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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자연 다큐,`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
2002-09-04

진실은 대본 너머에

< !느낌표> MBC 토 밤 9시45분

8월24일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가 비춘 화면은 쓸쓸했다. 수소문 끝에 찾아간 일본 교토의 동물원에 있는 한국 늑대의 나이는 13살. 수명이 자연에서 8살, 동물원에서 13살이라는데, 생명이 꺼져가는 이 한국 늑대에게는 자손이 없다. 힘없는 한국 늑대를 바라보는 이경규의 목소리는 울먹거렸고 박병권 박사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눈물에, 묻는다.

자연다큐와 버라이어티 쇼 사이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은 도 닦는 사람이 등산하는 것과 비슷하다. “산이 거기 있었다.” 하염없는 체념을 지나 체념을 잃는 무념무상까지, 다큐멘터리의 현장에 선 그들은 시간의 똑딱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래 우리가 기다리는 것이 저기 있을 것이다”란 믿음이 똑딱 소리를 듣는 이들의 마음을 심장의 박동 수에 맞게 조율한다. 그러나 TV는 이제 그런 인내심을 잃었다. 방송사가 특집극 형태로나마 만들던 자연 다큐멘터리마저 드물어져, 자연 다큐멘터리에 대한 갈증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재방송, 재재방송분으로 대체되었다. 일견 <TV 동물농장>(SBS), <주주클럽>(KBS2), <와우 동물천하>(MBC) 등의 오락 프로그램이 생겨나 동물의 출연 빈도가 늘어난 듯 보이지만, 이 또한 대등한 자연에의 ‘접근’이 아니라 신기한 생태와 기이한 습성을 가진 동물에의 ‘관찰’로 대체된 세태의 한 반영이다.

< !느낌표> 내의 한 코너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는 사라져가는 자연 다큐멘터리의 모양과 비슷하다. “동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는 사람도 살지 못한다”며 “공허한 구호에 그치는 환경에 대한 목소리를 배제하고 버라이어티와 다큐의 결합”하겠다는 기획의도는 신선하다. 그러니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는 이경규가 한국 늑대를 찾으러 갈 때 보였던 그 과장된 제스처의 한발, 프로그램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한발을 디뎠는지도 모른다.

‘버라이어티와 다큐멘터리’가 결합한 ‘…이경규 보고서’의 꼴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비춘 ‘메이킹 다큐’와 비슷하다. 박현호 PD는 “이경규가 직접 체험을 해나가는 형태를 취”해서 “일반인들이 직접 만지는 느낌, 그래서 자연과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주기 위한 형태”라고 ‘이경규 보고서’의 형식을 설명했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경우 ‘기다린다’는 지난한 과정이, ‘찾아가니 없었다’는 허탈한 결론이 곧이곧대로 드러날 수 없다. 카메라로 포착하지 못한다면 그 다큐멘터리는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도 방송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경규 보고서’의 경우는 ‘찾아가니 없었다’는 것이 그대로 결론이 된다. 보통의 다큐라면 자격미달일 ‘기다린다’는 과정의 피곤, 초조, 절망도 그대로 방송을 탄다.

‘포착 실패’라는 것에 구애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들을 섭렵하는 속도도 빠르다. 2001년 11월 시작된 이 프로그램이 10개월여를 거치면서 찾아간 동물은 너구리, 고라니, 구렁이, 황금박쥐, 한국 늑대까지 총 5종. 너구리와 고라니의 경우는 도시 속의 야생 생물을 탐색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구렁이, 황금박쥐, 한국 늑대의 경우는 ‘멸종위기야생동물’의 리스트에 올려진 동물들의 실체를 탐색하기 위한 의도에서 선택되었다. 월드컵 기간 ‘이경규가 간다’로 대체된 1개월여를 제외하면 9개월 만에 5개의 프로젝트를 소화했다.

대본따라 연출되는 다큐?

황금박쥐를 카메라로 포착한 데 실패(농부가 생포했다는 제보를 받고 도움을 주던 팀 내의 전문가가 가서 찍은 화면이 잠깐 방영되었다)한 이후 한국 늑대가 3주간 방송을 탔다. 한국 늑대의 사연은 이렇다. 1997년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기르던 한국 늑대가 죽으면서 한국 내에 있는 동물원에는 한국 늑대라고 불리는 ‘종’이 사라졌다. 그런데 경북 영주에서 잡힌 늑대를 1968년에서 71년 사이에 10마리를 일본으로 보냈다. 그 동물들의 생사여부는? 이경규팀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향한다. 그들은 맨 처음 6마리의 늑대가 간 오사카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에 남은 것은 흑백의 사진뿐. 그리고 도쿄, 늑대가 많다는 제보가 있는 홋카이도, 여기에도 역시 없다. 결국 그들은 교토의 동물원에서 한국 늑대를 발견한다. 북한에서 보내온 부부 늑대가 낳은 한 마리의 늑대가 외로이 늙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없다’라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니다. 홋카이도에서 야생 늑대의 생태를 관찰했다. 아울러 늑대를 야생 상태 그대로 기르려고 하는 부부의 노력을 보며 감동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지자. 한국에 늑대가 없다는 상황은 전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는데 일본의 상황은 왜 발품을 팔아 일본으로 건너가야 알 수 있었을까. 그리고 진행자들이 흘린 눈물에 묻는다. 미리 알고 일본으로 건너갔을 텐데 마지막 남은 늑대를 대했을 때 눈물이 나올 수 있을까. 박현호 PD는 “희망은 있었는데 확신은 없었다”고 대답한다(박스 인터뷰 참조).

