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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리포트] 경계선의 여자들 - <러블리 앤 어메이징> <굿 걸>
2002-08-19

째깍째깍 움직이는 시계바늘 따라 주름살이 하나씩 늘어나고, 아직도 마음은 철부지인데 불쑥 다가온 마흔이라는 숫자에 짓눌리고, 그러나 하나도 되는 일은 없고, 일상의 탈출을 꿈꾸지만 뒷감당할 자신은 없고….무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30대 여자들이 느끼는 감정이란 이런 게 아닐까.5월부터 계속된 블록버스터의 긴 장마 속에서 30대 여성에 관한 두 편의 영화가 평단의 호평에 힘입어 잔잔하게 관객의 인기를 얻고 있다. <워킹 앤 토킹>의 여성감독 니콜 홀로프시너의 두 번째 작품 <러블리 앤 어메이징>과 TV시트콤 <프렌즈>의 스타 제니퍼 애니스톤을 앞세운 <굿 걸>이다.<러블리 앤 어메이징>은 <존 말코비치 되기>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독립영화계의 스타 캐서린 키너가 서른여섯살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LA에 사는 이 여자는 한때 미인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볼품없는 몸매와 공예가로서의 잃어버린 꿈을 안고 구직의 부담감에 눌려 살아간다. 엄마(브렌다 블리신)는 흑인 어린이를 입양해서 키울 정도로 뚜렷한 자아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일류 브랜드 침구세트에 집착하고, 60대에 들어 지방제거수술을 받는다.수공예품을 만들어 인테리어 가게를 돌며 팔아보려는 캐서린 키너는 번번이 퇴짜를 맞고 돌아서서 상소리 한번 내지르는 답답한 나날 끝에 미봉책으로 취직한 즉석 사진점에서 스무살짜리 주인과 사랑에 빠지는 등 좌충우돌한다. TV시리즈 <섹스 앤 시티>의 연출을 수차례 맡았던 감독답게 솜씨좋은 대사들로 30대의 쓸쓸함을 한 장면 속에 압축해서 보여준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캐서린 키너가 가게에서 퇴짜를 맞고 있는 순간 우연히 만난 중학교 동창은 소아과 의사가 됐다. 의미없는 이야기 끝에 나눈 대화. 친구: “우리 이제 서른여섯이잖아.” 캐서린: “그렇지만 우린 서른여섯 같은 서른여섯이 아니잖아.”(We are not 36 36)

제니퍼 애니스톤의 <굿 걸>은 역시 전작 <처크 앤 버크>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가 마이크 화이트와 메길 알테타 감독의 신작이다. 무대는 동텍사스 작은 마을로 대도시를 배경으로 했던 <러블리…>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평범하지만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여자주인공의 절망과 갑자기 격정적인 삶 속으로 들어간 뒤의 변화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제니퍼 애니스톤은 대학 시절 연인과 결혼했고 오랫동안 동네 백화점 카운터에서 일하는 ‘착한 여자’의 전형이다. 집에서 일하는 남편 역시 푸근하고 착한 남자. 그러나 제니퍼의 첫 대사처럼 “소녀 적엔 큰 사탕가게 같”던 세상이 “어느 날 돌아보니 감옥이 돼 있다”. 직장에선 신경질적인 상사에게 시달리고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친구와 대마초를 피워대며 TV 만화나 보고 있다. 이런 그에게 20대의 새 동료가 나타난다.‘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이 자기 별명이라며 작가임을 자처하는 그와 사랑에 빠지는 제니퍼는 그러나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의 집착적인 사랑에 괴로워하며 갑자기 다른 세상 속으로 빠지게 된다. 텍사스판 <보봐리 부인>이라 할 만한 이 영화는 ‘착한 여자’의 환상과 격정적인 현실 앞에서 갈등하는 30대 이야기를 위트와 진중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제니퍼 애니스톤으로부터 진지한 연기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평론가들로부터 ‘올해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칭찬을 듣고 있는 두 영화는 서른이 넘어서도 해결되지 않는 영원한 인생의 불안감에 대해 되돌아보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LA=이윤정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