 ‘좋은 밸런스’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인물을 예쁘게 찍기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를 염두에 두었”던 촬영과 함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때로는 엇갈리고, 때로는 대비되는 시나리오의 흐름을 빛의 배치로 자연스럽게 영상화한 <와니와 준하>는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최근 한국영화 중 최고의 촬영”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는 “모든 스탭들이 ‘같은’ 영화를 찍고 있으면 ‘좋은 설정’이 나오고 좋은 설정 아래 영화를 찍다보면 ‘좋은 사고’들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친구>의 준석네 뜰의 나무가 보여주는 조명의 톤은 드라마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이것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지적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는 ‘좋은 사고’였던 것이다.“물론 일을 오래 하다보면 테크니컬한 능력은 좋아질 거라 믿는다. 그러나 촬영이 기술적으로 한 발짝 진보했다고 해서 그 작업이 훨씬 발전된 작업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번 작품은 앞으로 2보, 다음 작품은 오히려 뒤로 한보 물러날 수도 있다. 나는 작가주의를 믿지 않는다. 작가는 책을 써야지. 영화는 누군가의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니라 팀워크가 만들어내는 융화와 시너지의 소산물이기 때문이다.” 충무로? 고집의 누명 벗기얼마 전 그는 한 영화사로 부터 해고통지를 받았다. <와니와 준하> 이후 고심 끝에 선택한 작품이었지만 여전히 작품당 계약이 관례화되어 있는 충무로에서 시간당으로 계약하겠다는 그의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충무로에서 어느덧 5년차 감독이지만 <억수탕>부터 <친구> <와니와 준하>까지 딱 3편에 머무른 그의 필모그래피 또한 이런 그의 작업조건에 대한 충돌이 빚어낸 결과다. “내가 요구하는 개런티가 과다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대가가 내 능력에 과다하다는 건지, 그 작품에서 촬영감독에게 돌아가는 몫이 과다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 촬영기간이 오버되는 경우가 다반사고 재계약이란 걸 하지만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돈을 많이 달라는 말이 아니다. 내가 일한 만큼을 정당하게 받고자 하는 것뿐이다.” 사실 뉴욕 현지에서 개퍼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그가 한국에서의 작업을 고집하는 데는 돈을 넘어선 한국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충무로에 맞지 않는 미국 스타일을 고집한다’는 억울한 누명이 벗겨질 때까지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원하는 상황이 되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여유롭게 말한다.목표? 유연한 도전과 시도“나는 스타일적으로 보면 <더 게임>을 찍은 해리스 새비디스에 가깝지만 촬영감독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해주는 촬영감독은 역시 <포레스트 검프> <스파이더 맨> 등을 찍은 돈 버거스”라는 그는 “흥행작과 비흥행작을 오가는 유연성과 테크니컬한 시도야말로 내가 꿈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뉴욕에서 개퍼로 참여하는 “99%는 영화와 관련없는” 뮤직비디오, CF 등의 작업 역시 그에겐 단순한 쉼표를 떠나 크고 작은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실험장이 되는 것이다. 최근 일본 <니혼TV>에서 제작하는 권투영화 <라운드 원>에 참여하게 된 것도 내용이나 작품성보다는 신경만 조명감독팀과 함께 “일본에서의 작업은 어떤지 경험해보자”는 차원에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일본에서의 색보정 작업을 끝내면 그는 (당분간은 한국에서는 실업자 신세이기 때문에) 뉴욕 보험회사 한쪽 귀퉁이에 위치한, 오랜 일터 코넷프로덕션으로 날아갈 예정이다. 잠시 안녕을 고했던 미국의 도구가방들을 손질하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할 황기석 감독. “3일만 일을 안 해도 몸이 쑤신다”는 이 코스모폴리탄 워커홀릭의 여름휴가는 원래부터 계획된 적이 없다. “다시 한번 생각하고 또 한번 고심하는 태도를 잃어가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자신을 도태의 늪에서 건져 멀리서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의미없이 번복되는 몸동작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내일 촬영이 있으면 밤새 도구가방을 정리하고 내일은 잘해야지 다짐하다 뜬눈으로 밤을 새고, 영화의 모든 것이 설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 기분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직 그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기분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내일 세트장에서 다시 모입니다.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와니와 준하>의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출처 www.filmmakers.co.kr)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이전 페이지기사처음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