그외에도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가 만들어진 과정은 엄밀한 다큐멘터리와 많이 어긋난다. 효율적인 일정을 위해서 제작진은 도쿄, 홋카이도, 오사카, 교토 순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송은 오사카, 도쿄, 홋카이도, 교토 순으로 나갔다. 그러니까 오사카에서 이경규가 ‘한국 늑대를 향한 첫발’을 내딛는다고 과장된 몸짓을 취한 것, “오사카에서 한국 늑대를 찾게 되면 일본에 오자마자 프로젝트가 끝나는 것이네요”라는 말을 한 것, 이경규가 오사카에서 도쿄로 날아가 주영훈과 합류한다는 대본에 따라 주영훈에게 “처음부터 홋카이도로 가라고 그러지 왜 여기로 오라고 했습니까”라고 말한 것은 대본에 따른 것이 된다.

너구리 생포 재연 사건, 진실성 회복 계기가 될까

프로그램을 만들 때 대본도 플랜도 분명하게,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아무런 대책없이 일본으로 가서 먼 거리를 오가며 제작비를 낭비하지 말아야 하며, 시청자들에게 효율적으로 주제를 전달할 수 있도록 대본도 성실하게 꾸며야 한다. 객관적으로 전해진 사실에 거짓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라는 오락 프로그램에는 묻고 싶다. 엄밀하게. 왜냐하면 사과방송까지 했던 ‘너구리 사건’ 때문이다. 지난 1월30일,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는 너구리를 생포한 현장을 카메라로 찍지 못해서 재촬영을 했는데, 사전 고지 없이 재촬영 장면이 나갔다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스스로 자백한 사과에 시청자들은 새삼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의 진실성에 신뢰를 더했다.

박현호 PD는 너구리 생포 재연화면 방송 이후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에 투입되었다. 그는 그 사건에 대해 “광견병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서 너구리를 생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런 무리수를 둔 것이다”며 이후 “실패를 해도 그대로 나가는 것으로 정했다”고 말한다. PD의 말대로 실패는 용인된다. 오히려 실패는 힘이 된다. 다시 말하면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의 가장 큰 미덕은 실패다. “이렇게 힘들여 노력했지만 우리는 찾지 못했습니다”는 안타까움은 “동물이 살 수 없는 곳에는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경고를 절절하게 한다. 어떤 다큐멘터리도 ‘실패’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적은 없다. 그러니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 같은 결론을 준 적도 없다. 그 실패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진실의 힘이다.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가 뗀 첫 발자국이 허방으로 빠지지 않기를, ‘눈물’을 본 사람은 절실히 바란다. 구둘래 kudle@hihome.com

박현호 PD 인터뷰"의도한 눈물은 아니었다."

고문으로 등장하는 박병권 박사의 경우 전공이 식물생리생태학으로 되어 있다. 박사라는 권위를 주는 호칭이 ‘다큐멘터리 이경규 보고서’ 내에서 다루는 동물에 대한 발언에 권위를 주는 것은 아닐 텐데.

→ 박병권 박사는 모르는 게 없는 분이다. 동물생태나 생태학에 대해서도 지식이 많다. 그의 역할은 생태전문가로서 동물의 생태학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시민단체 등에서 생태 강의를 한다. 뼈대를 갖고 그리고 순간순간 부딪치는 상황에 순발력 있게 답변해줄 수 있는 분이 필요한데 박 박사님만한 분이 없다. 전문가들의 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박 박사의 경우는 어린이도 이해할 정도로 얘기를 쉽게 해주신다.

한국 늑대는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한국 늑대가 남한에 없다’는 결론은 학계에 보고할 만한 성과일까.

→ 남한 동물원에는 없다. 그리고 야생에서 보았다는 보고도 없다. 북한에 대해서는 모른다. 교토 동물원의 한국 늑대도 북한에서 온 것인데, 북한의 상황은 알 수 없다.

일본 현지의 상황은 꼭 가야만 확인이 가능한 것인가.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 희망은 있었지만 확신은 없었다. 고라니, 황금박쥐 같은 경우도 저기는 분명히 있다고 해서 가면 없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가기 전에 현지 조사는 했다. 그리고 플랜도 세웠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뼈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확인해야 했고, 늑대의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는데 그것을 확인해야 했다.

그렇다면 진행자들은 플랜을 알고 있었을 텐데 마지막 늑대를 보는 순간 눈물은 왜 흘렸을까.

→ 그것은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다. 멘트로 정리를 하는 순간이었는데 눈물이 나왔나보다. 박사님이 울고 이경규씨는 그것을 보고 울먹거렸다. 연기자라면 그런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박사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편집을 통해서 호흡을 정리했다.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순서대로 그대로 도시를 방문한 것인가.

→ 오사카와 교토가 가깝다. 그래서 도쿄에 간 뒤, 홋카이도, 오사카, 교토 순으로 갔다.

방송분에서는 오사카에 맨 처음 간 것으로 나오는데.

→ 방송의 플랜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결론을 어디서 맺을지, 시간 순서는 어떨지 결정을 한 뒤, 촬영 스케줄에 맞춰서 진행을 했다.

다음 동물은 무엇인가.

→ 멧돼지다. 멸종동물은 거의 다 했다. 우리는 돼지를 고기로만 알고 있는데 동물로서의 돼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동물로서의 돼지로는 유일하게 남은 멧돼지에 접근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