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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엔죠이 유어 썸머
2002-09-11

■ Story

20대 청년 장웅기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매일 아침 8시에 출발하는 출근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뛰어간다. 무료하고 갑갑한 출퇴근의 되풀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골프공 하나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마도로스였던 아버지가 그 공을 건네주고는, 배를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밤이 되면 그는 까만 가발을 벗고, 염색한 노란머리로 전에 함께했던 인디밴드의 클럽을 찾아간다. 그 밴드는 첫 앨범을 내느라 분주하다.

■ Review

변화가 없다. 출근버스의 교통방송 라디오는 같은 아나운서의, 같은 톤의 목소리로 서울 시내의 정체 소식을 알린다. 오목교에서 강남대로로 장소만 바뀔 뿐이다. 버스에 일찍 와 앉은 사람, 출발 직전에 뛰어오는 사람도 항상 같다. 골프공이 장웅기의 손에서 떨어져 버스 바닥으로 소리를 내고 구르면, 그것만으로도 변화다. 승객이 놀라 골프공을 보는 장면에서 오프닝 타이틀을 거는 이 단편은 권태와 무료함, 매너리즘에 대한 스케치다. 술 취해 노래방엘 가도 권태롭다. 한 동료사원의 말. “여기는 곡이 적어. 내일은 다른 노래방 가자.” 웅기가 회사에서 벗어나면 화면이 달라진다. 차분한 구도에 정적이던 화면이, 그가 클럽을 갈 때면 명암과 채도가 높아지고, 화면 한쪽으로 치우친 불안한 클로즈업이 잦아진다. 권태에 예민하게 저항하는 젊은 시절, 그 방황의 모습이 불안하고 스산하지만 거기에도 매너리즘이 있다. 밴드의 여자친구 왈. “요즘 인디밴드들은 재미가 없어. 다 똑같아.” 엔딩은 가벼운 해프닝이다. 출근버스가 고장나 출발이 지연될 때, 웅기가 인디밴드 테이프를 틀고 춤추고, 동료들도 따라 춘다. 그뒤 웅기가 아버지의 골프공을 강으로 날려버리는 건 비약 같지만, 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을 뮤직비디오처럼 찍은 건 재치있다. 뮤직비디오 안에서 춤추는 이들은 권태롭지 않다고 강변하지만, 매일 MTV에서 되풀이되는 뮤직비디오는 또 얼마나 권태로운가. 임범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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