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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제2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2]
2002-09-16

9·11을 둘러싼 다른 세계의 반응상영작 편수가 워낙 방대한 만큼, 화제작이나 베스트 목록에 오르내리는 영화도 천차만별.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된 아이슬랜드, 가업인 수산가공업을 이어가려는 아버지와 자식들의 갈등과 <셀레브레이션> 못지않은 가족사의 파국을 통해 아이슬란드의 현재를 담아낸 <바다>부터 뉴욕의 전화박스에서 자신의 위선을 폭로하기를 종용하는 괴전화에 시달리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조엘 슈마허의 스릴러 <폰 부스>까지, 변방의 예술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아우른다.

<프리다>의 히로인 셀마 헤이엑과거 터키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파헤친 에고이얀의 <아라라트>는 가장 규모가 큰 갈라 스크리닝의 첫 영화이자 공식 개막작으로 화제에 올랐으며, 그 밖에 디파 메타의 <발리우드/할리우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 없는 남자>, 켄 로치의 <스위트 16>,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 <프리다> 등이 인기를 끌었다. 칸에서 외면당했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한 심리극 <스파이더>, 선댄스에서 격론의 대상이 됐던 구스 반 산트의 <제리> 등은 토론토에서 호평과 함께 복권의 행운을 누리기도. 10대의 무차별 총기난사사건을 다룬 마이클 무어의 <컬럼바인을 위한 볼링>, 히틀러의 여비서의 기억에 바탕한 오스트리아 감독 오트마 슈미더러의 <블라인드 스팟: 히틀러의 비서> 등의 다큐멘터리도 호평받았다.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인 만큼, 영화 관련 미디어 및 평론가들의 호응도 대단하다. <내셔널 포스트>와 <글로브 앤 메일> <토론토 스타> 등 현지 주요 일간지들은 거의 매일 영화제 관련 섹션을 발행하며 화제작의 리뷰와 감독들, 할리우드 스타들의 동정을 보도하고, 케이블TV인 <로저스TV>에서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24시간 영화제의 이모저모를 방송하고 있다. 너무 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이 몰리는 바람에 미디어 및 산업관계자 시사회 문전에서 걸음을 되돌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파 프롬 헤븐>의 시사회에서는 미처 들어가지 못한 로저 에버트가 격노해서 소리를 지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스위티 16>

<컬럼바인을 위한 볼링> 영화제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신문과 뉴스를 도배한 9·11 1주년을 맞이해 공개된 도 빼놓을 수 없는 화제작. 프랑스의 프로듀서 알랭 브리냥이 제작하고, 일본의 이마무라 쇼헤이, 영국의 켄 로치, 프랑스의 클로드 를르슈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11명의 감독들이 11분 9초 1프레임에 담은 9·11에 대한 단상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이미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특히 미국 언론으로부터 ‘안티 아메리카’라는 낙인을 받기도 했다. 토론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도 일부 기자들은 정치적이다, 반미국적이다 등등의 의문을 제기했지만, “TV를 도배했던 미국의 비극과 그들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9·11을 둘러싼 다른 세계의 반응을 담고 싶었다”는 프로듀서의 말대로 영화는 11명의 작가 각자의 사회적, 문화적 이해에 바탕한 갖가지 폭력과 편견에 대한 우화에 가깝다. 많은 공감을 얻어낸 미라 네어의 영화는 9·11 당시 월드 트레이드 센터 지하에서 소방관을 돕다가 유명을 달리했으나 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테러리스트 취급을 당했던 아랍계 청년의 가족들의 실화를 다루며, 2차 세계대전 뒤 사람이 아닌 뱀을 흉내내며 살아가는 군인의 이야기인 이마무라의 영화는 “신성한 전쟁은 없다”는 메시지를 품고 있다. <오아시스>, 베니스 여세 몰아 관심 집중한편 내셔널 시네마 부문에 소개된 한국영화 10편에 대한 반응도 흥미롭다. “지난 15년간 계속된 내셔널 시네마는 헝가리, 인도 등 북미를 비롯해 서구 문명이 잘 알지 못하는 영화들의 세계에 주목해왔다”는 페스티벌 디렉터 피어스 핸들링은, “중국이나 대만에 비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영화는 지난 2년간 젊은 감독들의 참신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을 선보여왔다. 특별전을 하기에는 적기”라며 한국영화 프로그램을 마련한 배경을 밝혔다. 한국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2천석 이상의 규모인 갈라 상영작에 선정된 <취화선>에 대해서는 “예술가에 대한 보편적인 진술일 뿐 아니라 지금껏 알지 못했던 한국사를 한 예술가의 삶에 겹쳐 보이는” 웰 메이드 영화로 갈라에 충분했다고 언급하기도.중년의 기혼남녀의 불륜을 통해 관계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는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은 <글로브 앤 메일>에서 <과거 없는 남자>와 나란히 별 세개 반의 평점을 받고 공식 데일리에서도 따로 언급되는 등 비평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 김기덕의 <나쁜 남자> 등은 <취화선>과 더불어 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작품들이다. 공식상영에서 매진을 기록했던 <고양이를 부탁해>와 <집으로…>는 특히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20대 전후의 젊은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으며, <집으로…>의 Q&A에서는 비전문배우인 김을분 할머니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지기도. <죽어도 좋아>는 토론토에서도 만나기 쉽지 않은 독특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현지 한국계 중년 관객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영화제 후반에 배치된 <오아시스>는 11일 현재 아직 상영되지 않았지만,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과 함께 호의적인 리뷰와 많은 관심이 몰리고 있다. <전부 혹은 전무>의 공식 상영장에 나타난 마이크 리가 “정말 방대하고 큰 영화제, 특히 관객의 열정이 대단한 영화제”라고 말했던 것처럼, 토론토영화제의 가장 매력적인 장점은 관객의 축제라는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혼자 달려온 20대 여성 관객부터 어린아이를 대동한 가족들, 십수편의 티켓을 끊었는데 <고양이를 부탁해>의 상영에 지각해서 못 들어갔다며 안타까워하던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이 상영관 주변에 굽이굽이 줄지은 광경을 매일 접할 수 있다. 마음에 든 영화에는 기립박수를 아끼지 않고, 상영 뒤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꼼꼼히 질문을 던지는 열기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토론토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라면 비경쟁이라는 것”이라는 핸들링은, “경쟁영화제는 결국 상이 중요한데, 심사위원이라고 해봤자 9명 정도가 아닌가. 그들이 어떤 영화가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것과 달리 토론토에서는 수천명의 관객이 심사위원”이라며 관객을 위한 영화제임을 재차 강조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 줄을 선 채 영화에 대한 수다를 나누고, 그러다가 부부의 연을 찾는 커플이 있는가 하면 달라스에서 날아온 부부와 현지의 관객이 친구가 되어 매년 영화제에서 다시 만나는 것 같은 일이 빈번할 만큼 관객이 즐기는 영화의 축제. 하루에 5∼6편을 몰아봐도 상영작의 절반도 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영화와 함께, 각국의 영화가 담아내는 다양한 세상의 표정을 진심으로 즐거이 지켜보는 관객의 시선이야말로 토론토영화제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힘만 같다. 토론토=황혜림 blauex@hani.co.kr▶ [현지보고] 제2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1]